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1)

실력이 없으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게된다.

가령, 실력이 조금 모자른 직장인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실력이 모자르기 때문에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 뿐 아니라, 자신의 동료, 부하직원에게 모두 어려움을 주곤한다.
이 사람이 이것을 cover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음의 몇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 실력은 좀 모자르더라도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해서 ‘좋은게 좋은거다’는 식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것
– 모자란 실력때문에 얕잡아보이지 않기 위해서 윽박지르기
– 실력이 부족한 것을 감추고 자신의 것을 잘 포장해서 선전하기
– 실력이 모자른 것을 인정하고 늘 그냥 기죽어살기

뭐 이것 말고도 물론 다른 선택의 여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가지 선택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 그 선택으로 인해 단순히 자신뿐 아니라 자신 주변의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게된다.

그럼, 이 사람의 실력없음으로 인해, 애매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 사람의 실력없음이 다른사람에게 고통을 초래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특히, 실력 없는 사람이 지도자일경우에는 그 고통의 범위와 정도가 더욱 커진다.
제대로된 비전과 식견과 능력이 없는 정치 지도자가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은 그 지도자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성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목회자를 만나는 신도들은 고통스러운 교회생활을 한다.
무능력한 사장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쪽박을 차기쉽다.

그렇다면 실력없음은 죄인가?
(여기 쓴 예들을 가지고는 좀 부족한 듯 하여, 내일은 다른 예들을 좀 더 들어보겠다.)

Broadcasting my update

이전 직장에서 lay-off 통보를 받고,
여러가지 business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 (특히 potential vendor들 – 하청업체라고 할 수 있겠다.)에게 일일히 연락을 해서 인사를 했었다.

‘갑’은 자기 돈 한푼 쓰지 않고 ‘을’보고 여러가지 실험을 다 하라고 주문을 하게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대하던 회사들에게도 그렇게 요구해야되는 상황이 있었다.
그 회사들은 나름대로 자기 출혈을 해가면서 그렇게 기술개발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이쪽 일을 다 접어버리니 그쪽에서는 여태껏 한 일들의 손실을 고스란히 다 그 사람들이 떠안아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말 많이 미안했다. 나는 그동안 일해서 감사했고,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인사를 일일히 했다.

내가 웬만하면 linkedin에서 내 status change를 broadcasting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쨌든 그렇게 ‘헤어진’ 그 사람들에게 내 update를 해야한다는 의무감에서 이번에는 새로운 position에 대한 update를 ‘broadcasting’했다.
그랬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그 회사의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온다.

이 회사들/사람들과 어떻게 다시 일을 하게될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아직은 내가 지금 이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 하는 것부터 좀 배워야하므로. ^^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본의 아니게 어려움을 주게된 이 회사들에 일종의 부채의식 같은 것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뭐 내가 개인적으로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것이 내 책임인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괜한 오지랖일까.

훌륭한 설교 한편

이번에 job 없이 쉬는 동안 이래 저래 들었던 설교들이 아마 못해도 150편 정도는 될 것 같다.
정말 많이 쉬면서 설교를 많이 들었다. ^^

그런데,
지난 주일, 내 백수 마지막날, 들었던 설교 한편은 그렇게 들었던 150+편 설교 전체중 아마도 top 3 안에 드는 설교였다.
뭐 그렇게 설교한 사람을 내가 워낙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어서 아무래도 bias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그럼에도 말씀을 설명하고 풀어내는 것이 참 깊었고,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었을 그 설교자의 생각의 여정이 보이는 것 같아 참 좋았다.

우리 교회 목사님의 설교도 내가 늘 깊이 집중해서 아주 즐겨(?) 듣지만,
이렇게 평신도가 하는 설교를 들으면서 깊게 appreciate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하나의 씨앗교회 podcast에 올라오는 설교를 참조하시라! ㅎㅎ

새 직장

이번에 나는 한 start up company에 가고 싶었다.
8월 말에 인터뷰를 했었고, 거의 되는듯 했는데, 그쪽에서 막판에 틀어버려서 잘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회사에서 정말 일도 재미있을 것 같았고, 그 회사도 나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할 것 같아 보였다.
그 회사가 왜 막판에 틀어벼렸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후에 어찌어찌해서,
이제 오늘 첫 출근을 하는 이 회사에 결국 가게 되었다.
참 감사한 회사이고, 내가 다니기에 과분한 회사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내가 제일 가고 싶었던 회사는 아니었던 셈이다. ^^

그래서 아쉽냐고?
아마 내가 30대였다면 그랬을 것 같다. 계속 미련과 아쉬움이 많이 남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냥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 하는게 궁금하기만 하다.
아마 이제 오늘부터 그 해답을 조금씩 찾을 수 있게되지 않을까.

