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생각한다면

며칠전 John Ortberg의 짧은 영상이 내 youtube feed에 떴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같은데 조금 곱씹어보니 엄청난 이야기가 나왔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어떤 모습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아마도 마귀가 준 생각일 것입니다”

음…그렇다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달리기를 조금 더 잘한다면, 그건 그 사람보다 조금 더 나은거 아닌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노래를 더 잘한다면?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내 일상은 계속해서 누가 더 일을 잘하고, 누가 더 일을 못하고,
누가 어떤 것을 잘하고, 누가 어떤 것을 못하고…
그것을 쉬지않고 평가하는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내가 그렇게 평가할뿐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서로를 그렇게 평가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속에서,
이런 급진적인 생각으로 사는 것이 가능할까?

John Ortberg의 이 말은,
그말을 여러본 곱씹는 내게,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것으로 다가온다.

https://youtube.com/shorts/vVxia72jdHk?si=biMGMxoeH7shxirW

진정, 마음으로 하는 기도

지난주,
매우 분주한중에, 이 말씀을 접할 수 있었다.
말씀을 읽으며 가슴이 웅장해짐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여기 솔로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던 것 처럼,
이 시대에도 누군가가 드리는 이런 기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역대하 7장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늘에나 땅에나, 그 어디에도 주님과 같은 하나님은 없습니다. 주님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주님의 종들에게는,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내 아버지 다윗 임금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으며, 주님께서 친히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오늘 이렇게 손수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인 내 아버지 다윗 임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저마다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살아온 것같이 내 율법대로 살기만 하면, 네 자손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 하고 약속하신 것을,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님의 종인 다윗 임금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땅 위에 계시기를 우리가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내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의 종이 드리는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님의 종이 주님 앞에서 부르짖으며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주님께서 낮이나 밤이나 눈을 뜨시고, 이 성전을 살펴 주십시오. 이 곳은 주님께서 주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주님의 종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이 종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종인 나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는 대로 용서해 주십시오.

사람이 이웃에게 죄를 짓고, 맹세를 하게 되어, 그가 이 성전 안에 있는 주님의 제단 앞에 나와서 맹세를 하거든,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님의 종들을 심판하시되,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죄가 있다고 판결하셔서 벌을 주시고, 옳은 일을 한 사람은 죄가 없다고 판결하셔서 그의 의로움을 밝혀 주십시오.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님께 죄를 지어 적에게 패배했다가도, 그들이 뉘우치고 돌아와서, 주님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님께 빌며 간구하거든,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또 그들이 주님께 죄를 지어서, 그 벌로 주님께서 하늘을 닫고 비를 내려 주시지 않을 때에라도, 그들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거든,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님의 종들과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이 살아갈 올바른 길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며, 주님의 백성에게 유산으로 주신 주님의 땅에 비를 다시 내려 주십시오.

이 땅에 기근이 들거나, 역병이 돌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 떼나 누리 떼가 곡식을 갉아먹거나, 또는 적들이 이 땅으로 쳐들어와서 성읍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에워싸거나, 온갖 재앙이 내리거나, 온갖 전염병이 번질 때에,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주님의 백성 전체가, 저마다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성전을 바라보며 두 팔을 펴고 간절히 기도하거든,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십시오. 주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들은,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주신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언제나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 살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이방인이라도, 주님의 크신 이름과 강한 손과 편 팔로 하신 일을 듣고, 먼 곳에서 이리로 와서, 이 성전을 바라보며 기도하거든,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이방인이 주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는 것을 그대로 다 들어 주셔서, 땅 위의 모든 백성이 주님의 이름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주님을 경외하게 하시며, 내가 지은 이 성전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곳임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의 백성이 적과 싸우려고 전선에 나갈 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어느 곳으로 보내시든지, 그 곳에서,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내가 주님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바라보며, 그들이 주님께 기도하거든,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보아 주십시오.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백성이 주님께 죄를 지어서, 주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원수에게 넘겨 주시게 될 때에, 멀든지 가깝든지, 백성이 남의 나라로 사로잡혀 가더라도, 그들이 사로잡혀 간 그 땅에서라도,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의 땅에서 주님께 자복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죄를 지었고, 우리가 악행을 저질렀으며, 우리가 반역하였습니다’ 하고 기도하거든, 또 그들이 자기들을 사로잡아 간 사람들의 땅에서라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땅과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 도성과 내가 주님의 이름을 기리려고 지은 이 성전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거든,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시는 곳인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사정을 살펴보아 주십시오. 주님께 죄를 지은 주님의 백성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이 곳에서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마다, 주님께서 눈을 떠 살피시고,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 하나님, 이제는 일어나셔서, 주님께서 쉬실 곳으로 들어가십시오.
주님의 능력이 깃든 궤와 함께 가십시오.
주 하나님,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 주십시오.
주님을 믿는 신도들이 복을 누리며 기뻐하게 해주십시오.
주 하나님,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사람을 내쫓지 마시고, 주님의 종 다윗에게 베푸신 은총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80~90년대 모델 vs 2010~20년대 모델 (5)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 이혼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 결혼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 부모의 이혼등을 어릴때 겼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모델에 다다드리 못한 실패자들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삶의 내러티브를 살고 있는 참 소중한 사람들이다.

아, 물론 정말 나쁜 사람들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폭력을 제공하는 사람들, 이기적인 사람들,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들, 결혼관계에 faithful하지 못한 사람들 등등.. 이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회개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그런 깨어진 세상에서 나름대로 살아가고자 애쓰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다.

