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받지 못한 기도

응답받지 못한 기도는 없다고 배웠다.
No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응답이라고.

그런데,
그건 아닌것 같다.
어떤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 것이다.
요청하고 기도했는데도 하나님께서 그것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왜 그러시는지는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응답받지 못한 기도 끝에 울고 있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할 수 있는건…
사실 거의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저 그와 함께 우는 것 외에는.

말은 참 값싸다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게가 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친구의 아픔 등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다.

글도, 말도, 심지어는 나 같은 별것 없는 사람의 기도도,
그냥 다 너무 값싸다.

그러니 말이나 글로 무어라 표현하지 않고,
그저 나도 침묵하며 기도한다.

그냥 우는 사람과 함께 멀리서 울기로 한다.

보고싶은 드라마

나는 TV 드라마, netflix 드라마 등을 거의 보지 않는다.
주로 내가 TV 드라마를 보는건 비행기를 탈때다. 열몇시간 좁은 공간을 견디기 위해 시리즈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요즘은 항공사에서도 드라마 시리즈의 꽤 많은 것을 올려놓기도 한다.

그중, 언젠가 한번은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없기도하고… 또 그걸 보려면 돈을 내고 봐야해서 보지 못한 드라마 시리즈가 있다.

The Newsroom이라는 드라마이다.

다음의 장면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장면인듯 하다.

이걸 보고는 이 드라마를 정말 보고싶다고 생각한지…. 한 10년 되었다. ^^
그러니 생각만 하고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지난주에 다음의 clip을 또 보게 되었다.

이 장면을 보고서는,
진짜 언젠가 한번은 이 드라마 시리즈를 보고 싶어졌다!
정말 멋지다.

어머니의 손편지

내가 15살에 처음으로 집을 떠나 기숙사에 살게 되었을때 어머니는 내게 거의 매주 손으로 편지를 써서 주셨다.

어린 아들이 떨어져 사는 것이 걱정이 되셨을 수도 있을 거고, 다른 환경 속에서 힘들어 할까봐 격려하고 싶으실수도 있었겠다 싶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사실 그 편지 내용이 모두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옛날 ‘편지지’라고 불리는 종이에 볼펜으로 써서 주신 그 글씨는 기억하고 있다.

그 편지들을 좀 잘 모아두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지금은 그 편지들을 내가 어떻게 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어머니에게 손편지를 써본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나는 내 딸에게 손편지를 써준적이 있었던가?

왜 갑자기 어머니의 편지가 기억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아래의 그림과 같은 편지지가 갑자기 생각이 났고, 그렇게 어머니의 편지들이 생각이 났다.

사랑은 그 모든 detail이 비워지더라도 중요한것은 남게되는 신비를 가진 것 같다.

어떤 성공의 눈물은 아름답지 않다

1.
한 연예인이 엄청 뜨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좋은 기회가 생겨서 연예인으로서는 늦은 나이에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고, 많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 인터뷰를 할때 당연히 성공하지 못했던 어린시절 그 과정을 어떻게 견디어었느냐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그럴때마다 그 연예인은 울먹거리며 그때부터 계속 꿈을 잃지 않았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청중들은 박수를 쳤고, 그 연예인은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꿈을 이룬 사람으로 각종 기사에 나오게 되었다.


2.
이런류의 이야기들은 여기저기에서 꽤 많이 본다.
그런데,
사실 그런 이야기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을 꿈을 계속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성공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그 뜨게된 연예인이 흘리는 성공의 눈물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절망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꿈을 잃지 말고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눈물은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3.
생각해보면 사람을 성숙시키는 눈물은 성공의 눈물이 아니다.
그것은 좌절과 절망 속에서 두려움에 흘렸던 눈물이다.

나는…
신앙인들이 그런 눈물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면 좋겠다.

