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

내가 월급이라는걸 처음 받았던 건 대학교때였다.
그때 우리는 전교생이 학교에서 ‘용돈'(?)을 받았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일해서 번 돈은 아니었다.

그 후, 대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학교에서 실험등을 돕고 월급을 받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한달에 4만원을 받았다.

석사과정때는 그보다 더 돈을 받았고, 그 후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훌쩍 월급이 올라 학생때 받았던것의 몇배이상 받을 수 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한데, 미국에서 RA로 받는 것도 한달에 한번 받았던 것 같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늘, 한달에 얼마가 아니라 2주에 얼마씩 받았다.
그러니 월급이아니라 2주급이라고 해야할 듯.

한때 월급날이라고 하면 잠깐 여유가 생긴 날이므로 그걸로 뭘 할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아마 한국에서 직장생활할때 그랬던 것 같다.)

그후 미국에서 대학원시절에 RA를 받을때, 그 이후 첫직장에서 돈을 받을때…
그냥 매달매달 늘 빠듯하니, 월급을 받는 날이라고 하더라도 뭐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요즘은,
2주에 한번 돈을 받을때, 아주 많이 쪼들리지는 않는 정도로 받는다.
그러니 얼핏 생각해보면 월급날 한번은 그래도 하다못해 한국식당 한번쯤 갈만하다 싶기도 한데,
그게 그렇게 되질 않는다.

한편, 아주 재정적으로 힘들지 않게된것이 감사하면서도,
정기적으로 회사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그것에 감사하는 습관이 내게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발견한다.
더 이상 내게 월급이 그렇게 많이 감사하지 않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다.

무능력은 죄일까?

이건 계속해서 내가 고민하는 문제이긴 한데,
정말 무능력이 죄일까 하는 것이다.

무능력이라는것은 다소 너무 강한 표현일수 있겠고,
무능력이라기보다는 능력이 부족함 (저능력?)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특별히 더 악한 사람은 아닌데, 충분히 생각할 능력이 부족해서,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신념만으로 세상과 사람을 평가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종교적인 열심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된다.

그리고, 나는 지금 한국의 집권세력도 역시 그런 부류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 사람들을 잘 모르니 물론 내 생각이 틀릴수도 있겠다.)

자기성찰은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능력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기성찰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꽤 ‘선한’ 혹은 ‘순진한’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성찰을 하는 것을 참 여려워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성찰의 부족함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피해와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기성찰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죄일까?

한국의 선거

웬만하면 정치상황에 과몰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내 나름대로의 정치 성향이 꽤 뚜렷한 편이다.

그래서,
한국의 선거 결과 뉴스를 밤 늦게까지 보고, 새벽에 일어나서 보면서,
약간 열받아 하기도 하고, 약간 좋아하기고 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었을때 대학생이었던 나는,
도무지 대통령으로 인정할수 없는 ‘악’으로 그 당시 권력을 이해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고,
그 권력이 무너지도록 정말 간절히 바랐다.

나는 지금의 집권세력이 전두환같은 집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매우 무능하면서도 이기적이어서 한국사회와 한국이라는 국가 집단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집권셰력이 제한되는 선거 결과가 나왔으면 하고 바랬다.

이번의 선거 결과가 충분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선거를 통해서 좀 정상성이 회복되어가면 정말 좋겠다.

한 주말을 불꽃같이 보내고

지난 주말,
KOSTA모임 때문에 동부에 다녀왔다.

왔다 갔다 하면서 잠도 부족했고, 나름 꽤 정성을 들여서 시간을 보내야했기에 정신적인 에너지도 많이 썼다.
예전같으면 넘치는 체력으로 넉넉하게 했을만한 것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녀오고나니 피로가 후다닥 사라지지 않아서 하루는 피로감에 쩔어 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말 내가 나눈 이야기들이 적절한 것이었을까 하는 soul searching과 자책이 엄청 몰려와서,
계속 마음이 쓰이고 있는 중이다.

어제 자그마치 8시간을 자고, 오늘 아침 double espresso를 아침에 마시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탐욕

요즘 실리콘밸리는 다들 미쳐돌아간다.
한동안 테슬라의 주가가 미친듯이 올라서, 테슬라 직원과 테슬라 주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미친듯이 많은 돈을 한꺼번에 버는 일이 생겼었다.
이제는 NVidia의 주가가 미친듯이 올라서, NVidia 직원과 NVidia 주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말도 안되게 짧은 기간에 말도 안되게 큰 돈을 버는 일들이 생겼다.

사람들은 다들 그래서 다음 어디에서 그렇게 큰 잭팟이 터지나 하면서 눈이 벌개져서 찾고 있다.

내가 우리 회사 동료들이 얼마나 버는지 당연히 알지 못하지만, 대충 그래도 어느정도 벌 것이라고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적어도 연봉 35만~40만불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조금 더 돈을 벌지 못하는 것 때문에 정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면서 어떻게하면 자신도 그렇게 한꺼번에 부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몹시 초조해한다.

가령, start-up을 하면서 많은 risk를 감수하고, 그것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서 high-risk high-return을 얻게 되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만하다.

그렇지만, 지금과같은 상황에서 주가에의해 어떤 사람들이 갑자기 큰 부자가되는 체제는 그냥 그 속에서 사람들이 망가져가버리게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아, 내가 아는 사람들중에 Tesla나 Nvidia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 사람들이 돈 많이 벌게된게 잘못되었다는게 전혀 아니다. 그 사람들 돈 많이 벌고, 그걸로 좋은 일 많이 하면 좋겠다.^^)

Dune

영화 Dune Part 2를 봤다. – 일종의 내 생일 축하 기념(?) 으로.

