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가 궁금하다

우리 교회에서는 요즘 야고보서를 공부하고 있다.
야고보서는 내가 따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고, 야고보서에 왕창 감동을 받았다거나 그런 적이 없어서…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이리저리 인터넷을 찾아가며 나름대로 공부를 좀 하던 도중에 재미있는 것을 찾아냈다.
꽤 많은 곳에서 야고보서와 외경인 집회서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집회서를 열심히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주말에 아주 완전 속독 비슷하게 후다닥~ 훑어 보았다. 자그마치 51장이나!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빈 구석이 많을 테지만…
내가 얼핏 받은 느낌은 집회서와 야고보서가 정말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지혜를 구하는 것이라던가, 시련에 대한 것이라던가, 재물에 대한 것이라던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다던가… 말을 조심하라는 것 등등.

집회서는 BC 180년 정도에 벤시라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그렇게 집회서에 대해서 많이들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텐데…
그렇게 내용이 겹치는 것을 왜 굳이 야고보는 기록을 했을까.
집회서의 summary일까?

내 현재의 가설(?)은,
야고보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이전의 집회서와 예수님 이후의 야고보서를 잘 비교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야고보와 같이) 히브리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 사람들은,
당연히 벤시라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종말론적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날 일이 이제는 예수님으로인해서 이미 일어난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
야고보서를 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읽는 것이 어떨까… 그런 생각을 좀 하고 있다.

야고보서를 그래서 윤리적으로 읽기 보다는, 종말론적으로 읽는 것이 어떨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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