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어제 저녁,
근처 어느 교회에 NK에서 오랫동안 살고 계신 선교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분이 이야기하는 방식은 이런거였다.

사람들이 우리보고 많이 힘들거라고 했지만, 별로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들을 열어주셔서 우리는 잘 지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하셔서 지금은 새로운 일들이 열리고 있다.

그분이 계신 곳의 특수한 상황들 때문에, 들었던 자세한 이야기를 쓸수는 없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이분이 겪었던 일들은 정말 황당하고 암울한 상황이었다.
하려고 했던 일들이 막히고, 상황이 악화되어서 당장 아주 가까운 장래도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벌어진 상황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정말 안전할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정말 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 나 같으면, 이런 저런 상황을 분석하다가 많이 비관적이 되어 완전 기가 죽어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라면 왕창 비관적일 것 같은 상황에서,
그분은 그렇게 많이 힘들어하지 않고, 새롭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하나님을 그냥 신뢰했다고 이야기하시는 거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 나 같은 사람은 비관적인 막다른 골목으로 보지만,
그분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새로운 기회로 보는 거다.

믿음이란,
벌어져있는 상황을 다른 눈으로 해석하는, ‘다른 관점’을 갖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되뇌이게 되었다.

그리고,
늘 내가 뭔가를 늘 control하면서 살아야하는 상황 속에서 사는 나 같은 사람은,
늘 하나님의 control을 신뢰하면서 엄청난 불확실성 속에서 사는 그 선교사님의 믿음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내가 믿음이 형편없는 것은,
한편 내가 많이 따지고 분석하는 성향이기도 하지만,
내가 평소에 살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사는 상황속에 나를 밀어넣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거다.

어울리지 않는 세팅

지금 내가 토쿄에서 묵고 있는 호텔은 Grand Hyatt Tokyo라는 호텔이다.
Roponggi 라는 지역에 있는 호텔인데, 이 호텔은 Google Tokyo office가 있는 건물에 바로 옆에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Google 직원들에게 조금 싸게 주는 듯 하다.
보통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싸게는 400불, 비싸게는 하룻밤에 700~800불까지도 한다.

이곳 Roponggi라는 지역은 토쿄에서 꽤 비싼 지역중 하나이다.
토쿄는 어디든 다 비싸긴 하지만.
토쿄에서 주로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나이트클럽같은 것도 이 동네엔 많다.

 

비싼 지역에 있는 무지하게 뽀대나게 생긴 건물에 Google Tokyo office가 있다. Roponggi Hill의 Mori Tower 라는 곳이다.

 

이 건물에 여러층을 Google이 쓰고 있고, 내 기억이 맞다면 Apple Tokyo office도 이 건물에 있었다. 거긴 한번도 가 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 동네엔 그리고 사람들이 다들 옷도 진짜 잘 입고 다닌다. 남자건 여자건 간에.
좋은 차들도 많이 보이고.

평소 나 같으면 교통비 1~2불 아끼느라 몸쓰는걸 당연하게 여길테지만,
여기에선 시간을 아끼기 위해 툭하면 택시를 타고 다닌다.

음식도 어떤땐 혼자서 스시집에 들어가서 한 60불어치 먹고 나오기도한다.
평소엔 6불짜리 사먹는것도 주저주저 하는데. ^^

이렇게 호화롭게 한 일주일 보내면 그런게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걸 살짝 까먹을때가 있다. 그냥 그런걸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하룻밤에 300~800불짜리 호텔에 내 돈 내고 잘 가능성은 없는 사람이고,
혼자서 멋부리며 비싼 스시집에서 한끼 거하게 먹지도 않을 것이고,
이 동네 사람들이 많이 그러는 것 처럼 비싼차를 타는 사람도 아니다.

이런 곳에 이렇게 있는건 나랑 잘 맞지 않는 세팅인거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게 뭔가 살짝 부담스러워졌다.

다음에 이렇게 출장올 일이 있으면 살짝 조금 더 싼 곳을 찾아서 머물러봐야겠다.

자동 변기

일본 호텔에 있는 화장실 변기
안으로 들어가면 자동으로 뚜껑이 척 열리고, 여러가지 operation을 옆에 붙어있는 control panel에서 다 할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내가 내 돈주고 왔다면 묵지 않을 비싼 호텔에 묵다보니, 별의 별것이 다 있군.

앗! 출장!

