Urbana 2015

인터넷에서 중계되고 upload되고 있는 Urbana 집회의 설교들을 듣고 있다.
혼자서 들으며 눈물도 흘리고, 회개도 하고…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지만,
한가지는…
그래도 참 미국 교회가 부럽다.

Francis Chen이나 David Platt같은, 신학적으로 ‘많이 보수’쪽에 있는 사람들의 message가 참 건강하게 빛난다.

여기는 정말 이렇게 건강한 보수적인 신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있으니.
한국 교회의 세팅에서는 건강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신앙을 포기해야하는 것만 같이 느껴질때가 있는데…

뭐 신학적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정말 무엇보다도 내 젊은 시절을 지탱해준 그 ‘보수신앙’의 외침이 fat 없이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참 한편 감사하기도 하다.

부디, 이 집회에 참석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순전하게 헌신하길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란다.

싼타마스? 크리스마스!

예전에 보스턴에 살때, 다음과 같은 글을 쓴적이 있었습니다.. 2002년에 쓴 글이니, 벌써 10년이 훨씬 지난 글입니다.
우리 민우에게 크리스마스가 정말 upside-down kingdom이 도래했다는 뉴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글쎄 정말 그런지 자신이 없습니다.

제 허접한 블로그에 가끔씩이라도 들려주시는 분들께 모두 성탄인사를 올립니다~ ^^
며칠동안 이 블로그 update도 좀 쉬겠습니다.
모두들 우리 주님의 탄생의 기쁨이 마음 한 가득 담기는 성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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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결혼한지 4년만에 처음으로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 살고 있는 집이 워낙 좁아 트리를 놓을 자리도 없었고, 그리 비싼 것은 아니지만 트리를 장만할 경제적 여유도 없었을 뿐 아니라 결혼을 한지 1년만에 낳은 – 이제 세돌이 막 된 – 딸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도 예수님 생일을 축하하는 장식을 쉽게 집안에 들여놓기 어려웠던 터였다. 그러나 금년엔 이제는 조금씩 사리분별을 하는 아이의 정서를 위해서도 예수님 생일을 더욱 드러나게 기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조그마한 인공 소나무 하나를 사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장식품들이 문제였다. 이제는 잠자리에 들기 전 눈을 꼭 감고 기도하는 훈련을 시작한 딸아이에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신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마련한 크리스마스 트리인 만큼 정말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식들을 달고 싶었다. 반드시 “말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님”들로만 장식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크리스마스 정신(spirit)에 맞는 장식을 하고 싶었다. 하나씩 장식을 걸며,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세살박이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장식품들을 하기 위해 가까운 백화점이나 할인 매장등에 갔을 때 우리는 정말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나타내는 장식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저 반짝이는 전구들, 가짜 눈, 반짝거리는 금줄, 눈사람, 산타 클로스, 루돌프, 호두까기 인형 등은 어느 곳을 가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나 정말 예수님의 탄생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장식은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그나마 비슷한 것이라곤, 크리스마스 트리의 맨 꼭대기에 다는 별과, 일부 천사의 날개(?)를 단 눈사람 장식들이 전부였다.

결국
우리는 제법 떨어진, 작은 기독교 서점에 가서 아주 빈약한 장식 몇 개를 살 수 밖에 없었다. Joy 라고 크게 써 있는 반짝이가 박혀있는 글자 장식과 천사 장식 몇 개… 그 가운데 내 시선을 붙들었던 장식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한쪽에 있고, 그 반대 쪽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 트리를 받치고 있는 장식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잊은채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 하고 있지만 사실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다는 뜻으로 생각되었다.
비교적 단순하고 작은 장식이었지만, 나는 그 장식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는 아무도 축하하지 않는 예수님의 생일에, 다른 화려한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를 지는 장식을 찾지 못하고 이렇게 구석의 후미진 기독교 서점의 한구석에서라야 이렇게 작은 장식을 찾을 수 있는 현실. 어쩌면 산타클로스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고, 정작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구석에서 찾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이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내 자신과 내가 속한 공동체를 돌아보아도 그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며 기대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같이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끼리 따뜻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말 밥통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에 흠뻑 젖어보겠다는 결심은 별로 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 교회에서도 함께 윷놀이를 하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것에 대한 감격으로 함께 끌어안으며 감격해 하고 기뻐하는 일들은 별로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

어느덧 모든 사람들에게 ‘싼타마스’가 되어버린 이번 ‘크리스마스’엔, 정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신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면서 기뻐해보고 싶다. 세상의 모든 가치관을 뒤집으시면서 (upside-down) 태어나신 왕께 내가 드릴 수 있는 감사를 마음껏 드리는 크리스마스를 갖고 싶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내 사랑하는 딸이 후에 성인이 된 후 기억하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의 모습이,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며 감사하는 것이면 좋겠다.

