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를 처음 제대로 읽었을 때 나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었다. 그거 벌써 20년도 넘은 일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고, 그 때 나름대로 회심경험도 있었는데…
예레미야를 읽으면서 만나는 복음은 내게 대단히 낮선 것이었다.
아니, 성경이 이런 하나님을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내가 이해하고 있던 기독교는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이 shallow한 것이었구나…
예레이야의 눈물을 보며 나도 많이 울었고, 이해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신비를 경험할 수도 있었다.
그 말씀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져서 어쩔 줄 몰랐는데…
그건 가슴이 뜨거워져서 불같이 헌신하자… 그런게 아니었고,
그야말로 내 뼈가 녹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뜨거움으로 인해 많이 울게 되는.
가끔은 성경을 읽으면서,
아! 이 말씀이 살아 있구나! 그렇게 느낄 때가 있는데…
예레미야서는 그때 그 말씀을 읽고 곱씹는 한달여의 기간동안 내내 그랬다.
그리고… 나는 동료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더 유별난” 사람이 되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그 불덩어리를 설명하려고 하면, 내가 그것을 다 설명하기도 전에, 그건 그냥 네가 그런거야… 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고,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신앙의 고민의 10% 정도만을 말로 표현하여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점점 정말 마음에 담고 있는 이야기는 할 수 없게 되었고, 나는 그저 큰 빙산의 일각만을 언어라는 제한된 수단으로 표현하는 답답함 안에 갖히게 되었다.
내 신앙을 누군가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점점 더 힘들게 되었고, 결국 그것은 깊은 신앙적 외로움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한번이라도 좀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해 볼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싶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목회자, 신학생, 교회 리더들은 대부분 정말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기존의 frame안에서 내 고민 전체를 5분만에 정리해버리고 말고… 그러면 거기서부터 더 이상 깊은 대화는 없다.)
아주 가끔은 아예 신앙이 어린 사람들에게서 그런 진지한 고민과 궁금함을 만난다.
다시 예레이야서를 열며,
그 예레미야의 눈물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
예레미야라면 내 영적 외로움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