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하는 랜덤 생각

덧셈뺄셈을 하지 못하면서 수학전공자라고 하지 마라.
100m 달리기를 25초에 뛰면서 마라톤 뛴다고 하자 마라.
악보 읽을 줄 모르면서 오케스트라 지휘하려 하지 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풀어 설명할 수 없으면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 하지 마라.

휴~가~

휴가 잘~ 다녀 왔다. ^^
일상의 루틴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내게 늘 쉽지 않다.
그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인것 같다.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들을 그냥 ‘루틴’으로 만들어서 단순화시킨다.
옷 입는 것, 밥 먹는것, 자고 일어나는 것 같은 것들은 그날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고 산다.
다른거 생각하고 살일도 많은데, 오늘 뭐 입을까 이런걸로 에너지는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하다고 여길만큼 나는 그 루틴 안에 살려고 노력한다.
잘때 전화기를 충전하면서 전화기를 놓는 위치도 늘 똑같이 맞춘다. 아침에 일어나서 안경없이 전화기 알람을 쉽게 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매일 아침 아침식사를 회사의 어느 식당에서 먹는 것도 늘 정해져있다. ^^
(회사 Mountain View campus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회사 셔틀을 타고 회사에 가는데 아침식사를 Mountain view campus에서 먹는다.)
아침 출근 셔틀에 타는 자리도 늘 똑같다. 그래야 늘 하던대로 같은 자세로 노트북을 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휴가에서는 그런게 되지 않는다.
늘 하던 것을 할 수 없다.

휴가는 내가 늘 우선순위를 두고 생각하는 것을 잠깐 잊고,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있던 것을 끄집어 내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이번 휴가에서 그렇게 잘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꽤 많은 생각을 하게되긴 했다.

Good to be back home!

휴가!

다음주에는 민우 봄방학을 맞이하여,
그리고 일년 지난 결혼 20주년을 맞이하여,
가족 휴가를 가기로 했다.

원래 작년에 결혼 20주년때 둘이 가까운데 여행한번 다녀오자고 했는데,
둘다 시간내는것이 어려워서 작년에 그냥 지났었다.

그러나 금년에는 민우가 대학에서 맞는 첫 봄방학이고 우리까리 멋진 여행을 한번 간일도 별로 없고 해서 마일리지 30만마일 넘게 있는걸 톨톨 털고, credit card benefit 모인거 다 털어서 여행을 간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쉴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현대에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한번도 쉴 자격이 있을 만큼 열심히 일한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내가 일하는 게 맘에 안든다. -.-;
다만 열심히 공부한 민우와, 열심히 일한 아내는 좀 쉬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놀기 위해서 한참 바쁜 와중에 한 주 회사를 빼고 이렇게 가는건… 언제 그랬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달만에 민우를 본다는 생각에 설레고,
회사일을 끊고 휴가를 간다는 생각에 살짝 걱정이 된다.

(다음주는 내내 블로그 update가 없을 예정입니다.
휴가 갔다와서 뵙겠습니다!)

좀 살살하자…

새해에 내가 좀 못된(?) 결심을 했었다.
한 3개월동안 회사 일을 좀 살살하면서 남는 시간에 다른 일들(christian ministry에 관련된 것을 포함해서)을 좀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1,2월 두달은 꽤 널럴하게 지냈다.
아… 이렇게 해도 되는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만큼 ㅎㅎ

그런데 내가 그저께 글에서도 잠깐 언급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내 manager와 그 위 사람들이… 내가 회사를 떠날 생각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1월 말쯤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내 manager에게 요즘은 일이 좀 적어서 완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만…. 이 사람들이, 내가 일이 적어서 회사에 흥미를 잃고 회사를 떠나려고 생각한다고 결론을 내린게 아닌가 싶다. -.-;

우리 회사에는 20% project라는게 전통적으로(?) 있어왔다.
20%정도의 시간은 원래 하는 일을 벗어나서 새롭고 실험적인 일들을 하도록 encourage하는 일이다.

내 manager가 아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 팀에 오승이가 할만한 20% project가 있으면 좀 얘기해주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래서 20% project 몇개를 물어다가 내게 던져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뭐가 막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20% project들이 모두 다 사실상 100% project라는 것이다. -.-;
여기 저기 불려다니면서 사람들 만나고 여러 팀 미팅에 들어가고 해보니… 정말 내가 좀 도와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런데… 이게 내가 ‘좀’ 도와줘서 될만한 것들이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덕분에 요즘은 일이 확~ 많아질 위기에 처해있다.