내 기대/실력보다 더 높아지기, 내 기대/실력보다 더 낮아지기

1.
이번에 새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야 알게된 것인데 새 회사에서의 ‘직급’이 말하자면 예전의 ‘직급’보다 낮아졌다.
offer letter 같은 데에 그런 것이 써 있지 않으니 내가 알수가 없었지.

만일 내가 이걸 미리 알았고, job이 없는 상태가 아니어서 약간 negotiation을 할 여지가 있었다면 당연히 이건 적절하지 않다고 walk away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엔 그게 좀 기분이 상했는데 점점 생각할수록 그게 뭐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일하는 분야도 아주 많이 바뀌었고 하니, 이렇게 새 일에 적응해 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내게 그렇게 좀 더 높은 직급이 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건가.
사실 그냥 내가 얼핏 생각하기엔 ‘그런거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예상보다 낮은 직급을 받게되니 그래도 내가 그런걸 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
반면, 새 회사의 name value가 바로 전 직장의 name value 보다 더 좋다보니 여러 경로로 내게 연락이 오는 빈도나 내용들이 좀 다르다.
특히 아시아쪽의 회사들에서 집요하게 내게 connect를 하려는 시도들을 하기도 하고, linkedin에서 연락해오는 빈도도 더 높아졌다.
다만, 예전에는 소위 consumer electronics 쪽의 사람들이 많이 연락을 해 왔다면 이제는 medical, pharmaceutical 쪽의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좀 온다.

내가 예전에 A 회사에 있을때, 이런식으로 자신에게 연락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마치 자신이 높아진 것이라고 착각하고 엄청 거들먹 거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내가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했었는데…
여기서도 그런 노력이 좀 더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참 다행인 것은, 새 회사에서는 그래도 사람들이 ‘vendor’들을 대할때 훨씬 더 respect를 가지고 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실제 내 실력등에 비해서 내가 새 회사의 position에서 더 부풀려져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비정상적인 건강함을 유지하기

이제 새로 일을 시작한지 3.5주가 지났다.
드디어 이제는 인정사정없이 일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아직 내용도 다 파악하지 못했는데 몇개 cross-functional meeting도 내가 주도하게 되었고,
몇개의 product development와 몇개의 process development도 내가 주도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기존에 이 팀에서 하지 않던 일도 두어개 더 새로 발동을 걸고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신참’이 아니다. -.-;

그나마 참 다행인 것은,
예전 같으면… 여기서 뭔가 내가 잘 하는 것을 보여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무리해서 일하고 뭐 그랬을텐데,
이제는 그렇게 조급하지는 않다.

나는 참 많이 조급해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인데…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내 performance의 큰 motivation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조급해하지 않는 것은, 내 본성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를 적어도 지금 유지하고 있는 큰 힘은,
내가 일을 쉬고있는 동안 그래도 조금 더 깊이 할 수 있었던 기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 물론 지금은 다시 그렇게 기도하는 시간을 거의 찾지 못하고 있고 말씀 보는 것도 많이 시간에 쫓긴다.
긴 호흡으로 하나님을 묵상하기 보다는 달려가며 하나님을 잠깐씩 바라보면서 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비정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계속 더 유지하기 위해서는 좀 더 하나님께 의지하는 일이 필요한 듯 하다. 조금씩 시간을 내어서 좀 긴 호흡으로 그분과 함께 하려는 노력말이다.

Pulling the muscle

내가 이번 between jobs 기간 동안에, 운동을 하다가 왼쪽 종아리 근육에 통증이 왔다.
뭐 그러려니 하고 그냥 운동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운동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육통이 심했다.
대충 인터넷등을 뒤져보니, 영어로는 pulling muscle이라고 하는 것을 한 것이었다.
근육에 damage가 생긴 것이었다.

뭐 운동을 하다보면 있을 수 있는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나는 겁이 많은지라, 그 후로 아예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의사를 만나서 진단을 받고 나서 운동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between jobs인 상황이어서 의료보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두어달 운동도 하나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면서 각종 군것질을 더 해서, 체중도 꽤 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뭐 그럴 수 있는 일인데…
사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리고 불편했다.
뭔가 의료보험이 없이 부상을 당했다는게… 뭐랄까… 서럽다고나 할까.

새 직장을 구하고 나서,
바로 doctor’s office에 가서 이야기를 해보니, 아무 이상 없다고… 준비운동으로 stretch 잘 하고 운동하라고 이야기해준다.

