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사로잡히기 (4)

거짓 진실이 그 거짓됨을 드러내고 왕좌에서 내려오기 위해서는,
그 거짓 진실의 바닥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그 거짓 진실에 매달리고 있던 사람들이 깊게 실망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 지금 나와 같은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이 절망은,
예전에 가지고 있던 거짓 희망의 뿌리를 뽑아내는 과정은 아닐까.

예를 들면…
나는 386 세대이다. 당연히 386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그런 생각이 내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시민의 힘으로 독재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사회가 급속도로 투명해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것이 내가 20대, 30대였다.

나는 마침내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부가 설립되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감격했었다.
그래서, 정말 건강한 시민의 힘으로 민주정부가 제대로 세워지면, 정말 민중을 위한 세상이 열릴 것으로 생각했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발전해 나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민주정권은 수구세력에 의해 무너지고, 지금 한국의 정치판도를 보면 가슴이 꽉 막힌듯 답답하기만하다.
독재자의 딸이 전제군주인양 행세하려하고, 그런 지도자를 지지하는 한국 국민들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터질듯 답답하다.
한국의 청년들은 소망을 잃고 자살을 하고 있는데, 그런 체제를 더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일들이 지속되고 있다.

이게… 정말 이게… 시민의 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게되는 과정이란 말인가.

이런 상황 속에서 너무 지나치게 반대쪽으로 휙~ 넘어가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만,
나는 사실 마침내 내가 지지했던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을 두번 경험하고나서야,
정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정치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는 식의 생각은 결국 shallow하면서도 naive한 인본주의적 생각인것이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정치나 사회도, 종교나 교회도, 개개인의 삶도…
결국 이런 식으로 깊이 바닥을 쳐야만 비로소 소망을 두지 말아야할 곳에 소망을 두고 있었던 모습을 발견하게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의미에서,
참된 희망을 위해서는, 깊은 절망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일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