이번 주일저녁에 오랜만에 출장을 또 떠난다. 두주 일정.
이번 출장은 살짝 널럴한 편이다. ^^
일본에서는 중요한 미팅이 두개 있는데, 바로 붙여서 일정을 잡지 못해, 중간에 뜬 시간에는 그냥 work from Japan을 하게 되었다.

출장을 갈때마다 가기 싫은거 억지로 간다고 투덜거렸는데,
이번엔 그런 불평을 좀 덜 하게 되었다.

가만히 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international business trip을 한게 작년 9월이었다.
한동안 꽤 널럴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2012년 이후, 이렇게 출장을 적게 간 기간이 또 있었던가.

두주정도 블로그 update 잘 못할 예정입니다. -.-;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꾸벅~^^

찬송가

요즘 벌써 몇주째 찬송가를 귀에 달고 살고 있다.

물론, 내 특유의 비판적 생각 때문에…
이런건 좀 신앙에 대한 해석이 치우친거 아닌가 하는 삐딱한 마음을 갖기도 하지만,
아… 그래… 신앙에서 이런걸 참 많이 잊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하면서 듣고 있다.
예전에 성가대하면서 불렀던 찬송가들도 많이 생각나고

뭐랄까,
한참 잊고 있었던 하나님의 어떤 얼굴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아, 이제는 교회에서 이런 내용들은 더 이상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내용들이 정말 많았다.

예전에 찬송가를 부르며 많이 울기도 했고,
찬송가를 들으며 많이 웃기도 했다.

그 주옥과 같은 찬송가들이 불현듯 확~ 다가와서 나를 사로잡고 있어,
참 감사하다.

Lake Tahoe

Lake Tahoe는 우리 집에서 운전해서 4시간쯤 걸린다.
민우가 방학을 맞아 온 기념으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어제까지 짧게 Lake Tahoe에 다녀왔다.
Lake Tahoe는 겨울에 스키를 타는 사람들로 많이 붐비는 곳이다.
나는 스키를 잘 타지 못하지만, 아내와 민우와 함께 몇번 가 보았는데, 한참 시즌 주말에 가면 숙소 잡는것도 많이 힘들고, 숙소도 많이 비싸다.

지금은 주말에 가더라도 그렇게 많이 비싸지 않아서 이틀 숙소를 예약하고 다녀왔다.

그런데, 가보니…
허걱. 거기엔 눈이 있었다. 그게 좀 있는게 아니고, 스키장이 운행되고 있었다!
가는 길에는 눈도 내렸다!

사실 정말 눈이 많이 온 사진들은 다 인물 사진들이어서…
그나마 인물 없는 사진들을 모아보니 이정도.

한국은 지금 섭씨 30도가 넘는 더위라던데,
우리는 졸지에 눈 많이 온 산에서 두꺼운 겨울옷 입고 지내다 왔다.

그래서 잘 쉬었냐고? 뭐 별로…
그래서 스키 탔냐고? 아니…
다녀와서 피곤했냐고? 완전…
그럴거 왜 갔느냐고? 아내랑 민우가 좋아하는 모습 보는게 좋아서. ^^

무식한 아빠

민우는 전공이 ‘liberal arts’이다.
‘인문학’이라고 번역해야하나.
지금은 그중에서도 주로 문학과 연극쪽의 과목들을 많이 듣고 있는 것 같다.

쉐익스피어를 배운다는데… 음… 나 같은 사람은 그거 읽어도 해석도 안된다.
무슨 몇세기의 시(poem)도 배웠다고 하고,
여성학(?) 비슷한것도 배웠고, 내년에는 political science 쪽도 과목을 들어보려고 하는 것 같다.

무식한 엔지니어인 아빠 입장에서는,
허억 하는 내용들을 배우고 있다.

아빠는 진짜 무식하다.-.-;

민우는 그래도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잘 한다. 자기가 무슨 과목을 들었고, 뭐가 힘들도, 어떤 교수님이 좋고… 어쩌고…
학기중에 주말에 video chat을 하면, 민우가 먼저 끊자고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가, 민우야 이제 들어가…라고 하면… 민우는 벌써? 하면서 늘 아쉬워한다. ㅎㅎ

그러나,
이제 20대 초반인 민우는,
아직도 wisdom(지혜)에 해당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물어본다.
어떤 것은 조금 더 고차원적인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어떤 것은 비행기 타려면 공항에 얼마나 일찍 가는게 좋으냐는 삶의 소소한 지식들도 있다.

