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내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과 저자들 (1)

대학교때 혼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대충 한학기에 전공과목 6과목 정도를 한 학기에 들었다.
그걸 일년으로 따지면 일년에 12 전공과목 강의를 듣게 된다.
그래서 대충 일년에 12권의 ‘textbook’을 보게된다고 계산할 수 있다.

그래서 혼자 생각했다. 전공책 1권당 여러가지 신앙서적 1권씩 읽어보겠다고.
일년에 12권이니 대충 한달에 1권정도 책을 읽는 것이 되겠다.

그렇게 나는 다소 늦은 나이(20대 초반)에 책읽기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서적’을 읽는다는 것이 ‘신앙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 후 어려운 책은 한달에 한권을 읽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책읽기를 하면서 나는 그런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신학, 철학, 과학, 역사등의 책들을 읽었고,
그러다보니 대충 신학교 목회자과정 (MDiv) 과정에서 배우는 과목의 textbook정도는 대충 30대에 다 읽고 혼자 공부하게 되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 Apple의 iTunesU 라는 platform에서 조직신학, 신약학, 구약학, 교회사, 실천신학등 여러 과목들을 열심히 들으며 공부했었다. 지금은 더 이상 available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한동안 가령 Gordon Conwell 신학교의 MDiv 레벨의 강의들이 거의 다 available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그렇게 공부에 재미를 붙이면서 여러 신학적 입장들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고, 나름 좋아하는 신학자, 작가들도 생기게 되었다.

가을학기 성경공부

가을학기 성경공부를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
원래는 약간 어려운 수준으로 한번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하면 새로 유입된 사람들이 흥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나 혼자 재미있는걸 하겠다는 욕심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서 고민중이다.

그리고 또한,
나와 함께 계속 성경공부를 하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계속 남아 있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 건강한 것인가 하는 고민도 있다.

내가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도 뭔가를 본격적으로 나와 함께 공부하면서 배우겠다고 하면 조금 더 팔을 걷어 붙이고 열심히 해봐야 하는 것일텐데…
막상 열심히 하지는 않으면서 계속 참여만 하는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들에게 정말 도움이되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많다.

늦어도 다음주중에는 가을학기 성경공부 안내를 보내보려고 하는데… 주말에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매주 하는 설교가 독일까…

최근 어떤 분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왜 지역교회 목회자들중 깊은 통찰을 갖는 설교자를 찾아보기 어려울까.

몇가지 이유중 하나는,
아마도 그분들이 매주 설교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매주 하는 설교라는게…
깊은 연구와 고민이 담겨있는 설교가 아니고,
그냥 한줄로 정리할 수 있는 깊이 없는 내용의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내용과 자신의 경험 몇가지를 섞어서 가능한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cycle를 매주 반복하면서 하고 있으니…
설교에 대단한 깊이도 없고,
오히려 매주 그런 설교를 하는 것이 그나마 있었던 통찰마저도 얕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것에 비추어 보아…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의 주일 설교는 그래도 좀 다르다.
그래도 어쨌든 나름대로 설교를 준비하는 team이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여 준비한 티가 팍팍난다.

아마 설교준비하는게 훨씬 더 어렵겠지만,
이렇게 하면 매주 설교하는게 설교자에게 독이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ncounter with God

나는 아침 말씀묵상 본문을 미국 성서유니온에서 나온 “Encounter with God”을 따라서 한다.
한동안 한국 성서유니온의 매일성경을 따라서 했었는데, 작년부터 바꾸었다. 아내와 민우 세명이 같은 본문으로 함께 하기 위해서.

보통 하는 말씀묵상을 할때 소위 그 ‘교재’에 있는 해설을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
요즘은 Encounter with God에 나오는 글들을 꽤 자주 읽는다.
참 좋다.

사실 한국의 어떤 QT 교재는 그 해설을 읽으면…
그 교재는 신앙을 엉뚱한 방향으로 망치게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웬만하면 그 교재는 쓰지 말라고 권하곤 한다.
꼭 교회에서 같이 해야 한다면, 교재는 보지 말고 본문만으로 묵상하라고 하고.

그런데 Encounter with God에 나오는 해설은 믿음을 배워가는 사람들, 말씀 묵상의 초보자에게 추천해볼만 하다.

Working with a C-team, Working with a A-team (5)

여전히 내가 고민하는건, 이런 흐름이 지속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잘 모르니, 이걸 어떻게 지속해야하는가 하는 것 역시 잘 모르겠다.

그냥 매우 이기적인 입장에서,
이건…
내가 도대체 KOSTA와 후배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하는 것과도 연관되는 이야기다.

나는 그럴 자격과 능력이 되지도 않지만, KOSTA에서 드러내는 일을 하지는 않고싶다.
그것이 내가 이 KOSTA와 후배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저 이 후배들에게 어떻게든 실질적으로 뒤에서 도움이 되면 좋겠다.