몇가지 생각.

  1. 나는 SF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열광하고 좋아하는 Star wars나 Star track도 뭐 그냥 그렇게 보았다.
    Dune도 당연히 나는 큰 기대 없이 보았다.
    첫편을 보고는, 음… 이건 좀 다르게 재미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두번째 편을 보고서야, 아 이건 다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다. 생각할 것도 많고.
  2. 어디선가 비슷한 생각을 읽은 것 같은데,
    Dune 시리즈는 20년전에 나왔던 The Lord of the Rings (반지의 제왕) 시리즈 영화와 대비될만한 것 같다.
    The Lord of the Rings 영화를 보았을때 받았던 비슷한 느낌을 Dune 을 보면서 받는다.
    그 스케일의 웅장함, 서사의 무게, 그 속에서 작가가 하고 싶어하는 무거운 메시지…
  3. The Lord of the Rings는, J.R.R. Tolkien이 쓴 소설을 바탕으로 했고, Tolkien은 잘 알려진 그리스도인이다. The Lord of the Rings에서도 그런 기독교적 사상이 여기저기 잘 스며들어있다.
    반면, Dune의 작가인 Frank Herbert는, 적어도 내가 알기론 종교를 가졌던 것 같지 않고, Dune에서는 적어도 현상으로서의 종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한편 Dune을 보면서 살짝 불편한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 뭔가 속시원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4. 그리고, 어쨌든 Dune의 이야기는 ‘메시아 서사’이다. 자신이 메시아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는 주인공의 고뇌가 담겨 있다.
    나는 예수님도 그런 고뇌를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5. 1984년에 Dune을 한편짜리 영화로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원작을 잘 살리지 못한 실패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Dune 시리즈는 아주 평가가 좋다.
  6. 그런데 찾아보니 Dune을 책으로보면 이게 자그마치 6권짜리다!
    게다가 그 아들이 이어서 후속편 같은 것도 썼다고 하고 (그건 평가가 별로 좋지 않은 듯)
    Dune 책을 해석해주는 책들도 많이 나와있는 것 같다.
    아마 책을 사서 보게될 것 같지는 않다. 엄두가 나질 않는다.

55세

지난주 55번째 생일을 맞았다.
사실 생일에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고, 부활절을 바로 앞두고 조금 근신하고 싶어서, 그냥 조용히 생일을 지나갔다.

사실 생일 당일까지 내가 55세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게 55번째 생일을 축하한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어릴때, 55세쯤 되면 정말 내가 많이 무르익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르익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이제 나의 전성기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ㅠㅠ

내 체력이나 지적능력은 분명히 더 이상 예전같지 않지만,
아직 내가 가야할 길은 멀다는 생각이다.
더 잘 익어가야…

He is Risen

부활절을 지내며 생각하게된 몇가지

  • 예수님께서 부활하신것을 마음껏 기뻐하는 것은, 뭘 어떻게해도 성이 다 차지 않는다. 정말 기쁘고 좋은 사건인데, 정말 Good News인데, 그걸 어떻게든 표현해 내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 적어도 내가 다녔던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미국 교회들은 대개 건강한 교회들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그런 교회들에서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는 매우 ‘개인전도’에 집중해서 설교를 하고 예배를 디자인한다. 한편 그것이 참 좋아보이고, 그런 마음을 쓰는 교회가 참 멋지다.
    그렇지만 또 한편, 정말 그 부활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끼리 더 깊게 그 부활의 신비에 대해 나누고, 그것을 함께 마음껏 기뻐하는 것이 정말 부족한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 부활절에 교회에서 이 노래를 부른적은 없었던것 같은데, 정말 가사가 좋다. link
  •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절에 교회에서 다 함께 모두 함께 낭독해도 참 좋을 것 같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나는 새번역 성경을 보지만, 이 구절은 예전에 개역성경을 볼때 외웠던 구절이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뭔가 입에 더 착착 붙는다.)

나와 하나님 사이의 비밀

유난을 떨면서 가까운 친구사이는 물론이고,
함께 오래 살았던 부부사이에도,
그냥 정말 친밀한 사이라면, 그 사이에만 있는 독특한 비밀/정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다못해 회사에서 오래 함께 일한 사람들 사이에도, 그 둘 사이에 나눈 이야기들, 일하면서 알게된 서로의 스타일 등등 그저 둘 사이에만 존재하는 ‘비밀’이 있게 된다.

이게 꼭 둘 사이에서만 꼭꼭 감추어두려고 하는 것이 물론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구구절절 다른 사람들에게 다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기도 하고, 그걸 다 설명해내려면 너무 많은 context를 설명해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둘 사이의 ‘비밀’로 남을 수도 있다.

어떤 개인과 하나님 사이에도 그런 비밀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오래되고 깊어지면 더더욱.

나는 목회자나 설교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 같이 다른 기독교인들과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하나님과의 비밀의 깊이가 얕아지게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깨닫게 된것, 알게된것을 부지런히 퍼내가며 다 이야기하게되기 쉽기 때문.

그런데,
그렇게 나와 하나님 사이만의 비밀을 다 퍼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나치게 ‘객관화’되어서,
하나님과의 친밀함 자체도 그저 말로 설명하는 수준이 되어버리게 도는 우려가 있다.

내가 여러 social media에서 구구절절 내가 하는 일들을 쓰거나 표현하지 않는 커다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블로그다.
이 블로그에서 거의 매일 하나씩 글을 쓰다보면, 나와 하나님 사이의 그 은밀한 비밀이 이곳에 흘러나오고, 나와 하나님 사이의 친밀함이 얕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