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키우는 것에 관하여 (8)

모임이나 조직에 익숙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사람을 키우는 것은 아니다.
그 모임에서 많이 쓰는 jargon에 익숙하게 된다거나, 그 문화에 편하게 되는 사람이 많이 만들어 지는 것은 오히려 그 조직이나 모임이 프로그램을 우상화하고 있다는 위험한 sign일 수 있다.

사람이 키워지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삶의 내용 자체가 담긴 보따리를 다른 사람에게 풀어 놓을 때 이루어 진다.

복음의 가치는 결국,
그 사람을 키워내는 리더의 인격이라는 그릇에 담겨져서 그 다음 사람/세대에게 전달된다.

프로그램은 자주 그 인격적 관계를 제한시킨다. 혹은 인격적 관계를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시도를 하게 만든다.
이때 리더는 결코 우상화 되어서는 안된다.
끊임 없이, 리더를 뛰어넘도록 encourage 되어야 한다.
신앙의 기준이 그 리더에 의해 정해져버리면 그 리더가 하나님을 가리게 된다.

리더는 그저 밟고 더 성장하는 디딤돌임을 지겹도록 반복해서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원이 아닌, 사람이 길러진다.

사람을 키우는 것에 관하여 (7)

성숙해 가는 과정 속에서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땐, 아니 이렇게까지 깊은 깨달음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의 머리 속에 맺혀질 수 있는거지? 하고 놀랄 때가 있다.

도무지 혼자서 공부하고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분명한 깨달음이 나를 사로 잡을 때면,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하고,
너무 벅차서 혼자 숨을 헐떡거리기도 하고,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복음에 처음 눈을 뜨게 된 이후,
그런 성숙과 성장의 과정을 거듭해 가면서,
그런 과정 자체가 하도 기가막히게 감격스러워 어떻게든 그런 성숙을 더 경험하고 싶어 정말 정신없이 몸부림쳤었다.

말씀을 깊이 보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서 말씀을 배우고 싶었고,
기도가 깊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서 기도를 배우고 싶었다.
찬양의 감격에 젖은 사람을 보면서는 그 사람과 같이 찬양하고 싶었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보면서는 내게도 그런 열매가 맺히길 목말라 했다.

주변에 그런 선배가 없으면,
그런 모임이나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카세트 테잎 등으로 설교를 정신없이 듣기도 했다.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가며 어떤 사람의 사상과 신앙을 배우려 노력하기도 했고,
뭔가 조금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든 그 사람으로부터 배워보려고 매달렸다.

그런데,
나는 요즘 그런 후배들을 별로 만나지 못한다.

어쩌다 신앙의 문제를 가지고 뭔가를 추구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 같다가도,
결국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신앙을 이용하기만 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난다.

정말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고,
그분의 진리에 눈이 떠가는 기쁨…
그 자체에 함몰되어서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어렵다.

나 같이 고집불통이고 욕심많고, 이기적이고, 겁 많고, 깨닫는데 둔한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면,
복음이 어떤 사람을 사로잡아서 그렇게 성장하고 성숙하고 싶어하는 열망을 갖는 것이 왜 훨씬 더 편만하지 않다는 말인가!

주님을 더 알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사람 한 사람 만나는 것이 왜 이렇게도 어렵단 말인가!

사람을 키우는 것에 관하여 (6)

나는,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게 느낀다.

물론 어떤 특정한 단체나 공동체의 사람들이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형의 인재를 만들기 위해 복음의 어떤 특정 분야를 많이 강조할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말씀 연구, 독서, 찬양, 기도, 봉사 등등) 그리고 때로는 어떤 방법론을 더 많이 강조할수도 있겠다. (귀납법적 성경연구, 일대일 제자양육, 소그룹 모임, 노방전도 등등)

그러나 그것에만 매몰되어서, 마치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마치면 사람이 키워진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혹은 그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 될수도 있다.
오히려 그럼 프로그램들은, 사람을 그 프로그램 이상으로 자라지 못하게 만든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단체에 가면, 유난히 그 단체의 리더를 우상화하고 그 사람의 말을 똑같이 따라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심지어는 그 리더가 어떤 특정 용어를 잘 못 발음하면, 그 잘못된 발음까지도 따라한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 답답해서 가슴이 터져버릴것만 같다.

