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에 여러 시대를 접하기

10여년전, KOSTA를 섬기던 한 선배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대화가 “이원론과 세속화 중에서 무엇이 더 문제인가”로 계속 귀결되던 때가 있었다.

나는 과거에는 이원론이 더 문제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세속화가 더 문제라고 주장을 했고,
그 선배님은 여전히 이원론이 더 문제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80년대의 한국에서는 확실히 이원론이 더 문제였다.
그리고 2010년대의 실리콘 밸리에서는 세속화가 더 문제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를 살고 있었던 그 당시에는 무엇이 더 문제였을까?
그리고 어쩌면 그 중간의 어디를 살고 있을 사람들이 맞닥드리는 더 큰 문제는 무엇일까?

나 개인적으로는…
이제는 정말 KOSTA가 섬기는 대상의 대부분에게 있어 이원론보다는 세속화가 더 문제인 시대로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원론도 다루어야 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사실 이원론과 세속화의 문제는 때로 강조점이 서로 부딛힌다.
이원론의 문제를 다루다보면 세속화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세속화의 문제를 다루다보면 이원론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이와 같이 이원론과 세속화를 모두 다 다루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시간대에 여러 시대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들은 확실히 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확실히 모더니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후기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아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조차도 이해하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머리로 많은 생각을 해서 앞서나가면 자칫, 이 시간에 여러 시대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시대의 문제를 단순화 시키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3 thoughts on “한 시대에 여러 시대를 접하기”

    1. 앗, 연속해서 같은 ip address에서 답글을 다셨군요. 제가 아는 분인 듯 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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