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narrative, 기독교 세계관

어제의 이야기에 살짝 더 이어서,
나는 사실 그 metanarrative에 쉽게 설득되기도 하고, 그것에 의해 잘 움직여지는 세대의 사람이다.
내 20대의 metanarrative는 성장, 민주화였고, 실제 내 동시대 사람들중 어떤 이들은 그 metanarrative에 자신의 젊음을 다 바치며 헌신하기도 했다.
그러니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metanarrative가 세상이 이야기하는 metanarrative의 대안이라고 이야기할때 어쩌면 내 세대에게 기독교가 더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대충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한국의 ‘복음주의권’에서는 소위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 반성들이 많이 나왔다.
80-90년대 기독교 세계관을 그렇게 많이 이야기해 왔는데, 막상 그 내용과 열매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20대 초반에 탐닉했던 기독교 세계관은 metanarrative였고, 그 보다 더 자세한 각론이 빠져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metanarrative에 의해 설득되던 세대에게 기독교 세계관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겠지만, metanarrative만으로 설득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은 다소 공허해 보였던 것이었겠다.

metanarrative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결국 그 metanarrative를 설득해서 보여주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은, 그 스토리의 ‘example’ 혹은 ‘anecdote’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 metanarrative를 전달하고자하는 화자가 얼마나 그 metanarrative에 이미 충실해서 살아왔는가 하는 그 개인의 history에서 나오는 힘이 설득력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key factor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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