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ood Commencement Address

Conan O’Brian이 금년 Harvard 졸업식에서 commencement speech를 했다.
내가 들어본 commencement speech 중 가장 좋은 몇개중 하나였다.

아주 좋았던 포인트 몇가지.

  1. 어떤 것에 대한 비판이 직설적이지 않았다. 코메디언이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가령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는데에도 웃음을 섞어서 아주 멋지게 해냈다. 직접적인 비난이 아니라 풍자와 웃음이었다.
  2. 자신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업적을 풀어놓는데 시간을 거의 보내지 않았다.
    이 사람도 역시 Harvard 출신이고, 나름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게다가 기존의 코메디언이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의 그런 것을 포장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명확하게 했다.
  3. 어쩌면 가장 중요한 포인트.
    Harvard 졸업생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했다. 이것은 결국 이 speech의 결론이기도 했다.

    So maybe my wish for you is not that Harvard becomes the last thing people know about you,
    but instead that Harvard becomes the least important thing people know about you.

    Because your real education starts now, with friends you’ve made and friends you’ve yet to meet, with stunning successes and miserable defeats, and with a humble acceptance that your greatness comes from the mess around you, not despite it.

    이 연설은 가령 Steve Jobs가 Stanford에서 했던 commencement speech와 비교했을때, 비교할수 없을 만큼 격조있다.

그건 어쩌면…
실패를 성공으로 극복한 사람과
실패를 그대로 받아들여 성공의 일부로 만들어낸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My manager has been laid-off

내 manager G가 어제 날짜로 갑자기 layoff 되었다.
Layoff를 두번 경험해본 나로서는 G가 어떻게 이걸 handle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 수요일 잠깐 G를 본 이후 인사도 못한채 그냥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회사에서 지워져 버렸다.

이런걸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농담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하고, 함께 열받기도 하는 과정을 그래도 지난 6개월 정도 보내면서 나름 정도 들었는데….
그냥 회사의 모든 system으로부터 G가 block되어 버렸고 G의 자취가 그냥 이렇게 사라져버렸다.

G는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이었다. 60대 초중반 정도. 손자손녀도 있는 할아버지이고.
Armenia 출신인데 그래서인지 유난히 지중해쪽 음식을 많이 좋아했다.
나이에 비해서는 매우 건강해서 먼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도 했고, 가끔씩 자기 돈으로 팀에게 밥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존재가 그냥 그렇게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G에게 text message를 보냈다.

조만간 그래도 회사 몇사람들을 모아서 G와 점심을 한번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J 형

지난주에는 J형과 연락이 닿았다.
J형은 석사를 마치고 선교사가되어 지금까지 선교사로 살고 있다.
그 형이 보내주는 선교편지를 그래도 계속 받아보면서 아주 적은 액수이지만 조금씩 헌금하고 있기도 하다.

J형은 내게 처음 성경공부 인도를 해보라고 권했던 형이다.
나는 그 형에게 말도 안되는 말 하지도 말라고 얘기했었다.
(J 형에게 이야기했더니 형은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 ㅎㅎ)

그 형이 보내오는 선교편지를 읽으보면,
내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신학적 입장에서 선교를 하는 것이 보이기도 하고,
아마도 그 형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깊게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가능성도 많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형의 삶이 옳다.
그 형이 그래도 자신의 삶을 헌신해서 더 자신을 위해서 살 수 있었는데,
그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결심은,
정말 옳다.

J 형은 아직 내가 20대 초반의 학생인냥 내게 너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고..
나를 다시 봃 수 있길 바란다면서 이야기했다.

그래,
나 같은 사람은 그 형같은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그 형의 기도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인듯 하다.

J 형의 어떤 생각에 내가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J 형의 그 삶이 옳은 것이다.

새 전화

전화를 새로 하나 샀다.

2년전에 중고전화를 사서 쓰고 있었는데, 최근에 이게 버벅거리기도 하고 지난번에 출장갔을때 중간에 살짝 맛이가서 잘 작동은 하지 않던 경험도 있어서….
지난주에 전화를 새로 하나 사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런데,
막상 새 전화를 사려고 하니 너무 비싼거다.
사실 나는 한동안 회사에서 주는 전화를 사용해왔고,
그 이후에는 중고전화를 사서 써 와서 비교적 전화에 쓰는 돈이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새로운 전화를 그냥 사려고 하니 여러가지 할인, 쿠폰 등등 다 써도 600불 아래로 사는게 쉽지 않았다.

