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경의 내용을 무리하게 해석하면서 내가 처한 현실의 상황에 빗대어서 읽는 것을 불편해하는 편이다. 그것은 성경의 내용을 읽기 보다는 내가 처한 현실을 성경을 통해서 읽어내는 것이고, 결국 성경 텍스트의 내용을 왜곡하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매일성경 본문인 여호수아는,
내가 코스타를 생각하면서 하고 있는 고민을 많이 담아 읽게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된다. ㅠㅠ
결국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출애굽이라는 부흥의 시기를 지낸 사람들이 아니라,
40년의 광야를 지내고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은 한편 40년동안 많이 흩어지고 잃어버렸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다시 remider가 되었어야 했을 거다. 실제로 여호수아서 초반부에 이 사람들에게 할례를 하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광야에서 태어난 남자들이 할례를 하지 못했던 것.
아마 가나안에 들어가기전 나이 많은 일부 사람들은 출애굽의 영광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암담하게 생각했을 수도. 자기들도 직접 출애굽을 경험하지도 못했으면서…
하지만 여호수아가 세워졌고,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
내 바로 윗 세대는 나름 그들이 모세와 같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실제로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들중 어떤 분들은 모세와 같은 분들이라고.
그런데…. 내 윗 세대로부터 여호수아는 세워지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모세의 세대는 망가지고 말았다.
이걸 어쩌나….
어떤 사람들은 한국 교회는 본받아 지킬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한계와 부족함이 있었지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공산당에 핍박 당하고, 독재에 항거하고, 그 속에서 사랑을 베풀고 전도를 하고 기도를 하고 교회를 세우며 헌신해갔던 선배들이 있었다. 그로인해 사회가 달리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보이지 않는다….
내 바람은,
어떻게든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여호수아 같은 사람들이 세워지도록 하는 것이다.
광야 40년의 암담함 속에서, 어쨌든 새로운 세대가 자신의 언어로 신앙을 이야기하고
나와 내 가족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능할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섬기고 살아가는 노력이 열매로 맺힐 것이라는 희망이 희미해져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