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종교적 기독교 (5)

어제의 예가 너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다음의 예는 어떨까?

‘성경적 경제관’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성경적 경제관’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흔히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19세기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 (Henry George)를 신봉한다. 아니 오히려 헨리 조지는 그래도 현실 정치가로서 조세개혁 같은 형식으로 자산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현실적 노력을 한데 반해, 헨리 조지의 지금 추종자들은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는 방식으로 주장을 하기도 한다.

혹은,
‘희년’이라는 제도가 구약에서 언급되었다고, ‘희년’에 엄청 목매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현재 어떻게 희년을 구현할 수 있을까 뭐 그런.

(아, 성경적 경제관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다 그렇다는 건 물론 아니다. ^^ 일부 어설프게 성경적 경제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뿐이다.)

나는,
헨리 조지의 생각도 참 좋다고 생각하고, 희년의 아이디어도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구약에 나와있는 토지 사유 금지 라던가 희년이 이야기를,
지금도 행해야하는 ‘원칙’으로 받아들이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어버리기 쉽다.

어쩌면,
토지 사유 금지의 정신이라던가, 희년의 정신에 담겨있는,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정신, ‘인애와 정의’에 대한 정신 등등을 현대에 적용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경제학을 잘 모르지만,
21세기 경제학자들이 이야기하고 개발해놓은 많은 경제학 이론들, 현실에서 정책을 세우고 입안하는 사람들이 쌓아놓은 노하우와 경험들 등등의 차원에서 보았을때,
19세기 헨리 조지의 생각은 그 당시로는 참 좋은 생각일 수 있으나 지금은 너무 뒤떨어지고 낡은 생각일수도 있을 것 같다.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정신’을 좀 제대로 파악하고,
지금의 전문가들이 성취해놓은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활용하여,
현실 속에서 동작 가능한 것을 시도하는 것이 어쩌면 정말 ‘성경적’인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을 너무 prescriptive하게 볼 것이 아니라, descriptive하게 보는 일을 더 해야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성경적 경제관 이야기를 들었지만,
성경적 가정, 성경적 직업관, 성경적 기업, 성경적 정치, 성경적 교육… 이런 비슷한 예는 많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