엄청 망설이다가 지난 주 내가 사용하고 있는 Google Fi와 연동시키고, 쓰던 전화를 trade-in하는 것까지 해서 350불 정도에 전화를 살 수 있는 기회가 떠서, 큰 맘 먹고 질러 버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뭐 그렇게 극적으로 좋아진것 같지 않다.
그냥 살짝 좀 더 빨라졌고, 배터리가 살짝 조금 더 오래가고 하는 정도.

한편, 스마트폰이 요즘 다 너무 비싸서 중고가 아닌 새 전화를 정기적으로 바꾸면서 쓰는게 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 스마트폰이 다 너무 좋아서, 웬만하면 꽤 오래 그냥 무리없이 쓸 수 있게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젠 하지 말아야할 짓거리

태국과 내가 사는 San Francisco bay area 사이에는 한번에 가는 비행기가 없다.
대개는 일본, 한국, 태만, 홍콩등에서 한번 갈아타고 가게 된다.
편도에 짧으면 18시간, 길면 24시간 이상 걸린다.

그래도 나는 양반이지.
우리 회사의 많은 사람들은 피츠버그에서 방콕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다.
다들 두번 갈아타고 오는데, 최소 20시간, 길면 30시간까지 걸리는 것 같다.

이번에 태국에서 오면서는 홍콩에 6시간 layover가 있었다.
저녁 7시에 도착해서 새벽 1시에 다음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었는데,
6시간 공항에 있으면 뭐하냐… 그냥 홍콩 시내로 한번 나가보자… 해서
그냥 막 나왔다.

엄청 날씨는 덥고,
늦은 시간이어서 문닫은 곳도 많았고…
사실 괜히 시간쓰고 나갔다 오면서 온통 땀으로 홀딱 젖어 다시 공항으로 돌아왔다.

대개 내 세대의 사람들은 홍콩의 영화들을 보고 자랐다.
그런데 나는 그 유명한 홍콩 영화중 본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홍콩에 따로 뭐 보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냥 괜히 시간만 버리고 많지는 않지만 약간 돈도 버리고 돌아왔다.

이젠 괜히 그런거 하지 말아야할 나이가 된 듯 하다.

체중조절

내가 체중이 늘어난 몇번의 일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한동안 엄청 출장을 많이 다닐때였다.

하루에 12시간, 심하면 15시간 가까이 일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시차도 엉망이고, 배고프지 않은데도 식사를 하고,
게다가 호텔과 식당에서 ‘좋은’ 음식들을 많이 먹다보니 출장을 다녀오면 체중이 조금씩 불어나곤 했었다.

요즘 뻔질나게 출장을 다니면서 그렇게 되지 않으려 엄청 노력을 하는데,
최근 태국을 다녀오면서는 그게 무너졌다. ㅠㅠ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기도 해서,
아침 7시에 호텔에서 나가서 저녁 8시쯤 돌아오고나면 엄청 피곤하기도 해서 대개는 호텔에서 식사를 했는데, 대개는 필요한것보다 많이 먹게 되기도 하고… 또 현지 시간으로 밤 11시~12시 쯤에 늘 미국과의 conference call이 있으니 그때까지 버티면서 뭘 먹게 되기도 해서, 음식 조절을 잘 못했다.

나는 내 외모를 잘 가꾸어야한다는 의지와 의도가 사실 거의 없긴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건강을 돌보아야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높은 스트레스 상태에서,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참 쉽지는 않아 보인다.

D가 폭발해 버렸다.

태국의 회사의 program manager는 D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 일 참 잘하고 친절하고, 영어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이 너무 과도하게 그 사람에게 몰렸고,
그쪽 회사에서는 D를 support하는 일이 부족하다 보니…
D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너무 커져 버렸다.

실제로 현장에서 D를 만나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명확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D의 무게를 줄여주려고 노력했으나,
그게 나만 노력한다고 되는건 아니었다.

지난주,
결국 D가 우리의 conference call을 하는도중 무너져 내려 버렸다.
새로 더 meeting을 잡자고 우리쪽에서 누가 이야기를 했는데,
이미 너무 meeting이 많고,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더 이상 뭘 하는건 무리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은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었다.

아…

D가 폭발해버리니 D에게 이것 저것을 요청하던 사람들은 순간 조용해졌고,
그 후에 우리 회사 쪽에서도 난리가 났다.

안그래도 우리 회사 project가 힘들다고 그쪽 회사 사람들이 그만두는 일이 몇번 있었는데,
D마저 그만두면 정말 큰일이다…라고 생각해서였는지,
어떻게든 D와의 미팅을 줄이고 D가 하는 일을 줄여주자는 말이 우리쪽에서 나오게 되었다.