80~90년대 모델 vs 2010~20년대 모델 (4)

나는 가끔 (아니면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성경적 가정을 이야기할때가 아니고…

예수님이 싱글이었고, 바울은 아마도 이혼당했을 가능성이 있고, 아브라함은 첩이 있었고, 요셉은 극심한 형제간의 갈등을 경험했고, 다윗은 바람을 폈고, 룻은 남자의 잠자리에 들어가 꼬셔서 재혼을 했고, 호세아의 부인은 창녀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고.

80~90년대를 살아가던 문화에서는 건강한 가정이라는 기준과 가치 자체가 없었으므로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지만,
지금은 알콩달콩 사랑하며 사는 가치가 교회 뿐 아니라 세상에도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오히려 지금의 관심사는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쏟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멋진 모델에 따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 모델대로 살지 못하는 실패자들이다.

나는 복음과 교회가 그 실패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폭력적이지 않으면서 건강한 ‘모델’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0~90년대 모델 vs 2010~20년대 모델 (3)

내가 90년대 보스턴에 살때 출석했던 교회의 목사님이 곧 은퇴하신다고 한다.
이분은 정말 기독교적 모범생이다.
아주 좋은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부모님의 양육을 받으며 자랐다.

공부도 잘 했고, 중고등학교때 교회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후에도,
Wheaton college를 갔고, 그곳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느껴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 부인과의 관계도 참 건강하고 좋다.
지금은 자녀들이 다 컸고, 건강하게 잘 키웠다. 이제는 손자손녀들도 있고.

이분이 개인적인 고뇌가 당연히 없지 않았겠지만, 정말 좋은 ‘모델’로 삼을만한 분이다.

….

지금 내가 2020년대 California에서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은 80년대생이다.
어릴때 아버지로부터 심하게 폭력적 학대를 경험했다.
그 형은 실제로 10대때 가출을 했고, 그 후에 범죄자가 되었다.
꽤 오랫동안 therapist를 만나야 했고,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부족한 남편이라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

나는 보스턴교회의 목사님이 80~90년대의 좋은 모델중 한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렇지만 지금 이곳에서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모습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또 다시 바쁜 가을학기

이번학기에는 아무래도 성경공부를 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머뭇머뭇하다가…
그래도 물어봐오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꾸역꾸역 두 그룹을 하게 되었다.

새로 본문연구를 하면서 할만한 여유는 없을 것 같아 몇년전에 나름대로 좀 연구를 해보았던 빌립보서 본문으로 한 그룹,
그리고 책도 읽었을 뿐 아니라 내용으로 다른 곳에서 강의를 해본적도 있던 ‘조직신학 입문’ 한 그룹.
이렇게 두 그룹을 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했던 본문이니 쉽게 할 수 있으려니 했던 빌립보서를 다시 보니, 그 본문도 만만치 않고,
이미 강의를 이전에 한적이 있는 내용이지 쉽게 할 수 있으려니 했던 조직신학 입문도 역시 만만치 않다.

좀 덜 부담되게 해보려고 했었는데,
괜히 더 많이 부담되게 되었다.

그냥 내 간절한 바람은,
매우 자주 그랬던 것 같이,
이렇게 말씀과 씨름하면서 내 영혼이 조금 더 살아나게 되길.

믿음이 있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옆에서보면 아무리 봐도 아닌데,
자기는 믿음이 있다고 바득 바득 우기는 사람이 있다.
종교활동도 하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리더를 하기도 한다.

또,
옆에서보면 참 아름답고 멋진데,
늘 자신의 믿음이 많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도 대개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리더를 하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만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되거나,
아니면 매우 큰 행운을 얻게되는 등의 일을 만나면,
이런 사람들의 믿음이 실제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제대로 드러난다.

작년에 갈라디아서를 공부하면서 나름 살짝 충격을 받았었다.
만일 내가 공부한 대로라면, 내가 과거에 그리스도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매우 위험할만큼 믿음의 가장자리에 밀려나와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정말 정직하게 자꾸 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나는 정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나는 정말 신자인가.

기도를 잘 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기도를 잘 하지 못할때 늘 대는 단골 핑게들이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았다.
많이 바빴다.
다른 일로 마음이 빼앗겨 있었다…

지난 2~3주, 기도를 별로 잘 하지 못하고 있다.
내 자신을 성찰해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때

예전에 블로그에서,
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그렇게 문득 강아지를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 않은지 꽤 되었다.
내가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과 기도를 써야할 곳들이 명확하게 있고,
그런 속에서 일은 줄어들지 않은데다,
내가 혼자서 엉뚱하게 벌린 성경공부등까지 겹쳐서 꽤 정신이 없다.

지난 주말에는 작정하고,
이번학기에 공부하는 빌립보서 본문연구를 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빌립보서에서 만나는 바울은 정말 대단하다.
정말 복음에 사로잡혀 산다는건 저런거겠다 싶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

바울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

내가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산다는건,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겠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건 아닌것 같다

K Pop!

주말에 집 근처의 Target에 갔다.
그런데 거기 진열되어있는 ‘음반’의 절반 이상이 K-pop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같은 사람이 있었지만, 내가 이름을 잘 알지도 못하는 K-pop 그룹/싱어를 포함해서 많은 앨범들이 있었고, 그중 많은 것들은 다 팔려서 텅 비어 있었다.

산호세에 우리 팀이 사용하는 PCB를 만드는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 옆에는 K-pop 관련된 물건들과 앨범을 파는 가게가 있는걸 발견했다.
거기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도 전혀 아닌데요.

Google의 로비나 근처의 식당, 쇼핑몰등에서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K-pop이 나오는 것을 듣는 것은 전혀 신기하지 않다.

그런데…
막상 나는 K pop을 잘 모른다. ㅠㅠ

참내… 이런 세상이 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