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 후기, 2018 (21)

KOSTA를 오래 섬기면서 나를 붙들었던 가장 큰 가치는,
KOSTA를 섬기는 것이 내게 아무런 개인적인 유익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KOSTA에서 그렇게 섬기면서 몸에 밴 ‘정신’은 사실 내 전반적인 삶의 자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KOSTA를 다녀보면 여전히,
KOSTA를 섬긴것이 자신의 자랑거리가 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KOSTA 섬김의 핵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모습은 더 자주 보게 된다.
아니, 이게 뭐라고 여기서 뭐 한게 그렇게도 대단한 거라고…

어쩔수 없이 나는 어찌 하다보니 KOSTA에서 꽤 오랫동안 소위 ‘inner circle’의 사람이 되어 섬겨왔다. 솔직히 inner circle의 사람이 되어서 섬기는거야 뭐 하라면 할 수 있는데… 그게 일종의 ‘권력’이나 ‘명예’가 되어버리는 모습은 정말 나를 힘들게 했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이런 것이었다.
KOSTA에서 무엇무엇을 했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한에는,
(KOSTA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고)
KOSTA의 inner circle에 있는 사람들이 더 nobody가 되어야 KOSTA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자랑거리가 넘쳐나는 욕조의 작은 drain과 같이,
그 가장 핵심이 되는 사람들이 스스로 nobody가 되어야만,
운동의 건강함이 계속 지켜진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정말 영광을 다 받으셔야 하지만,
혹시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있어야 한다면 그건 KOSTA inner circle에 있는 사람들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수를 받는 것도 강사들과 다른 섬기시는 분들이 많이 박수를 받고,
inner circle의 사람들은 기둥 뒤에 숨어서 그저 KOSTA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했다는 것이 유일한 reward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상 KOSTA를 오래 섬겨온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KOSTA를 좌지우지해온것처럼 떠벌리는 사람들도 만났었다.
소위 KOSTA 간사를 ‘사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KOSTA를 오래 섬겨온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nobody가 되는 그런 spirit을 자연스럽게 체득했었고,
그걸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떠벌리는 사람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블로그에 이렇게 길게 KOSTA 이야기를 쓰는 것이 살짝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블로그야 뭐 들어와서 읽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도 다수가 KOSTA ‘관계자’들이므로… 이렇게 편하게 써본다.

(아마 조만간 관련된 글을 쓰겠지만, 사실 최근에,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의외의 사람들이 이 블로그를 follow 해서 내 ‘동태’를 살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정말 이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사실 쓰고 싶은 말들이 아직 더 많긴 하지만,
이걸로 벌써 한달 가까이 코스타 컨퍼런스 관련된 글만 쓰고 있어서…
일단 이 정도로 금년에는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

나는 금년에 집회가 끝나고 나서 다시 한번 내 결심과 헌신을 점검해본다.
나는 KOSTA에 헌신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헌신한 것이다.
그래서, KOSTA에 헌신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많이 기쁘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헌신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많이 눈물이 난다.
이번에 나는 어떤 사람들의 헌신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4 thoughts on “KOSTA 후기, 2018 (21)”

  1. 그동안 좋은 인사이트를 나눠주셔셔 감사해요 간사님! 항상 응원합니다 ‍♂️

    1. 동준 형제 이번에 고생 많았어요. 간증까지 하느라. ^^
      좋은 인사이트는요 뭐. 그냥 제 생각인거죠~

  2. 길게 이어지는 코스타 후기 연재를 읽는 즐거움을 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늦었네요. 긴 연재를 읽는 즐거움을 주셨으니 간단한 독자 소회를 밝히는 게 예의일 것 같아 몇 자 적습니다. 안 간 지 3년째지만, 7월 첫 주면 제 마음도 어느새 시카고에 날아가 있는지라 변화하고 있는 코스타 풍경이며 속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듯한 심정으로 읽어왔습니다.

    우선 LGS란 새로운 시도에는 진작부터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었습니다. 강사들에 따라 코스타 콘텐츠가 널을 뛰는 걸 어느 정도 커버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참가자들에게 코스타 이후에도 성경을 보는 눈을 길러주는 데는 실습을 곁들인 이런 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코스타 출신이나 간사 출신 가운데서도 이 세션의 강사 풀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겠구요.

    강사진이 전에 비해 젊어졌고, 새로운 unity를 이루어 가는 것도 보기 좋았습니다. 메인 세션 강사님들까지 이런 흐름에 동참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분들은 또 그분들대로 나름의 역할을 해 주시니까 젊은 그룹의 강사들이 간사님들과 함께 새로운 코스타를 만들어 가기를 응원합니다.

    중간중간 피력하신 고민들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순 없지만, 어떤 건, 가령 소위 어른들과의 관계나 지역교회 지도자들과의 관계는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하면 어떨까 싶군요. 굉장히 부담스럽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연히 이분들도 코스타의 한 부분을 이루는 고로 약간 정치적인/외교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어떨까 싶습니다. 필요하다면 공항 관제탑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그룹을 두는 것도 도움이 되겠구요.

    1. iami 님,

      말씀 감사합니다. ^^
      저는 지금 코스타에서 공식적으로 맡고있는 어떤 책임이 없으므로 제가 여기 쓴 것이 어떤 무게를 가진 것으로 읽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하신 유연함에 대해서는, 저도 100000% 동의하고 공감합니다.
      사실 제가 막상 코스타와 기타 현장에서 접하는 한국교회 신학적 보수와 진보의 나누어짐, 정치적 보수와 진보의 나누어짐, 세대간의 나누어짐은 정말 미국 코스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은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양쪽이 서로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을 하고… ‘저쪽이 있는 한 코스타는 소망이 없다’는 식으로 접근을 하고 있으니 참 쉽지 않은점이 있습니다.
      이게 보수적인 어르신이나 지역교회 목회자들도 그렇지만 소장파 진보쪽의 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유연함을 가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이 다른 분들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형제-자매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이 많이 됩니다.
      미국 코스타같이 매우 연약한 사람들이 주체가되어서 움직이는 운동이 과연 이 엄청난 갈등의 적극적 중재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말씀하신대로 겸손한 마음으로 유연하게 가능하면 어른들이나 보수적인 목회자 그룹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잃지 않고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늘 양쪽 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개가 강사로 왔으니 이젠 코스타 안간다는 식으로 말씀들을 하시고 그게 확대되어 엉뚱한 소문으로 돌기도 하고… 그런 어려움들이 계속 있습니다.

      ‘공항 관제탑’ 말씀은 참 적절한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결국 그 ‘공항 관제탑’ 역할을 미국 코스타의 경우에는 공동대표들께서 (혹은 공동대표중 일부분들께서)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것도 참 만만치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벌써 미국에 안오신지 3년이나 되었나요?
      뵙고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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