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ert

회사 팀에 Albert라는 사람이 있다. (가명)
우리 회사는 지금 태국에 있는 어떤 회사를 CM(Contract Manufacturer)로 계약해서 일하고 있다.
그러니 뭔가 중요한 것을 만들때에는 늘 태국에 많은 사람들이 가서 있곤 한다.

Albert는 비교적 젊다. (아마도 30대 초반) 그리고 single이고.
또 Albert는 여행을 몹시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은 보통 한번 태국에 가면 2-3달씩 계속 그곳에서 지낸다.
그러면서 주말에는 근처 다른 나라를 여행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보니 태국을 중심으로 주로 많은 아시아 나라들을 주말에 다니는데, 그 리스트가 아주 화려하다.

태국, 베트남을 비롯해서, 한,중,일, 말레이지아, 싱가폴, 대만, 등등 많은 나라의 여러 도시를 주말마다 여행을 한다.

계속 출장중인 셈이니,
세끼를 모두 회사돈으로 먹고 있고 (게다가 꽤 좋은 음식들을)
잠은 호텔에서 자고, (보통은 꽤 좋은 호텔에서)
주말에는 자유롭게 여러 나라 여행을 하면서 다니고 있으니
어떤 사람들은 Albert를 꽤 부러워하기도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누군가가 계속 현장에 있고, 필요한 것들을 현장에서 하고 있으니…
나도 수시로 Albert에게 네가 거기있어서 참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한국에서 보면….
어디 한달살기 뭐 그런것들 하는 것 같던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Albert의 삶이 환상적으로 느껴지겠지.

나 같으면 얼마 있다가는 좀 힘들것 같다. 심지어는 내가 젊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사는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친구는 아주 즐겁게 그렇게 살고 있다.

생일

고등학교때부터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나는 15살부터 생일을 약간 띄엄띄엄 보내는 때가 많았다.
남자애들끼리 사는데 살갑게 생일 챙기고 그런거 별로 없었다.

나는 내 생일을 대단하게 보낸적이 별로 없기도 했고,
솔직히 말하면 그거 시끄럽게 떠벌리는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어릴때 집에 아이들 초대해서 함께 짜장면 먹었던 기억은 있다)

나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내 생일이 언제인지 잘 모르도록 하면서 살고 있다.
별로 마음에도 없는 축하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생일에 선물을 하는 사람은 아내와 딸이다.
나는 그것도 괜히 돈쓰고 시간쓰는게 싫어서,
생일 얼마전에는 내가 원하는 일상용품을 사달라고 아예 이야기를 한다.
금년에는 운동할때 쓰는 모자와 수염 trimmer를 사달라고 했다. 대충 10~20불정도.

어릴때부터 미역국을 많이 먹고 자라서인지 나는 미역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늘 집에 미역국이 있었고, 미역국이 생일에 먹는 건지도 꽤 어른이 되어서까지 잘 몰랐다.
그러니 생일에 미역국 먹고 어쩌고 하는 것도 나는 별로다.

나는 누구든 내게 그렇게 생일에 번잡스럽게 하는게 그냥 불편하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아내와 딸도 딱 그렇게 한다.
케익이라도 사려고 하면 그거 하지 말자고 하고, 선물 같은거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생일에 그냥 간단하게 집에서 불고기 구워서 먹고 작은 조각 케익 하나 나누어 먹는 정도 하곤 한다.
그건 좀 내 마음에 잘 차지 않는다. 그래도 그것보다는 살짝 좀 번잡스럽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내 생일 즈음이 되면 제일 먼저 생일 축하를 하는 것들은, 주로 쇼핑몰이다. 생일을 기념해서 5불짜리 할일 쿠폰 같은걸 보내온다.그 정도는 그래도 괜찮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생일은 축하하는 날이라기 보다는,
내가 감사하는 날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
나와 함께 자라준 형제 자매에 대한 감사,
나의 선생님들, 친구들에 대한 감사,
내가 여태껏 만나온 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내게 주어진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한 감사.

말하자면 ‘count your blessing’하는 날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오늘 내 생이라던가 그런거 아님 ㅋㅋ 그냥 생일에 대한 짧은 글을 쓴 것 일뿐)

건강

나는 소위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20대에는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일주일동안 시험공부를 했던 때도 많이 있었고,
시험기간이 끝난 후 하루 푹 자면 피로가 다 없어졌다.

50대에 들어서기 까지 하루 5시간정도 자는 것이 내 일반적인 패턴이었고,
잠은 늘 푹 잘 잤다.

천식이 있다는 것 말고는 크게 건강에 문제도 많이 없었다.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이긴 했지만 다른 큰 병은 걸린적이 없었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게 영 그렇지 않다.