사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만한 직장이지만,
뭐 나름대로 예전에도 소위 ‘네임밸류’ 짱짱한 회사들을 다녀봐서 그런지, 그게 그렇게 많이 좋은건 아니다.
다만 하는 일이 좀 의미있는 것이고, 나도 그 과정에서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람만 크다.

열심히 일해야겠다.

New Job Transition (마지막)

이제 월요일이면 또 다시 ‘출근’을 한다.
이 과정 속에서 내 생각과 감정의 up & down,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좀 써보고 싶어서 이렇게 내 사정을 블로그에 공개하고 올리기 시작했는데,
정말 잘 한 일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늘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듯이,
이번에도 나는 정말 특별한 기간을 보냈다.

말씀을 열었을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기도를 하면서 지난 수년간 경험할 수 없는 깊이의 기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얼마나 fragile한 나를 얼마나 faithful한 하나님께서 붙으시는기 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이 과정이 금방 끝나게 되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하나님께서 이번 과정을 통해서 내게 하실 수 있는 말씀들이 더 있었는데, 너무 길게 끌면 내가 견딜 수 없을까봐 좀 봐주신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지난 3달간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겪었던 기간은, 내 앞으로 삶의 모습을 영원히 바꿀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워낙 변변치못하니, 이 블로그에 그 세심한 하나님의 숨결을 쓰기에 역부족이었으나…
2015년 8월에는 결코 내 삶속에 담고있지 못했던 것을 이제 2015년 11월에는 담게 되었다.

이제 계속 진행될 journey에서, 그것이 좀 드러나고, 하나님의 사랑이 펼쳐지는 통로로 사용될 수 있길 바란다. 정말 그러길 바란다.

많은 분들이 내게 격려도 해 주셨고, 응원도 해 주셨고, 기도도 해 주셨다.
그 분들께 정말 깊이 감사드린다.

좀 궁금한건

내가 새 회사에 가서 하게 될 일은 사실 나도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
이 회사에서 원래 ‘secret lab’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주로 medical device 관련된 일을 하는 부분을 독립시켜서 따로 회사를 만들었다.

원래 ‘secret lab’의 DNA를 가지고 있어서 인지, 여태껏 무엇을 개발하려고 하는지는 잘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적어도 이 회사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project가 두어개 정도 있는데, 정확하게 그쪽 일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궁금한건 이것이다.
이 회사에서 왜 이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모회사는 인터넷 회사이고, 결국 data를 자산(?)으로 하는 회사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medical device를?

내가 guess 하기에는 이렇다.
이 회사에서 가령 glucose level를 모니터하는 medical device를 만든다.
그리고 그 data를 모아서 그것을 가지고 여러가지 흐름도 연구하고 통계도 잡는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실제로 어떻게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ecosystem의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돈을 번다.

그렇다면 내 질문은 이것이다.
– 왜 그 device를 자기들을 개발하려고 하는가? 그거 잘 하는 사람들과 partnership을 맺고 그 사람들이 잘 하도록 하는게 낫지 않나? (물론 그렇게하면 나는 job이 없어지겠지만 ㅋㅋ)
– 회사의 CEO가 wall street journal과의 인터뷰에서, 자기들은 data 수집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CT-scan data를 GE가 가지지 않는 것 처럼, 자기들이 그 data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specific 하게 이야기했는데, 만일 그렇다면 내가 위에서 쓴 가정이 다 맞지 않는 것이된다. 정말 그런걸까?
– 이 회사는 manufacturing은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manufacturing partner에게 라이센스등을 통해서 이걸 넘기고, partner들이 이것을 만들게 할텐데, 거기서 나오는 로얄티정도 받아서는 지금 이렇게 ambitious하게 진행하는 이 program이 self-sustainable 하지 않을 것 같다. 분명히 순순한 의미에서 ‘기술 개발’을 하는 ‘연구소’는 아닐 것 같다. 그럼 뭔가?
– 적어도 지금 공개한 두개의 project들을 보면 만드는 것이 꽤 많이 어렵거나 여러가지 장벽이 높은 기술들이다. 만일 그냥 data 수집이 목적이라면 굳이 이렇게 만들기 어려운 device를 꼭 해야만 할까? 그냥 손목에 차는 device 정도를 우선 만들어서 그걸 가지고 발동을 좀 걸면서 시작하는게 더 좋은 생각은 아닌가?

적어도 내가 여태껏 본것에 의하면,
아마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이 블로그에 쓰지 못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어차피 쓰더라도 독자들이 관심이 없을 것 같긴 하지만. ㅋㅋ

그리고 막상 일을 시작하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confidentiality를 잘 지켜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은 하는 일이 뭔지도 잘 모르는 이 시점에서 일단 질문들을 던져본다.

On Revival

요즘 시간이 많다보니,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인터넷에서 설교도 듣는다.