사람이 좀 널널하게 일하는걸 가만 놔두지 못한다는 건…
그래도 회사 system이 잘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하긴 하지만….

한동안 좀 널널하게 살아보겠다는 나의 가열찬 결심은 두달정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또 일이 많아지니 전투의지가 막 생기면서 에너지레벨이 살짝 올라가긴 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6시 반 출근, 7시 퇴근쯤 될 것 같으니…..

성장과 성숙

어떤 사람이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되는 것은 성장이다.
어떤 사람이 부족한 것을 극복해가는 것은 성숙이다.

성장은 efficiendy를 높이고
성숙은 effectiveness를 높인다.

나는 기독교 신앙이 이야기하는 것은 성장이라기 보다는 성숙에 더 무게중심이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가를 보려면, 그 사람이 그 장점을 어떻게 개발했느냐를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단점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 이러면 더 이상 회사 못다녀?

나는 회사에서 소위 ‘윗 사람’들에게 별로 나긋나긋한 사람이 아니다. -.-;
무진장 대들고, 절대로 자존심 굽히지 않고 싸우는 편이다.
아, 그렇다고 막 무례하거나 무모하게 악악대는건 당연히 아니다.

때로는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 따질때도 있고,
효율적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일 때도 있지만…
정말 웬만하면 ‘나 자신’을 위해서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따지지 않으려고 무진장 노력하는 편이다.
이게 이기적인 voice를 자꾸 내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나머지 내가 하는 말도 다 무게감이 떨어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나는 보통 회사에서 좀 손해를 보기도 한다. 내가 ‘내것’을 잘 챙겨먹지 않기 때문에.

몇달전, 내 manager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 동네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걸 이야기한 context가 뭔가 내가 frustrated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나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manager는 만날때마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더 일해라, 여기 기회가 많다’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음… 나는 지금 회사 옮길 생각도 없고, 어디 딴데 갈데가 딱 있는 것도 아닌데… -.-;

나는 반복해서,
‘내가 혹시 frustrated되어서 회사를 옮길것 같은 impression을 주었다면 그건 아니다. 나는 어디 갈 생각이 현재로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여전히 두주에 한번씩 딴데 가지 말라고…

처음엔 그런 상황에 있는게 좀 불편했는데,
요즘은 그게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좀 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 사람이 내게 요즘 무지하게 잘해준다.
회사 내에 여러 사람들에게도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지를 열심히 설명하고 다닌다.

일종의 오해 때문에 이런 상황에 오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을 은근 즐기면서 엉거주춤 있는 내 모습이 좀 치사하다.
나는 회사를 옮길 생각이 없는데…

설교 표절

언제부터인가 설교 표절에 대한 비판이 기독교 써클에서 나오고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설교자가 표절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지만,
설교가 ‘표절’에 대한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어야 하는 것인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설교는,
설교자가 청중들에게 하는 ‘믿음’에 대한 message이다.
만일 공유하는 믿음이 같다면, 다른 설교자가 한 내용을 끌어다 쓰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

나는 설교 표절의 큰 문제는,
부정직함이 아니라, 게으름이라고 본다.

지난 주말에, Stanley Hauerwas가 설교를 하고, 자신이 했던 설교에 대해 학생들(?)과 discussion하는 youtube video를 보았다. (link)

물론 약간 농담이 섞인 말이었지만, Hauerwas는 ‘창의성은 무엇을 읽었는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그리고 표절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보통 설교자들이 하는 설교를 들어보면…
차라리 내가 그 사람들에게 설교문을 써주고 그 사람들이 그걸 읽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도 했다.

정말 그렇다.
일반적으로 접하는 많은 설교자들의 설교가 너무 허술하다.
어떤땐, 차라리 좀 표절이라도 해서, 그 진리를 제대로 드러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이건 절대로 어떤 특정한 설교나 어떤 특정한 설교자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님을 밝힌다.^^ – 워낙 이런 식의 글에는 상처받지 말아야 하는 분이 상처를 받거나, 이상한 억측이 생기는 일이 많아서… )

차를 바꿨다!

최근에 갑자기 차를 바꿨다.

2012년에 산 Camry가 그래도 꽤 잘 달리고 있었고, 이제 막 110K mile을 넘어선 수준이었으니 그리 막 나쁘진 않았는데…
작년에 transmission에 문제가 있어서 한번 손을 본 적이 있었고,
괜찮은 것 같긴 하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시간과 돈을 쓰게되지는 않을까 싶어 그냥 확~ 바꿨다.