금년 KOSTA 집회를 비롯해서 지난 몇년동안,
나는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A-team vs. C-team의 framework에서 꽤 자유롭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왔던,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이 절망했던 A-team vs C-team의 framework으로 부터 조금 더 자유로와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자유’라는 주제로 conference를 마친 내게 이건 약간 다른 차원의 자유다.

Working with a C-team, Working with a A-team (4)

그런데…
지난 한 2~3년, 내 생각의 여러 부분이 바뀌었다.

일단, 원래 생각했던 것 같이,
A-team, B-team, C-team으로 이 조직을 생각하는 것이 매우 제한된 내 생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 KOSTA 간사들중, 예전과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스타플레이어들이 못했던 일들을 지금 간사들이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우선, 매우 건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간사팀에 들어오고 있다.
순수하게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겸손하고, 배울줄 알고, 예수님 안에서의 성숙을 진심으로 추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오는 사람들이 매우 놀랍게도,
지난 몇십년간 계속 만들어진 KOSTA 간사들의 ‘문화’와 ‘정신’을 매우 단기간에 습득한다는 거다.
이게 말로 열심히 교육하고 설명해서 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 사람들이 새로 들어왔는데, 마치 오래 있었던 사람들처럼 그 spirit을 순식간에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게 되었을까?
뭐 몇가지 생각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냥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팀웍과 시너지가 참 예쁘다.
예쁘다라는 표현 말고 조금 더 근사한 표현을 찾아보고 싶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참 보기에 좋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걸까, 나는 아직 완벽한 설명이 없다.
(이럴때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하는 말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Working with a C-team, Working with a A-team (3)

글쎄…
다른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안에서 일종의 ‘엘리트’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그것이 내겐 큰 부담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특히 허물 많은 사람에게 어떤 운동이 의지하게 되는 일은 그 운동을 건강하지 않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늘 그래서 나는 KOSTA를 가면서도,
내가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invisible’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매년 해 왔다.

그럼에도 지난 몇년동안,
내 의지와 상관 없이 KOSTA 안에서 자꾸만 visible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혼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이걸 끊어 버리는 건… 내가 KOSTA를 끊는 수 밖에는 없겠다…

그래서 간사 리더십에게도 어떻게는 나는 KOSTA 그만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나는 여전히 이 일이 가치있다고 믿고 있고, 나 나름대로는 여전히 여기 오는 사람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내가 기여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KOSTA의 장기적인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해왔다.

Working with a C-team, Working with a A-team (2)

가령 한 20년전 KOSTA를 생각해보면 그랬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그러나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이, 그 일들을 해냈다.
옆에서 보기에 초인적으로 보이는 일들을 한 두 사람이 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했다.

그런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움직여지는 KOSTA가 가능 했던 이유는,
한국 기독교의 저변이 넓었고, 그 안에서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고,
그중 일부가 KOSTA에도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그런 초인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의 그룹이 KOSTA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그 수가 적어서, 그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어떤 모멘텀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능해보이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 시기를 지내며 나는 꽤 많이 절망했었다.

뭔가 기적적으로 하나님께서 뛰어난 리더들을 보내주시지 않는다면…
과연 이게 지속가능할 일일까.
이게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Working with a C-team, Working with a A-team (1)

내가 다니는 회사는 비교적 크기가 작다. 전체 직원수가 2,000명 남짓 되는 정도이니, 큰 회사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러니 우리 회사에서 가령 아시아에 있는 위탁생산업체 (OEM)에게 부탁을 해서 어떤 물건을 만들려고 하면, 우리 회사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한다.
더 크고 돈 많은 회사들이 아시아의 생산업체 입장에서도 더 중요한 것이니.

그러다보면 그 위탁생산업체에서 제일 일 잘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팀 (A-team)은 큰 회사의 프로젝트를 하는데 배당이 되고,
우리같은 회사의 프로젝트에는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 (B-team 혹은 C-team)이 배당이 된다.

그래서 우리같은 회사는 뭘 만들어내는게 훨씬 더 어렵다.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이 정말 일을 잘 못하는 거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며 교회 안에서, 혹은 교회 밖에서 다른 기독교인들과 여러가지 일들을 해 보았다.
그럴때마다 자주 느끼게 되는건,
기독교인 세팅으로 들어오면, 너무 자주 B-team 혹은 C-team과 함께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세속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work ethic같은 것이 무시되기도 하고,
정상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의사결정이나 실행이 잘 안되는 경우도 참 많이 있다.

가끔, 기독교 모임이나 교회 안에서 일을 하는데 정말 빠릿빠릿하게 일이 잘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럴때는 대개, 그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이나 그 모임의 중요 구성원들이 ‘스타 플레이어’들이었다.
세속 사회 속에서 엄청난 내공을 쌓은 분들이 기독교 세팅 안에 들어와서 일을 하다보니 그럼 엄청난 일들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은 늘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는 일도,
인간적인 탁월함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