어찌 어찌 인터넷을 뒤지다가 다음의 강의를 들었다.
Tim Keller가 Revival에 대하여 한 강의이다.
부흥에 대해 설명한 짧은 강의로서는 아주 탁월한 summary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경험했던 부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Tim Keller가 그런 부흥을 경험했는지 몰랐다.)
부흥은, 성령의 비정상적인 활동이 아니라, 성령의 정상적 활동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했다.
성령의 정상적 활동은
1. Conviction of Sin
2. Conversion
3. Giving of assurance
4. Sanctifying
이다.

그리고,
Revival은 대개 다음의 구성 요소들을 갖게 된다.
– Sleepy Christians get waken-up
– Nominal Christians get converted
– Hard-to-reach-people get brought to faith

….

돌이켜보면, 내가 20대와 심지어는 30대 초반에,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이런 경험들을 정말 했던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매우 격렬한 감정적 흥분을 수반하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매우 차분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바로 내가… conversion을 경험한 nominal Christian 가운데 한 사람이다.

부흥이라는 주제를 접할때마다,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싸~ 해짐을 느낀다.

이 부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이해시키려하는 것도 사실 좀 지쳤고,
(그래서 이 부흥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외롭고)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해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도 알기에,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참 많이 외롭게 그저 그 부흥을 고대하기만 하고 있다.

그리고 또, 부흥에 대하여 나와는 매우 다른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더 크게 실망하기도 한다.
부흥을 이벤트로 생각하는 사람들, 부흥을 감정적 흥분으로 이해하는 사람들, 부흥을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부흥을 어떤 특정한 공식에 끼워 맞추는 사람들…

마틴 로이드-존스가 어렸을때 웨일즈의 부흥을 경험했으나,
이분이 막상 ministry를 하는 동안에는, 그저 계속 그 부흥을 그리워하기만 했었다.
결국 주님 곁에 가기까지 그 부흥을 다시 보지 못했다.

가끔은…
이 부흥을 다시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저 이 부흥에 대한 목마름을 가진 사람과 한참 이 목마름을 공유하는 대화라도 좀 해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때가 있다.
그래서 많이 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부흥의 시대를 경험하게 하신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저 그 외로움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생 그 목마름을 간직하면서 살더라도, 그 기준을 낮추지 말고,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대일 것이다.
정말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은, 심지어는 그것이 매우 제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 마음에 불덩어리를 갖게되기 때문이다.

New Job Transition (28)

It takes time…

여태껏 내가 새로운 job을 찾아 옮긴 경험들을 일종의 spreadsheet으로 만들어서 한번 분석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대충 처음 그 회사의 recruiter랑 연결이 되어서 process를 시작한 날을 Day 1이라고 했을때, 다음과 같은 timeline이 만들어졌다.

Day 1 : Initial contact
대개는 그 회사의 리크루터와 연락이 닿게 된다.
물론 이렇게 하기 전까지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실제로는 이 initial contact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거의 한달 정도의 사전 작업이 필요하기도 한다.

Day 2.5 : Phone interview
첫 phone interview는 대개 금방 잡힌다. 그러나 어떤때는 multiple phone interview를 하기도 한다.

Day 16: on-site interview
Phone interview가 잘 될 경우 on-site interview가 잡히는데, 이건 대개 phone interview이후에 1~2주 이내에 잡힌다. multiple phone interview가 잡히면 당연히 on-site interview는 그 이후로 미루어진다.
on-site interview 역시 여러번을 하게될수도 있다. 심지어는 on-site interview가 다 끝난 다음에, extra phone interview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Day 25: reject
어떤 회사가 안되었다는 것을 아는데도 거의 한달이 걸린다!

Day 35: verbal offer
final on-site interview 이후에 1주일 정도 이내에 일종의 verbal offer가 된다.
on-site interview가 day 16이고, verbal offer가 그러부터 거의 20일 후인 이유는, multiple on-site interview가 있거나, on-site interview 이후에 follow-up phone interview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Day 40 : offer
모든 것이 잘 진행되면, Day 40쯤 되어서 offer를 받게 된다.
보통은 last on-site interview부터 offer까지 2 weeks 정도 걸린다.
때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더 걸릴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는 회사 내부적으로 여러가지 approval processes가 있게된다.

Day 64 : start
처음 initial contact 이후에 거의 두달이 넘어야 겨우 일을 시작할 수 있다.
offer를 받고 나서 후에 추가로 negotiation을 할수도 있고, offer에 sign을 한 이후에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 two-weeks notice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offer를 받고 바로 일을 시작하게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지금 내 경우에는 offer를 받자마자 거의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

이것은 처음 job을 찾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맞는 회사와 연결이 되었을 경우이다.
대개는 맞는 job이 떠서 그것을 찾는데에도 몇달 걸리고, 그 맞는 job이 뜬 회사의 right person과 연결을 찾고 연결이 되는데에도 몇주 걸릴 수 있다.

