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세상 속에서 살면서,
기독교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20-30대에 그렇게 믿으며 살았다.
그런데,
이젠 정말 그런지 모르겠다.
가령,
사람들이 소외되는 경제체제 속에서 기독교는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성경대로’ 희년을 해보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면 ‘성경대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 의견들이 모두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보지만,
적어도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의 상태 그대로는 현실 세계에서 적용할 수 없는 설익은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익을 수 없는) 생각인것 같다.
오히려 기독교의 역할은,
establishment (기득권)에대한 비판(심지어는 그것이 대안 없는 비판이라 하더라도)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는데, 이건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큰 사회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가치와 그 가치의 실현을,
개인의 영역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라는 작은 영역에서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가령,
희년의 가치를 국가적 경체체제에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나,
그 희년의 정신을 가지고 개인이 살아가는 것은 여러 형태로 해 볼 수 있다.
그 희년의 정신을 작은 기독교인 공동체에서 시도해보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기독교인의 공동체가 대안 공동체(alternative community)라는 주장보다는 대조 공동체 (contrast community) 혹은 저항공동체(countercultural community)여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