훌륭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섬기는 하나님을 배우기 위해 어떤 사람을 모방하는 일은 때로 매우 유익하다.
그러나, 모두가 어떤 사람에 주목해서 그 사람을 추종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의 수준까지 밖에는 자라지 못한다.

나는 프로그램이나 리더를 우상화하는 공동체나 단체나 교회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단기간 성장하는 것 같아 보이더라도 결코 그 프로그램이나 리더가 처음 의도했던 건강한 spirit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키워지지 않아서 리더십 이양이 이루어지지 않고, 모두가 함께 프로그램/리더와 함께 늙어버리게 된다.

나는 이런것이 모두 무용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를 어떤 일정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에는 이런 방법이 어느정도 먹힌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리더가 길러지지 않는다.

사람을 키우는 것에 관하여 (5)

언젠가부터,
내가 사람을 키우는 시도를 하면, 나를 따르는 일부 매니아 가운데에서, 다음의 몇가지 안타까운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첫번째는, 나를 개인적으로/인간적으로 좋아하지만 내가 경험한 복음의 풍성함에 대한 목마름은 없는 경우이다.
내가 해주는 복음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아하는데, 막상 내가 가리키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렇게 뜨거운 열망이 없다.

두번째는, 나를 imitate 하려고 하다가 상처를 받는 경우이다.
나와는 스타일이 다른 사람이 나를 imitate 하려고 하다가, 잘 되지 않으니 오히려 깊이 절망하는 경우이다.
혹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 없이 그저 종교적인 선배로서 나를 대하다보니 처음에 약간 imitate하려고 하다가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없으니 그냥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경우이다.

세번째는, 아무리 설명하고 노력해도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심지어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기도 하는데, 막상 내가 설명해주고 가르쳐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면 자기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다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 물론… 내가 사람을 키우는 시도를 하다보면 정말 대다수는, 뭐 나를 ‘스승’이나 ‘선배’로 여기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다. ^^

사람을 키우는 것에 관하여 (4)

나는, 정말로, 진심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참 좋은 스승/선배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중에 나를 ‘참 좋은 사람’이라고 우리 민우가 생각해주길 원하는 마음은 솔직히 좀 있지만. ^^)

어떤 의미에서 내가 누군가를 복음 안에서 키워냈을때,
그 사람이 나를 밟고 일어나서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정말 나는 기쁠 것 같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정말 ‘학생들’에 관심과 애정이 많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면 괜히 뜬금없이 눈물이 난다.
해주고 싶은 말도 많고, 정말 그 학생들이 복음 안에서 잘 자라나면 좋겠다는 소망이 많다.

요즘 교회에서 사순절을 맞이하여 수요일 저녁마다 기도회를 하고 있다.
나도 나름대로 여러가지 기도를 해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내가 정말 눈물을 쏟아 하는 기도는 이것이다.

“하나님, 지금 이대로라면, 한 세대가 완전히 다 폭삭 주저앉을 것만 같아 보입니다. 이대로 이 세대를 포기하고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정말 그럴수는 없습니다. 다시 어디에선가 새싹이 자라나는 것과 같은 복음의 생명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놔두시지 마시옵소서. 이대로 포기할수는 없습니다. 이대로 몇년의 시간을 또 보낼수는 없습니다.”

Hot 한 job 인건가?

linkedin을 통해서이건, 아니면 어떻게 알았는지 내 이메일을 통해서이건,
‘너희 그룹에 나 같은 사람 뽑냐’는 이메일을 하루에 몇통씩 받는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게 resume를 보내오는건 예전에도 가끔 있었는데,
요즘은 좀 심하다 싶게 많다.

나는 가능하면 이렇게 내게 cold call로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고 도와주기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짧게라도 꼭 답 이메일을 해 주고, 필요한 정보도 주고 그러는 편인데,
요즘은 그게 살짝 벅차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런 이메일이나 message들을 받는 날도 있다.

그러다보니 답을 해주는 내 tone이 요즘은 꽤 퉁명스럽고 불친절하다.

지난 금요일에는 onsite interview를 하나 했는데,
처음 약간 대화를 해보니 꽤 함량 미달인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좀 어려운 질문을 몇개 하고는 대답을 잘못하는 것을 보면서 좀 밀어붙였다.
그 사람은 힘들어 했고-.-;

그리고 자리에 돌아와서는,
매우 harsh하게 interview feedback을 써서 submit 하고 다시 정신없이 일을 했다.

