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묵상 – 가상 칠언 (5)

요한복음 19:28
“목마르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라고 쓰고 있다. 그것은 시편 69편이라고 여겨지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정말 목이 마르셨다.

우리의 죄가 처절하게 다루어지는 모습이 하필이면 왜 이런 육체적 고통이었을까? 꼭 이렇게까지 잔인한 처형 방법이어야 했을까?

물론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죄의 consequence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아마 십자가 처형보다 더 잔인한 처형법이 그 당시 로마 제국에 있었다면, 예수께서는 그 방법으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죄를 향한 진노가, 십자가에 달려있는 33살 청년 예수의 몸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때, 정말 내 뿌리 깊은 죄의 본성이 밝히 드러나면서, 정말 어쩔줄 몰라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말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이제는 죄가 싫은데… 그것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내가 빠져나올 수 없었던 기억들.

다른이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왜 그렇게 다루어지기 어려운 것인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사랑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왜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인정에 목매고 있는 것인지.

내 자존심을 꺾고 다른 이들의 아픔을 품는 것은 왜 그렇게 힘이드는지. 왜 나는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람을 그렇게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인지.

각종 음란함은 왜 여전히 나를 지배하는 것인지. 싸워도 싸워도 끝이 없는 것과 같은…

이런 내 안의 죄가 처절하게 다루어지는 모습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겪으시는 육체적 고통에 담겨있다.

내가 내 sinful nature를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발견할 때 마다, 그리고 그것과 타협하고자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 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겪으신 처절한 고통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내가 타협하고자 하는 이 죄 의 결과는 예수의 십자가 고통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그토록 죄는 무서운 것이다.

죄는, 그것을 토닥거리며 함께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꾸 드러내고, 토설하고, 아파하고,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이겨내어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이 더 선명할수록, 죄를 다루는 내 모습이 더 당당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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