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희망 (8)

더 큰 내러티브에 삶을 투신해야 의미가 생긴다는 이야기는 자칫 신앙을 소영웅주의로 몰아갈 수 있다.

뭔가 대단한 것을 해야 신앙이 의미가 있다는 것.

그래서 해야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그 부르심의 대상, 부르심의 목표가 부르심의 형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서 온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의 핵심이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삶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소하고 지루한 일상을 포함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일들, 집안 청소를 하거나, 아이 기지귀를 갈거나, 다른 사람 심부름을 하는 것등도 모두 하나님의 통치행위를 하는 중요한 일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복음이 주는 매우 독특한 삶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삶이 대단할 필요가 없다. 그 삶이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다면,
심지어는 그 사람이 스스로 대단한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은 대단히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다.

이것은 때로,
금방 쉽게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내 삶은 지루하고, 여전히 내 삶은 별볼일 없다고 느껴질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새로운 삶의 의미와 이유가 대안적 희망의 매우 중요한 key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게 그렇게 쉽지않다.
이게 실제로 희망으로 여기며 사는것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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