지난 몇주,
우리 쪽에서도 하루에 5시간 남짓 자면서 계속 일했던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도 좀 제정신으로 살아남길 조마조마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D가 참 안쓰럽다.
어떻게든 D를 더 도우려고 노력해 왔는데,
내가 했던 노력들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참 안타깝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론,
D가 그렇게 폭발해 버린 것이 감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된 것 같다.

아시아 공장에 가서 불편한 것

요즘 뻔질나게 태국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젠 시차를 그냥 쉽게 적응하고 버티기 쉽지 않아서,
요즘은 멜라토닌등 약간 약의 도움을 얻어서 도착해서 한주, 돌아와서 한주 정도씩은 보내고 있다.

아시아에 있는 공장에 갈때마다 몹시 불편한 마음으로 돌아오곤 한다.

우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일하는 환경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환경에 비교해보면, 참 쉽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회사 물건을 만드는 production line은 2 shift로 운영되는데,
한 shift가 사실상 10시간이다. 중간에 식사시간 휴식 30분.

물론, 나도 역시 하루에 10시간은 훨씬 넘게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일하는 환경이 훨씬 좋지 않다.

또, 그쪽 엔지니어 중에서는, 태국에서 그래도 제일 좋다는 대학교에서 박사까지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리고 일해보면 아주 빠릿빠릿하게 일 잘 하는데)
그리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결정은 그렇게 많지 않고, 우리가 하라는 대로 그대로 일을 하는 수준이다.

그저 그 사람들은,
조금 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만으로,
더 나쁜 환경에서, 더 낮은 수준의 일을, 더 적은 수입을 받아가며 하고 있는 것.

대개 미국에서 간 우리는 좋은 conference room같은데 배정을 해주고,
그 사람들은 쉬는 시간에 복도에 나와서 전화를 보는 것 정도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일종의 계급이 나누어져 있는 것 같은 상황이다.

더 힘든 것은,
미국에서 간 어떤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그 사람들을 막 대하는 거다.
우아…. 옆에서 정말 완전 열이 받는데….
내가 거기서 폭발한다고 뭐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아시아 나라에 출장을 가는 것은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참 힘들다.

자의적 성경묵상도 좋다

성경 본문을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가치체계로 가지고 와서, 자신에게 적용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역사 속에서 그렇게 자의적 성경묵상을 했던 훌륭한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최근(?)에 다시 조금 살펴보게된 디트리히 본회퍼도 그렇다고 보인다.

이분은 내가 보기에는 매우 신정통주의적 접근으로 신앙과 세상을 해석했던 분 이다.
성경 text를 분석하고 그것으로 ‘귀납법적’으로 신앙을 도출해내기 보다는,
신정통주의적 사상으로 먼저 신앙의 틀을 잡고, 성경을 그것으로부터 ‘연역적’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분의 모든 생각에 모든 사람이 동의할 필요는 당연이 없지만,
그분의 삶과 사상은 적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모범과 이정표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이 본회퍼의 성경묵상을 비판할 수 있을까? – 말도 안된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사상으로 성경과 신앙을 해석해내고, 그 불완전한 여러 생각들의 흐름을 하나님께서 역사속에서 움직이시면서 큰 그림을 만들어 나가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파괴적이지 않다면, 그리고 건강한 신앙 전통 속에 있다면,
자의적 성경해석, 연역적 접근도 충분히 괜찮다.
어느 누구도 그런 해석과 접근으로부터 100%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유

하덕규 목사님 (당시는 아마도 집사님?)이 ‘자유’라는 노래를 냈을때,
그 가사는 정말 내가 딱 느꼈던 바로 그 자유였다.

무언가를 간절히 찾으면서 살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내가 찾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말.

그런의미에서 내게 CS 루이스가 한 말은 내게 정말 딱 들어맞는다.

Now the story of Christ is simply a true myth: a myth working on us in the same way as the others, but with this tremendous difference that it really happened”.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진정한 신화다. 그 신화는 다른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한가지 엄청난 차이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CS 루이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결국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그 일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라고.

내게 있어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정말 자유였다.
나는 껍질 속에 있었고, 그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목말라 하던 그 무엇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경험이었다.

그것을 분석적으로 더 표현하자면 물론,
– 나 자신으로부터의 자유
– 우상으로부터의 자유
– 죄로부터의 자유
– 율법주의로부터의 자유

등등으로 표현 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정확하면서도 내게 딱 들어맞는 표현은, 마침내 껍질을 깨고 내가 찾던 것을 찾게된 자유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래서 정말 미친듯이 기뻤다.

그런 자유를…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 허접한 말솜씨로?
그런 자유를…
다른 이들도 알고 있을까?

금년 KOSTA를 준비하면서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