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벌어 먹고 살기 (3)

“세상을 변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라” 고 이야기하는 개혁주의적 변혁주의 세계관은 이원론을 극복해내는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종교적이지 않은 일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세계 속에서 매우 가치있다는 주장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깃발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가져다준 부작용 역시 대단히 많다고 생각한다.

우선,
전반적인 삶의 가치와 의미, 좀 더 좁게는 직업활동의 가치와 의미가 ‘대단한 것’이라고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목사님이 강단에서,
“직업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것 자체가 영광이 되게 하라” 고 설교하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실제로 생존경쟁의 현장인 세상과 맞닥뜨리면서 내가 작아지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공부 잘 해서, 대기업에 취직한 그리스도인 말단 직원이,
그 거대한 대기업의 체제 속에서 도대체 뭘 하면 그 대기업이 변한단 말인가!
세상은 변혁시키라는 구호에 취해있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상황에 접하면 금방, 이거 뭐야…. 과연 이렇게 사는게 의미가 있는 걸까. 악한 체제, 혹은 marginally 선한 체제 속에서 부품이 되어버리고 있는데… 내가 학생때 꾸웠던 원대한 꿈은 어떻게 되는거란 말인가! 나는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여 잘 쓰임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면, 직장을 변혁시키지 못하는 좌절 속에서,
어떤 사람은 ‘뭔가 더 새로운 꿈을 찾아서’ 직장을 때려친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좆아서’ 목회자나 기독교 관련 직종을 잡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내가 학생때 가졌던 꿈은 이게 아닌데’ 하며 그저 낙망해 있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게 세상 사는 거 아닌가.
한 개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거 말이다.

‘내’가 뭔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겠다.
이런 식의 ego-centric한 생각을 연료로하여, 변혁적 세계관의 불을 붙여 놓으니 처음엔 당연히 잘 타기는 하는데… 그 불길이 오래가지도 못하고, 그나마 타면서도 그곳으로부터 독가스가 나오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직장생활,
그렇게 대단한거 아니다.
그저 밥 벌어먹고 사는 거다.
그걸로 세상 못 바꾼다. 못 바꿔도 된다.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왕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고,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좀 이런 얘기를 해줘야 하는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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