하루에 6~7시간씩은 자야 하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해서 많이 관리를 해야한다. 나는 내가 잠 자는 것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전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살이 쉽게 찌고, 찐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 출장이라도 한 주 다녀오면 살이 확~ 찌는데 그걸 관리하는게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중성지방이 높아졌고, 그거 관리하기위해 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작년에는 갑상선에 작은 혹(?)이 발견되어서 걱정을 했지만 조직검사를 하고는 암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열심히 운동해보려고 노력하는데 조금만 무리하면 관절등에 통증이 생겨서 무리하지 않게 운동을 해야 한다.

또 최근에는 목이 자꾸만 쉬어서 병원에 가서 이비인후과 내시경을 해 보았더니 reflux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이상 젊지 않은 내 육체와 잘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배워나가는 것이 아마 점점 더 많이 질 듯 하다.

나는 천수를 누리면서 오래 오래 살고 싶은 바람은 없다.
그리고 어쨌든 나도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아픈 곳들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다루며 배워나가는 과정이 계속 될 것이고.

노화가 점점 진행되는 내 몸과 친구가 되는 지혜가 내게서 함께 자라나길 바랄 뿐이다.

죄사함의 십자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보통 ‘atonement theory’ (속죄이론)이라고 한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여러가지가 당연히 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무엇보다도 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죄가 용서받는다는 것이 너무 어느 기독교 서클에서 저렴하게 사용되는 바람에,
십자가와 죄 용서를 연결시키는 것을 마치 구시대적인 것 처럼 여기는 일들을 보곤 한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잘못된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말 인간 안에 있는 뿌리 깊은 죄의 문제가, 나와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는데,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가 하는 것에 대한 적절한 강조와 가르침이 참 그립다.

자유의 핵심은 그래서 결국 죄사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과 평화주의

전쟁 소식이 정말 끔찍하다.

이 침략/공격을 시작한 쪽이나, 그걸 당하고 있는 쪽이나…
모두 그 지도자 그룹을 존경할 수 없는 사람들이니,
어느 한쪽이 선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계속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나는 기독교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평화주의(pacifism)를 이야기하는 분들을 존경하기도 하고, 평화주의쪽 신학자 중 내가 많이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평화주의는 일종의 경직된 도그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경직된 도그마는 발전할수록 인간의 고집과 주장으로 발전하게 되고,
하나님 없는 세상을 가정하여 논리가 전개된다.
어떤 평화주의자들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런 정당성 없는 전쟁은 어떻게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평화주의는 어쩌면,
이런 absurd한 전쟁에 대한 반발로 그 주장을 더 강하게 발전해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는,
나도 평화주의자인척 하게 되곤 한다.

미사일 폭격이 계속되는 그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어린아이들의 표정을 생각해보면,
폭격으로 죽은 가족을 보며 울고 있을 어머니의 눈물을 생각해보면,
삶의 터전을 다 잃고 망연자실해 있을 가족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전쟁은 끔찍하다. 정말 끔찍하다.

은퇴 (5)

은퇴를 하면 시간을 내어서 지역교회에 있는 사람들과 fellowship을 더 나누고 싶다.
너무 오랫동안, 교회는 내게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교회 예배를 가는 것은 일하러 가는 것이었고, 교회 소그룹에 참석하는 것 역시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늘 있었다.
나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기대도 그랬던 것 같고.

그렇지만 은퇴를 하면,
그냥 은퇴한 어떤 남자로서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그분들로부터 조언도 듣고,
다른 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분들의 care도 받고 싶다.

괜히 어디가서 새로 소그룹 만들어서 사람 모아서 내가 인도하겠다는 식의 짓거리는 웬만하면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정말 웬만하면 교회에서 무슨 리더니 집사니 장로니 그런 것도 웬만하면 사양하고,
그냥 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디 살 수 있을지, 어디 살게 될지, 그 곳에 그런 교회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뭐 그런 바람이야 가져볼 수 있지 않은가.

Red Sox와 LAFC

내가 보스턴에 있을때 마음이 참 힘들때가 많았다.
그럴때 나는 꽤 열심히 Red Sox를 응원했었다.
내가 보스턴을 떠날때 쯤 해서 Red Sox가 86년만에 World Series 우승을 하는 일이 있었다.

소위 밤비노의 저주라고 해서 만년 2등을 했던 Red Sox 팬들은 그날 정말 기뻐했다.
나도 그 가을에는 매 경기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여러가지로 힘들던 시절 Red Sox가 내게 위로가 되었다.

지난 여름,
손흥민 선수가 LA에 있는 축구 팀으로 왔다. LAFC.
미국의 MLS (Major League Soccer)는 TV등에서 중계를 해주지 않고 apple TV에서만 중계를 해주기 때문에 나는 작년까지는 경기를 볼수는 없었다. 그냥 apple TV만 구독하면 되는게 아니고 MLS를 따로 더 돈을 내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당연히 그 돈내면서 보지는 않지…
다만 매번 경기가 끝나고 youtube에 올라오는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손흥민 선수를 응원하고 좋아했다.