이번에 차를 바꾸면서는 다음의 기준을 가지고 바꿨다

우선 지금 타는 차보다 싼 차를 사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80%이상은 이 차를 혼자서 타는데 Camry는 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각종 안전장치를 가능하면 많이 달겠다고 생각했다.
Automatic brake, blind spot monitoring, lane keep assist 같은 것들을 가능하면 많이 넣어보려고 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lease를 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몇년동안에는 지금 한참 개발되고 있는 여러가지 안전및 편의장치를 비롯한 자동차 전반의 기술이 꽤 급격히 발전할 것 같아 이런 시기에는 차를 lease하는 게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차를 3년짜리 lease를 하기로 하니까, 차의 long-term reliability가 덜 중요해져서 차의 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다.

차를 고르는 기준은, 핸들링이나 driving dynamics보다는 편하고 조용한 쪽을 선택했다.
내 회사까지 거리가 25마일이 조금 넘고, rush hour에 운전을 하면 편도 한시간씩 운전을 할때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로를 덜 느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준으로 보니, Toyota나 Honda는 좀 비쌌다.
이런 차들은 long term reliability와 resale value가 좋아서 차값이 비싼건데, 나는 lease를 하기로 했으니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VW이나 현대등의 차를 주로 research를 했다.
그리고 결국 VW Jetta를 lease했다. 현대 엘란트라가 끝까지 후보에 있었으나… 그리고 웬만하면 현대를 한번 사주고 싶었으나… VW가 워낙 좋은 deal을 제시하는 바람에… (MSRP에서 거의 5000불을 깎았으니!)

게다가 차를 사는것도 아주 편했다.
truecar나 edmunds같은 데서 근처 dealer들에게 한꺼번에 quoation을 받고,
그 중에 제일 좋은 조건을 택해서 그냥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꽤 좋은 deal을 할 수 있었다.

새차를 타보니… 지난 7년동안 정말 자동차 관련된 기술이 참 많이 발전했다 싶다.
옛날 차보다 더 싼 건데도, 차 크기가 좀 작아진것 말고는 모든게 다 더 좋다!
더 가속도 좋고, 더 조용하고, 기름도 엄청 적게 먹고, 더 편하고…
Android auto가 되니까 그것도 아주 좋고.

그러면서 이번에 3 year cost of ownership을 따져 보니, 이 정도 크기의 차를 운행하는데 대충 3년 동안에 25000불 정도가 들었다.
(차 감가 상각, 연료, 보험, maintenance 등등을 모두 더해서)
생각해보면 정말 큰 돈이다. 한달에 거의 700불 정도가 차를 운행하는데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살짝 든 생각이…
3년 후에는 아예 차를 없애고 회사 셔틀과 Uber/Lyft와 자전거와 어쩌면 electric scooter만 가지고 사는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실망, 절망, 희망?

어제 밤 늦게까지 한국 뉴스를 보면서 마음을 졸였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트럼프의 기자회견을 끝까지 다 보고서야 컴퓨터를 껐다.

실망하지만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희망을 놓지 않아야 가능하다.
그런데, 세상 일이란게 늘 불확실한데, 절망에 빠지지 않을 희망이라는게 가능하겠나.
그래서 희망이 절망에 빠지지 않을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나는 절망에 빠지지 않을 근거는,
그것이 옳은 일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어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렇다.
옳은 일이면 불확실성이 크더라도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옳지 않은 일이면 불확실성과 관계 없이 그냥 싸그리 쓰레기통에 버리는 거다.

이런 실망의 순간을 맞이할때 해야하는 일은,
여전히 하려는 일이 옳은 일인지를 다시 점검하고,
그 옳은 일을 하는 옳은 길을 다시 재정비하고,
포기하지 않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그리고 궁극적 선한 심판자가 있다는 것은 믿는 세계관을 가졌다면,
절망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생각.

Sloth

Seven Deadly Sins 가운데 Sloth가 들어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Sloth에 대해서 쯘적도 있었는데,
Sloth는 단순한 게으름이라기 보다는 ‘열정없음’에 가깝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이 어떤 사람을 열정없이 게으르게 만들까?

첫째,
정말 중요한 것에대해 진지한 자세를 갖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을 정말 진지하게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쉽게 sloth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둘째,
매우 근시안적으로 자신을 지키는데 급급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라도 하면 자신을 다치게할까 무서워 그냥 움츠려드러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게 움츠려있으면 그 사람은 더더욱 자신을 다치는 것에 노출되게 된다.

셋째,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진지함을 가질 수 없다.
자신에 대한 reflection도 없다.
생각의 게으름이 결국 사람을 sloth로 이끈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이렇게 sloth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진지하지 않고, 자신만을 지키고, 생각을 하지 않는데 그것으로 부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