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s in the Journey of Faith

Janet Hagberg와 Robert Guelich 의 The Critical Journey: Stages in the Journey of Faith 라는 책에 따르면,
신앙 성숙은 다음의 단계를 따른다.

  1. Recognition of God
  2. Life of Discipleship
  3. Productive Life
  4. Journey Inward
  5. Journey Outward
  6. Life of Love

모든 사람이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stage 3이상으로 자라나지 못한다고.

보통 ‘일요일 중심 교회’들은 Stage 3까지 다다르게 하는데 아주 효과적이지만,
Stage 4 이상으로 자라나게 하는데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그래서 Stage 4 이상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일요일 중심 교회’로부터 ‘졸업’해야한다고.

음…
이거 완전 잘 들어맞는듯.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을 매우 잘 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알고 이해하는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정말 맞는 말인 듯.

United 타도 되나??? Boeing 타도 되나???

어제는 United의 Boeing 777에서 이륙하는동안 타이어가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SFO에서 토쿄 가는 비행기.
음… 나도 그거 많이 탔는데…


그리고 그저께는 United 의 Boeing 737에서 한쪽 엔진에서 불이나서 비상착륙을 했다.


물론 또 극적으로는, 지난달에 Boeing 737 Max9에서 비행중에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일도 있었다.


나도 앞으로 몇달간 비행기 탈 일들이 줄줄이 있는데,
뭔가 더 기도하는 마음으로 타게될 듯…

그럼에도,
여전히 비행기 여행은 자동차 여행이나 다른 방법의 이동 수단보다 더 안전하긴 하다. ^^

친구?

어제,
지금 우리 회사에 다니다가 layoff를 당해서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함께 일하면서 나름대로 호흡도 잘 맞았고,
일도 빠릿빠릿하게 잘 하는데다,
함께 힘든 프로젝트과정을 넘겨가면서 나름 동지애랄까 그런 것도 있었다.

약간은 뜬금없이,
내게 무슨 기술적인 (technical) 질문을 하기 위해서 연락을 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걸 껀수로 전화를 해서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었다.

이번주에는,
그나마 friendship을 잘 쌓아가고 있던 한 친구가 또 회사를 옮긴다고 한다.
그 친구와 어제 차 한잔을 하면서 함께 일해서 좋았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가서 정말 잘 되라고 빌어 주었다.

내가 이곳에서 살면서,
직장에서 만나서 어떤 형태로든 friendship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연말이면 괜히 한번씩 연락도 하고, 서로 이메일도 하고, 정말 가끔은 한번씩 만나기도 하는 그런 친구들.

어떤 기준과 이유로,
어떤 사람들과는 그렇게 ‘친구’가 되는데,
어떤 사람들과는 그저 ‘함께 일했던 사람’으로 정리되고 마는 걸까.

잘 모르겠는데….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내가 ‘친구’일까?
최소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을까?

비싼 주유소

어제 차에 기름을 넣다가 문득 하게 된 생각.

나는 꽤 짠돌이다. ㅠㅠ
비싼 옷 안 입고, 비싼 차 안 타고, 비싼 음식 안먹고….

이게 한편 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말 오랫동안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차에 기름을 넣을 때가 되어서,
늘 가던 주유소에 가려는데, 그 주유소에 줄이 길었다.
우리집 근처에서 제일 싼 곳이어서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나는 거의 망설임 없이 주변에 조금 더 비싼 주유소로 가서 기름을 넣었다.
1 gallon에 한 20센트쯤 더 비싼 곳이었고, 한 12 gallon 정도 넣었으니 2.4불 정도 더 비싸게 기름을 넣은 셈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2불 40센트 절약하는게 뭐 얼마나 대단하냐 싶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쌩으로 더 비싼 돈 쓰는건 완전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제는 그냥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렇게 더 비싼 곳에가서 기름을 넣은 것.

어쩌면 내가 더 싼 곳에서 기름을 넣어야만 생활이 되던 시절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적어도 살짝 더 비싼 곳에서 기름을 넣어도 되는 수준으로는 살고 있는거구나 싶었다.

대단한 낭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살짝… 이건 아닌데… 싶었다.

잘 아끼고 아껴서 우리 민우 고기라도 한번 더 사주면 좋은 건데 말이다.

Hot Topic

지난주 토요일 성경공부.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어려움… 아니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면, 교회 다니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이야기들을 많이들 했다.

토요일 성경공부 그룹은 한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뉴욕/뉴저지 지역, 플로리다, 델라웨어, 일리노이, 캘리포니아, upstate NY 등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인데…
그냥 교회 다니는게 힘들다는 거다. ㅠㅠ

어느때 부터인가,
예수님 믿는게 힘든게 아니고, 교회 다니는게 힘들다는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만난다.
오히려 예수님 더 잘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걸 힘들어하는걸 정말 많이 만난다.

뭐가 신학적으로 옳고 어쩌고를 떠나서…
예수님을 믿는것보다 교회다니는 것이 더 어렵고 고통스럽다면….
이건 분명 잘못된거다.
이건 분명 아닌거다.

아!

어제 주일 예배후,
정말 끝나고나서 기립박수라고 치고 싶었다.

설교가 얼마나 찐~ 하던지.
그리고 그 후에 함께 부른 찬양도.

새 목사님이 오신지 1년이 조금 지났다.
뭐 그럴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아, 예전에 Ortberg 목사님이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들이 당연히 있었다.

그렇지만 어제는,
아, Ortberg 목사님은 이렇게 못했겠다 싶은 순간이 있었다.

정말 좋은 설교에 정말 감사했다.
계속 오래… 마음에 남는다.

God, the troubleshooter

자기가 힘들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저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려울때 하나님을 찾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게 보이기도 한다.
정말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 같다는 절박함도 있다.