금년에는 아내가 apple TV를 구독하는 바람에 (사실 구독은 아니고, 무슨 자기 크레딧 카드에서 apple TV를 공짜로 보게하는 혜택이 있다고), 게다가 금년부터 MLS를 보기위해 따로 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공짜로’ 손흥민의 LAFC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나름 여러가지로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보스턴에서 힘들던 시절 Red Sox가 내게 위로가 되었던 것 같이,
요즘 그나마 내가 유일하게 시간을 낭비하며 빈둥빈둥 쓰는 시간은… 손흥민의 축구를 보는 거다.
한주에 90분. 주로 토요일 저녁.
아직 손흥민 경기가 금년 시즌 한번밖에 없었지만, 매번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혹시 경기를 놓치면 꽤 열심히 youtube 하이라이트 라도 볼 생각이다.

심지어는 손흥민 선수 소식을 보기 위해 전화에 instagram도 깔았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겐 이건 정말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다. ㅋㅋ)

덧셈게임과 뺄셈게임

한편 인생은 여러가지를 성취하면서 살아간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고, 가정을 꾸리고, 돈을 벌고, 명성을 쌓고, 자손을 남기고….
말하자면 0점짜리 도화지에 점점 그림을 그려 더 점수를 높여가는 게임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인생은 점점 기회를 잃어버리는 게임이다.
처음 태어났을때는 그야말로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노벨상도 타고, 대통령도 되고, 큰 부자가 되는 기회들이 있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은 다들 자기 아이들이 천재인줄 안다.

그러나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성적표를 받아오기 시작하면,
그 아이가 위대한 학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아이는 그러다가 점점 손흥민 같은 축구선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아이유같은 가수가 되지도 못한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되고,
원하던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
원하던 직장을 다니지 못하고,
꿈꾸었던 것 만큼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지도 못한다.

그러니…
살다보면 사람들에게는 후회가 가득하다.
아, 그때 그 학과에 갔어야 하는데,
아, 그때 그 사람과 결혼했어야 했는데, 혹은 그 사람과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그 주식을 사둘걸,
그때 그 직장에 갔었더라면,
그때 거기에 없었더라면, / 거기에 있었더라면,
그때 그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처음 가능성이 가득한 커다란 대리석을 받아들고 조각을 해나가다가,
여기저기 깨지고, 금이 가서, 결국 나이가 들어서는 손바닥에 올릴만한 아주 작은 책상 장식 하나만 남겨두게 되기도 한다.

인생은 잘못된 결정들 투성이고,
이루지못한 꿈들로 가득하다.
어릴때 부모님의 기대는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고,
어릴때 꾸었던 꿈은 아루지 못한다.

그러니… 인생에는 후회가 가득하다.

인생은 더해가는 덧셈 게임이 아니라, 빼기를 하는 뺄셈게임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게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게 복음이다.

베게

쓰던 베게가 오래 되어서 하나 바꾸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웬만한 베게는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거다.

이게 문제가 심각한게,
나는 출장을 가서 호텔에서 잘때도 자주 호텔의 좋은 베개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오래 뒤척이다 잠이 들때가 많이 있다.

나는 집에서 gel memory form으로 되어 있는 베게를 쓴다.
이건 당연히 흔히 많이 쓰이는 베게와 질감이 다르다.
이 베게에 익숙해지니 호텔등에 있는 일반적인 베게를 베면 조금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어떤 베게가 되었건, 심지어는 베게가 없어도 그냥 잠을 자는데 문제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까탈스러워져서 베게하나도 그렇게 까다롭게 고르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더 너그러워지고 여유있게 되어야 할텐데,
몸도 마음도 점점 더 까다롭게만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약간 틈이 생겼다…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지 두달이 조금 더 되었다.
처음 접하는 일들이 많아서, 내가 해야하는 일을 할때 시간이 오래 걸렸고, 새로 배워야하는 것들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늦게까지 일을 해야하는 때도 많았고.
저녁이면 많이 지쳐서 다른 생각을 잘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어느정도 좀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약간의 틈을 발견했다.

나는 미국 동부에 있는 있는 팀과 많이 일을 하고 있고,
아시아 공장에 있는 사람들과 일을 많이 하고 있으니,
당연히 하루가 매우 긴 편이다.
아침에는 동부사람들과, 밤에는 아시아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일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동부사람들이 퇴근하는 오후 2시부터, 아시아 사람들이 출근하는 오후 5시 사이에는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 물론 같은 시간대에 있는 사람들과 그 시간에 미팅을 하거나 일을 하는 일들이 있지만, 캘리포니아에 있는 사람들도 대충 눈치껏 그 시간에는 좀 쉬는 분위기다.

덕분에 나도… 대충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에는 운동도 하고, 시장도 보고 그렇게 하는 시간이 생겼다.

훨씬 살만하다. 삶의 질이 엄청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