지난주부터 다시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다.
예전처럼 많이 하지는 않고, 그냥 가볍게 실내에서 elliptical 20~30분 정도 하는 수준으로만 하고 있다.
차차 다시 좀 양도 다시 늘려나가서 예전으로 돌아가겠지.

다시 운동을 하면서,
그래서 예전과는 달리…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하게 되었다.

조금은 더 철이 들게 된 것일까.

Android로 갈아타다

이번에 회사를 옮기면서 전화를 Android 전화로 바꾸었다.
사실 회사에서는 iPhone 6S나 6S+ 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Android를 한번 try해보고 싶어서 바꾸어 보았다.

전반적으로 나는 크게 만족이다! ^^

1. 우선 customize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다.
default로 주어진 text app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뒤져보았더니 아주 훌륭한 app들이 많다.
내가 선택한 text app은, 전화에서뿐만 아니라 windows나 mac 컴퓨터, tablet 등등의 multiple device에서 모두 sync해서 text를 할 수 있는 app이다.
써보니 완전 편하다. iPhone을 쓸때엔 생각도 못했던 기능이다.
text app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app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니… customizability(?)는 아주 짱인 듯 하다.

2. google의 ecosystem이 생각보다 괜찮다.
가령, website에서 google play store를 접속해서 괜찮은 app이 있다고 생각되면 거기서 install을 누르면 전화에 자동으로 install이 된다.
google music의 streaming ‘radio station’같은 것들도 꽤 괜찮다. 특히 한국 가수 이름을 치면 그것으로 station을 만들어주는 것도 꽤 좋다. 나는 ‘짠돌이’여서 paid music streaming service는 한번도 이용해본적이 없지만, pandora나 apple itunes radio 에서는 한국 가수 이름을 쳤을때 연결되는 contents들이 영 이상했었다. 한글로는 search도 잘 안되고. 그런데 google music에서는 아주 훌륭하다. 덕분에 손승연 노래를 막 듣고 있다. ^^

3. OK google이 꽤 좋다.
siri는 사실 나는 별로 사용하질 않았다. 왜냐하면 이게 말을 잘 안듣기도 하고, 가끔 엉뚱하게 연결되기도 하고… 또 좀 버벅거리기도 하고.
그런데 ok google은 훨씬 더 말을 잘 알아 들어 먹는다. – 이게 내 나쁜 영어 발음도 잘 이해한다. ^^
그리고, siri에서는 뭔가를 물어보면 그냥 신통치않게 내가 이야기한 것을 web search한 결과를 내어놓곤 하는데, ok google은 꽤 그래도 나름대로 process를 한 결과를 내어놓는다.
ok google에서는 이런게 된다.
“ok google, where are target stores around here?” 라고 물어본 후 “how can I get to the nearest one?” 이렇게 물으면 이런 것에도 답을 해준다.
말하자면 더 똑똑하다.

4. app 등이 가격이 더 싸다.
사실 paid app은 아직 하나도 사지 않았지만, 대충 보아도 app 가격이 좀 더 싸다.
그리고, 매일성경 subscription도 더 싸다. (in-app purchase 가격이 더 싼 거다.)

5. gmail등 기존에 쓰고 있는 google service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과의 연결이 훨씬 부드럽다.
google doc이나 google calendar, contacts 등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서 쓰기 편하고, 어디서든 web browser만 열 수 있으면 내용을 update할 수 있으므로 좋다.

6. iOS에서는 막아놓았던, bluetooth를 이용한 data communication 같은 것들이 된다.
그래서 내 차에서, 전화와 head unit을 그냥 bluetooth로만 연결을 해 놓아도, headunit에 필요한 data feeding을 전화가 해준다.
반면에 내 iPhone에서는 그게 안되어서, data를 원할 경우 physical cable로 연결을 해야 했었다.
그리고 text가 오면 text도 head unit으로 보내준다.
하여간 뭔가 iOS에서는 딱 막혀 있던게 android로 오면서 좀 팍 뚤린 듯한 느낌이다.

7. 예전에는 iOS는 전혀 crash 그런거 없고, android는 crash 같은거 많고 뭐 그렇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최근에 들어서는 iOS에서도 꽤 crash를 많이 경험했었다. 지난 한주간 android를 다양하게 이것 저것 써 보았는데, 뭐 딱 무슨 문제같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iOS쪽에서는 아무래도 ecosystem이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문제들이 좀 더 생긴것 같고, android쪽에서는 quality가 더 좋아진 것 같고… 해서 양쪽 차이가 많이 좁혀진게 아닌가 싶다.

8. iTunes 없이 지낼 수 있으니 참 좋다!