나는 사실 이런 스타일의 사람 무지하게 싫어하는데…
자기가 무슨 위치에 있다고 엄청 거만하게 굴고 허세부리는 사람.
그 위치가 가지고 있는 power인건데, 마치 그것이 자신의 power라도 되는양 행동하는 사람.
예전부터 그런 사람들을 회사에서 보면 아주 바퀴벌레라도 보는 것 처럼 경멸했었는데…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job이 hot job 인걸까.
그래서 나는 그 속에서 spoil되고 있는 걸까.

주말에 문득 linkedin message archive를 보면서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키우는 것에 관하여 (3)

내가 복음 안에서 경험한 많은 것들이, 내겐 정말 넘치도록 감사하다.

복음 안에서 누려왔던 기쁨, 웃음, 행복 뿐 아니라,
복음 안에서 내 어두움을 발견하면서 가졌던 절망감,
복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내게 찾아왔던 불행과 아픔들,
복음 안에서 새로와지기 위해 몸부림 치면서 많이 힘들어했던 싸움들,
여러가지 깨달음과, 나름대로 경험해왔던 하나님과의 친밀함,
함께 복음 안에서 멍에를 매는 동지들과 나누었던 끈끈한 동지애.
세상을 보면서, 또 나를 보면서 많이 흘렸던 눈물.
이 모든 것이 정말 넘치도록 감사하다.

나는 적어도 내가 경험한 만큼이라도,
내가 키워내는 누군가가 이걸 좀 경험했으면 참 좋겠다.

그렇지만 또 동시에,
나는 내가 경험한 복음의 깊이가 너무나도 천박하도록 형편없음을 알고 있기에,
후배들이 내 수준에 머무르는 비극은 정말 없으면 좋겠다.

내가 인생의 바통을 넘겨주어야하는 후배들이,
정말 복음 안에서,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함을 누리는 일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사람을 키우는 것에 관하여 (2)

나는 복음 안에서 사람을 키워내는 것은,
진정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방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으나, 인격대 인격이 복음 안에서 만나는 과정을 통해서야만이 한 사람이 경험한 복음의 진수가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성숙해 가는 과정 속에서,
그 사람을 만들어가는 스승이 반드시 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스승이 한 사람이라면 위험할 수 있다.

인생의 과정 속에서 다양한 스승을 다양한 경로로 만나면서 그 스승들의 인생의 흔적에 담겨 있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 역시 내게 참 소중한 영향을 주신 스승들이 계셨다.

그런데,
나는 그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이 참 내게 크다.

사람을 키우는 것에 관하여 (1)

내가 예전부터 마음 속에 깊이 품어두고 있어왔던 소망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평생을 통해,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 세 사람을 길러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이 땅에 살면서 복음을 가지고 살면서 여러가지 은혜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다면,
이 삶을 마감하기 전에 최소한 세 사람 정도는 제대로 키워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세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한 사람은 내가 세상에서 떠나게 되니 그 자리를 채울 사람,
한 사람은 그래도 현상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multiply 해야한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내가 발을 딛고 살았던 영역 밖에 누군가가 더 진출해야한다는 생각에서.
(해외선교 일수도 있겠고, 뭐 다른 영역이 될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세상의 여러가지 사상과 기술들이 끊임없이 발전해가고 있으니,
나 정도 수준에 내 후배들이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20대 때에는, 내가 매우 훌륭하므로 그런 사람을 세사람 정도는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30대 때에는, 내가 그렇게 훌륭하지 않으므로 그런 사람을 세사람 정도는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40대에 이르러서는, 내가 그렇게 훌륭하지 않으므로 그런 사람 세사람 정도를 키워내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Upcoming Topics

다음 몇가지 토픽을 이 블로그에서 다룰 예정이다 – 허락 된다면 : 그렇지만 subject to change 🙂

– 사랑: 금년 코스타 주제 관련해서

– 사람을 키우는 일에 관해서 : 내 개인적 결심과 소망

– 영적 고독: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면서 경험하는 외로움

– 평신도 해먹기 어렵다

– 새 직장 update (어쩌면 A 회사랑 G 회사 비교도 쪼금)

혹시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 추천도 받습니다. – 독자와 소통하는 목수의 졸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