비록 민우가 배우는 것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아빠이지만,
아직 삶의 지혜의 부분에서는 여전히 물어보는게 기특하다.

민우가 점점 커 가면서,
민우의 삶의 지혜가 어느순간에는 내 삶의 지혜보다 더 풍성해지는 날도 오겠지.
그러면 아빠가 무식할 뿐 아니라 지혜도 민우보다 못하게 되는 거겠지.

빨리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
민우에게서 보이는 삶의 지혜가 참 기특하고 깊구나… 하고 느끼는 때가 오면 좋겠다.
그때가 빨리 오도록, 민우에게 빨리 많은 지혜들을 잘 전달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슬기의 근본이다. (잠언 9:10)

실력

옳은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실력이 없다면,
그 사람의 주장 자체가 옳기 않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옳고 그름은 때로 매우 애매한 경계를 가진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질 때에는 매우 자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심하게 왜곡된 기준을 가지기 쉽다.

그런데,
실력은 그것보다 훨씬 더 공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누가 실력이 있느냐 하는 것은 더 판단이 명확한 경우가 많다.

어제 회사에서,
자기가 옳은데 실력이 딸려서 억울하다는 사람의 푸념을 한참 들어주었다.
(나도 그 친구가 옳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집에와서 그 친구의 푸념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서,
많이 혼란스러웠다.

I’m available for you

회사일을 하는데 저녁에 conference call을 무지하게 많이 한다.
아시아쪽의 사람들과 일을 하는 일들이 많아서 그런데,
매일 conference call을 해야하는 주도 있고, 적어도 한주에 3번 정도는 저녁에 하는 conference call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급하게 무슨 일이 터지면,
그것 때문에 급하게 밤에 이메일 하고, 전화한다.

그 와중에 가끔 유럽쪽과 conference call을 해야하는 일이 겹치면,
그날은 완전 대박나는 거다.
요즘은,
아침 7시면 central europe이 오후 4시이므로, central europe에서 전화하기 좋은 시간이다.
그리고 오후 6시면 한국과 일본은 오전 10시, 중국과 대만이 오전 9시이므로 뭐 대충 그때쯤 하기 좋다.

내가 organize하는 conference call이 대부분이니까,
그러면 전후로 agenda 정리하고, 필요하면 action item 정리해서 나누고, meeting summary도 적어두고…
그럼 정말 하루가 아주 길~어진다.

그렇다고 내가 죽도록 힘들게 일하느냐 하면 그런건 아니다.
나름대로 내 일정을 꽤 flexible하게 조정할 수 있고,
내가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일하고 있기 보다는, 내가 해야하는 일을 내가 정해서 하기 때문에 driven되기보다는 drive하는 입장이긴 하다.

내 주의의 사람들이, 심지어는 나와 가깝다고 하는 사람들도,
내가 너무 일에만 파묻혀서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많이 바쁘지 않고, 나름대로 work-life-balance도 좋은 편이고,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시간과 마음을 낼 여유가 있다는 것을 많이 광고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I’m available for you!

진취적 피동성 vs. 퇴행적 피동성

기독교는 한편 대단히 진취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깊은 피동성 속에서만 그 핵심을 맛볼수 있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project를 시작하셨고, 완성하실 것이고, 내가 그 큰 흐름에 포함된다는 것은 나를 대단히 진취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initiative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initiative에 의해 이루어지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중심성이 참된 진리로 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면… 피동성을 추구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나를 던져서 가슴 뛰도록 헌신하는 진취성도 있어야 하지만,
나의 뜻을 꺾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내게 들어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그것에 순종하는 피동성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피동성을 ‘진취적 피동성’이라고 부른다.

반면,
어떤 사람은 무엇이든 하려고 하면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으로’ 주저앉아버리는 결정을 해버린다.
대부분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내포하는 위험을 감수하기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저 자신을 보고하고자 주저앉아서 피동적이 되어버린다.

이런 것은 ‘퇴행적 피동성’ 이다.

나는 매우 자주,
퇴행적 피동성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진취적 피동성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독이 된다.
퇴행적 피동성을 가진 사람이 진취적 피동성을 갖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던지는 과감한 모험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과정을 능동성을 거쳐야 비로서 진취적 피동성으로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