정말 full-speed로 이걸 해도, 이 모든 과정이 3달 이내에 되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대개는 4~6개월 정도 걸린다고 봐야 할듯.

물론 이것은 내 경험에 국한된 것이므로, 각자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다.

Take home message is…
IT TAKES TIME. 🙂

표의 숫자는 initial contact으로부터 걸린 날 수. 가령 G company의 경우 initial contact으로부터 53일째 되는날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 표가 너무 작으면 표를 클릭하세요. 그럼 크게 보입니다. ^^

Happy to be challenged

어제로, 지난 3주동안 교회에서 했던 ‘자유함’에 대한 강의를 끝냈다.
사실 6-7주 정도 길게 잡고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가 게을러서 밍기적 거리다가 급하게 준비해서 시간에 맞추느라 3주짜리 강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는데, 아주 좋은 challenge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남는 comment는, 한 자매가 한 이야기였다.
대충 내용은,

‘당신이 강의한 내용이 이해는 되는데 실제적으로 어쩌자는 건지 다가오지는 않는다. 당신은 “잘 나가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고 그 위치에서 하는 내용이 나와는 거리가 있게 느껴진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우아… 아주 정곡을 찌르는 comment 였다.

내 대답은,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매우 general한 내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실제적으로 생각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적으로는 결국 개인 경건생활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뭐 그런 식이었는데… 그 자매가 던진 comment는 여전히 매우 날카롭고 정확한 것이었다.

Christian setting에서 이런식의 강의나 설교를 하고서, 헛점을 이처럼 잘 찌르는 솔직한 comment를 받은 것은 몇년에 한번 받을까 말까 하는 정도로 드물다. 내가 우리교회에 join한 이후로 가장 refreshing한 가르침을 얻었다.
이렇게 강의를 준비해서 한 내게도 소중한 깨달음과 가르침을 준 그 자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하루가 더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남아있다.

혹시 다음에라도 어떤 강의를 또 하게 된다면, 그 자매는 꼭 다시 들어달라고 사정 사정해봐야 겠다. 이렇게 멋진 comment를 던질 수 있는 사람과는 무조건 친하게 지내야한다! ㅎㅎ

프랑스 테러, 한국의 파시즘

1.
프랑스에서 큰 규모의 테러공격이 있었다.
ISIS가 했다고 주장한다고.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그리고 이런 테러 행위는 인간이 사용할수 있는 가장 강력한 언어로 정죄받아 마땅하다.

이 일로 이슬람은 더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이슬람=테러리스트 라는 등식이 사람들에게 더 깊게 각인되게 되었고, 반이슬람 정서 자체가 더 깊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프랑스는 서유럽에서 가장 무슬림의 인구비율이 높은 몇 나라 가운데 하나이므로 이것은 더 큰 문제이다.

2.
나는 이런 일이 좀 있으면 좋겠다.
온건한 이슬람교도들이, 자신의 종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테러에대해 사과하고, 에펠탑 앞에서 테러를 규탄하는 행진을 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정신이 테러리즘이 아니라고 천명하며, 이슬람의 정신을 제대로 회복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테러리스트에의해 왜곡된, 지하드와 같은 terminology가 사실은 테러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나는 온전한 아슬람교도들의 이런 행동이, 반이슬람정서를 완화시키고,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흐름이 보이질 않는다.
이슬람 강경주의자들의 테러가 두려운걸까.

3.
한국에서 시위 과잉진압이 있었다.
한국의 보수정권이 그렇게 한것이다.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이런 인권 탄압 행위는 강력한 언어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상적인 이성이 작동하는 사회라면,
이런 일은 보수정권을 더 코너에 몰아넣게 된다.
이런일로, 보수=파시즘 이라는 공식이 각인되게 되고, 반보수 정서 자체가 더 깊어지게 될 수 있다.

4.
나는 이런 일이 좀 있으면 좋겠다.
온건하고 건강한 보수주의자들이, 보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파시즘에대해 사과하고, 광화문 광장 앞에서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행진을 하는 것이다.
보수의 정신이 파시즘이 아니라고 천명하며, 보수의 정신을 제대로 회복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파시스트들에의해 왜곡된, 올바른 역사교육과 같은 terminology가 사실은 역사조작/왜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나는 온전하고 건강한 보수주의자들의 이런 행동이, 반보수정서를 완화시키고, 사회통합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흐름이 보이질 않는다.
파시스트적 정권의 억압이 두려운걸까.

5.
에펠탑 앞 온건한 무슬림들의 평화행진도,
광화문 앞 온전간 보수주의자들의 평화시위도,
모두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평화는 한발 더 멀어지고 있다.
평화의 주님께 그저 답답한 마음으로 엎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