그런데,
그 문제가 해결되고나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라진다.

최근에도 그런 사람들과, 나름대로 내 진을 다 짜내가며 힘들게 대화하고, 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로보게끔 하는 노력을 좀 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해보게 된다.

그런데,
내 믿음은 그 사람들의 믿음보다 더 나은걸까… 하는 생각을 또 많이 해보게 된다.

흔들리지 않기?

요즘은 회사에서 소위 perf 라고 불리는 performance evaluation이 끝나고, 그것에 따른 지난 6개월동안의 ‘성적표’가 나오고, 이제 앞으로 1년동안의 연봉이 정해져서 나오는 시즌이다.

완전히 정신을 잃고 보너스가 조금 오르고 내리는 것 가지고도 엄청 신경을 쓰는 부류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냥 괜찮은척… 그러면서 점잖게 지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때쯤이면 다들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이 늘어난다.

이럴때,
돈 때문에 내 모든 마음이 다 흔들려버리는 일이 일어나면 안되는데….
나도 그게 때로 쉽지 않다.

얼마나 받았나, 얼마나 올랐나, 주식은 어떻게 되나…

최근 회사에서 직원들 월급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나누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회사 내의 기밀이기 때문에 여기에 쓸 수 없지만…

  1. 사람들은 돈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
  2. 자신이 받는 돈에 만족하거나 자족하는 사람은 정말 거의 없다.
  3. 늘 다른 어떤 회사 다니는 누구는 주식이 어떻게 올라서 그것 때문에 집을 샀다더라 하는 부류의 이야기들은 늘 넘쳐난다.

돈을 받으며 감사하고, 돈을 많이 나누고, 돈 때문에 내 마음이 다 흔들려버리는 것을 잘 잡으며 사는 것이… 참 힘들다.

내 친구 J

내 대학교 동창중에 J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나와 비슷해서 잘 통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뭔가 제대로 배우는것을 좋아한다고나 할까.
정말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원리같은 것을 캐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같은 재료공학과였는데,
재료공학과에서는 물리학과에서 배우는 수준의 양자역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그 양자역학의 결과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그것을 고체물리에 적용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데,
우리는 대학때, 그 양자역학의 내용을…
‘이건 뭐 그냥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자’고 하는 교수님의 접근에 불만이 많았다.
아니 그걸 좀 배우고 싶은데…

나중에 결국 우리는 그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서 양자역학을 따로 공부했다. 물리학과에서 배우는 교재를 가져다가 끙끙거리면서 문제도 풀고 우리끼리 서로 이야기도 해 가면서.
J와 나를 비롯해서 그런 성향의 친구 3명이었던가… 그렇게 해서 결국 우리는 학부 수준의 양자역학을 하고 나서야 어느정도 직성이 풀렸다.

나도 그랬지만 그 친구도,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는 좀 진짜 공부같은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적어도 아무도 모르는 뭐 하나를 새롭게 밝혀내는 것 하나 정도는 해야 학위를 받지 않겠냐… 뭐 그런 생각이 있었다.
뭔가 새로운걸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유학을 왔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이미 흐름은… 기본적인 것을 파는 분위기라기 보다는 새롭고 cool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다소 고집스럽게 그래도 뭔가 기초적인 뭐 하나는 해야겠다고 바득바득 해가며 박사논문을 썼다.

….

지금 나는 그렇게 바득바득 기초적인 그 무엇을 공부한것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일을 하고 있다.
그때 그렇게 했던 것이 그때 당시 하면서 재미있기도 했고, 나름 보람도 있었지만,
그렇게 했던 것이 과연 내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J는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친구 phase transformation을 statistical mechanics의 equation을 이용해서 푸는 걸 좋아하고 그랬는데….
그 친구는 변호사를 재미있게 하고 있을까?

문득 내가 무슨 일을 하면서 먹고 살고 있는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J가 생각났다.

손절

손절이라는말은 원래 주식 용어인데 손절매, 즉 손해를 보더라도 적당한 시점에서 끊어서 판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손절이라는 말을 인간관계에도 많이 쓰는 것 같다.

나는 웬만하면 손절을 잘 못한다. 이게 그냥 내 마음이 그렇게 모질지 못해서 그렇다.

그러나,
어떤 사람과 교제하는 영역을 제한하는 일을 하기는 한다.

가령,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것을 이해시키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드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는 그렇게 많이 에너지가 드는 일을 하는 영역을 차단해버린다.
그리고는 단순한 이야기, 안부 이야기만을 묻는 수준에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한다.

또,
조금이라도 감정이나 정서적인 이야기를 하는게 너무 어려운 사람은, 그런 영역을 차단한채 그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당연히 이렇게 어떤 영역에 대하여 ‘손절’을 해버린 사람과는 깊은 나눔을 하는것이 불가능해진다. 안타깝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계들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버리면서 내가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그렇지만 내가 웬만하면 손절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음… 물론 나를 이용하려는 사악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야 당연히 나도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지만…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중에 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잘 지낼때는 전혀 연락도 하지 않다가,
자기가 어려운일이 터지만 내게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는 내게 조언을 구하고, 때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내가 힘들때 그 사람들이 와서 도움을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내가 손절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그 순간에 나름 절박해서 내게 연락을 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도 죽겠다 힘들다 하면서 술마시고 전화하고 했던 친구가 있다.
나름대로 내가 할 수 있는한 그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고, 카톡등으로 대화도 하면서 용기도 주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후 그 어렵던 문제가 해결되었고, 당연히 내겐 연락한번 없다.
사실 그때 나는 꽤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고, 그 친구도 그걸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섭섭할때는 있지만,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다.
혹시 그 사람들의 그 어려운 문제에 도움을 주도록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 나를 두신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다보니…
때로 나도 인간관계가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