아…
물론 좀 아쉬운 것도 있다.
아주 작은 detail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역시 iOS가 더 좋다.
가령 음악을 들으면서 navigation app을 켜놓고 사용할때, iOS에서는 음악과 voice direction 사이의 transition이 더 부드러운데, android에서는 말이 좀 짤린다거나 뭐 그렇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user interface의 design에 있어서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font의 사용이라던가, icon의 design이라던가 등등)

그리고, 워낙 customize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보니, geek이 아닌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는 좀 overwhelm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여간, 지난 10여년간 써온 iPhone에서 android로 옮겨온지 아직 한주가 채 되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론 만족이다.

실력 (6)

나는 실력보다 더 출세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대단히 큰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여태껏, 꽤 출세한 사람들을 보기도 했고, 꽤 실력있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실력보다 더 출세한 사람들 중에서, 겸손한 사람을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때로는 지극히 심한 열등감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공격적이 되거나 스스로 비굴하게 되는 경우도 봤다.
결국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과 같은 불편함을 커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삶에 무리가 따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 사람의 진짜 실력이 그만큼 되지 않는데, 여러가지 무리를 해서 자신의 실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학교에 입학을 한다거나, 자신의 실력으로 벅찬 직업을 선택하면 그 사람은 끊임없이 그 왜곡을 맞이해서 그것을 다루어내어야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과외를 잔뜩 해서 성적을 높여 좋은 대학교에 간다거나,
여러가지 꼼수를 써서 좋은 직장에 job을 잡는 것등은 결국 그 사람을 파괴시키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실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대단히 많이 보아왔다. 아… 저 친구가 이 학교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결국 돈과 사교육으로 자녀의 교육을 채워야만하는 상황은, 그런 의미에서, 실력과 function 사이에 심각한 왜곡이 사회적인 문제로 고착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왜곡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문제로 터져나올수 밖에 없다.

나는 그래서…
돈을 쏟아붇는 교욱을 통해 엘리트가 만들어지는 지금 이 세상의 미래를 마주하기가… 참으로 두렵다.

자전거 타기

내가 생각하기에,
신앙은 자전거타기를 배우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또 한참 큰 간극이 있다.

mobile version이나 feedly 등에서는 다음의 video가 보이지 않는데…
하여간 매우 inspirational한 video입니다. ^^

옛 직장 친구들

그저께 저녁,
옛 직장의 동료들이 동네의 햄버거 집에 함께 모여서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전히 우리 그룹의 ‘리더’역할을 하고 있는 그 리더가 동부에 있다가 다시 Bay area로 job을 잡아서 돌아온 것을 껀수로 함께 만났다.
어제 모인 사람들은 나를 빼고는 모두 50대 후반~60대여서 나만 혼자 좀 ‘어린’축에 들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니 정말 많이 반가웠다.

게다가 사실 더 재미 있는 것은, 그렇게 이번에 Bay area로 돌아온 그 리더의 생일을 위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들 ‘surprise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월 초에 있을 그 event를 위해서 다들 지금 이메일로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데, 이번에 만났을때는 물론, 그것에 대해선 아무얘기도 하지 않았다. ^^

나름대로 다들 열심히 일하다가, 기술적으로 꽤 괜찮은 성공을 이루었지만, 회사가 그룹 전체를 다 내어버리는 바람에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버렸는데… 그렇게 망하는 경험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3~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들 서로를 많이 그리워하고 여전히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저께도 거의 1년만에 만나 것인데도 다들 지난주에 봤던 사람들처럼 서로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즐거워했다.
10시가 넘도록 시간 가는줄 모르고 남자들끼리만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흩어졌다.
어제 모인 사람들은 다들 나보다 10~15살 이상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지만, 10년 넘게 계속 참 좋은 ‘친구’가 되어준 그 형님들이 참 감사했다. ^^

실력 (5)

이 모든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현대사회의 심각한 질병가운데 하나는 실력을 숭배하는 것이다.

나는, Steve Jobs를 칭송/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참 고운 눈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Steve Jobs는 꽤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대로 대단히 이기적이면서 공격적인 사람이었다.
한편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탁월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배우려는 자세는 가져볼 수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Steve Jobs는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할 모델이라기 보다는 극복해야하는 figure이다.

Steve Jobs의 예를 들었지만, 교회 강단에서 걸핏하면 ‘탁월함’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는 대단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한편, 자신이 깨어진 세상의 어그러짐을 다른 이들에게 퍼뜨리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사랑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하지만,
실력숭상에 병들어있는 세상 속에서 약함을 embrace하는 counter-cultural한 attitude를 견지해야만 실력의 노예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