이 사순절에 조금 더 곱씹어서 해볼만한 생각이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

한때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는 이야기가 교회에서 많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은 조상의 죄나 행동이 대를 이어서 불행한 영향력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고 그것과 결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내용 전반에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다.
가계에 흐르는 어떤 ‘영적인’ 저주가 있다고 당연히 믿지 않고,
그것에 대해 예수의 이름으로 무슨 선포를 한다고 그게 단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건 기독교 믿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주술적 믿음인것 같다.

그러나,
어떤 가정이든 그 가정이 가지는 한계와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어떤 가정은 지나치게 성공과 출세를 중요하게 생각해왔을 수 있다.
늘 자기의 몇대할아버지가 높은 벼슬을 지냈고, 누가 어디 장관을 했고, 어떤 사람이 대기업 사장을 했다는 식의 내러티브가 넘쳐나고, 각 개인도 그렇게 출세를 해서 가문을 영광스럽게 해야한다는 데까지 이야기가 나아가기도 한다.

또 어떤 가정은 지나치게 돈에 집착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가르침에 집중하고, 사람을 판단하는 가치기준이 그 사람이 얼마나 돈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고, 돈을 벌기위해 다른 integrity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정의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내가 자라온 가정 환경은, 그래도 비교적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는 그것에 대해 내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당연히 어떤 가정도 완벽하지 않고, 내가 자라온 환경 속에서도 그런 한계가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가정 환경에서는 그것이 ‘공부 잘하는 것’이었다.
내 부모님이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 하셨고,
우리 삼남매가 다 그래도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고,
결국 그렇게 공부하는 것으로 내 두 동생은 먹고 살고 있다. 나도 공부를 꽤 열심히 오래 많이 했던 편이고.

공부를 잘하는 것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그것이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시킬만한 것은 아니고,
게다가 모든 사람을 그 사람이 얼마나 공부를 잘했느냐로 평가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마 나도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공부 잘하는 것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하지 않았나 싶고, 돌이켜보면 우리 민우에게 많이 미안하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가르쳐주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 민우가 더 나이가 들면서는 점점 나의 그런 그늘에서부터 자유로워지게되길 바란다.

사람에게 실망할때

나도 사실 별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이 조금 더 예수님을 잘 알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면 참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내가 가장 깊게 좌절하는 순간은,
그 사람에게서 더 예수님을 알고자하는 바람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이다.
그건 정말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다.

그러기위해서 격려하거나 자극하는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고,
뭔가 감정적으로 동요하도록 만들어 보기도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근본적인 desire를 바꾸지 못한다.
그저 잠깐 반짝 그런 자극에 반응할 뿐이다.

사람들을 격려하고, 감정적으로 돌보고, 자극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자괴감은,
이것으로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감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믿음의 성장에는 stage가 있기 마련이고,
또 삶의 경험이나 정황에 따라서 특별한 배려나 안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예수님을 더 알고, 하나님 백성의 풍성함을 더 알고자하는 마음 자체가 결여되어 있으면, 정말 잠깐 인간적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으쌰으쌰하면 잠깐 반짝하다가 그 자극이 없어지면 흐지부지 무너지고 만다.

정말 수도 없이 그런 실망을 경험해왔고, 수도 없이 그런 실망을 지금도 경험하곤 한다.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한데…. 그러려니 할만도 한데….
아직 기대와 소망을 버리긴 쉽지 않은 듯 하다.

아마 이 기대와 소망을 내가 놓아 버리면,
소위 ‘성경교사’로서의 내 노력도 그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진짜 은퇴가 되겠군.

Albert

회사 팀에 Albert라는 사람이 있다. (가명)
우리 회사는 지금 태국에 있는 어떤 회사를 CM(Contract Manufacturer)로 계약해서 일하고 있다.
그러니 뭔가 중요한 것을 만들때에는 늘 태국에 많은 사람들이 가서 있곤 한다.

Albert는 비교적 젊다. (아마도 30대 초반) 그리고 single이고.
또 Albert는 여행을 몹시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은 보통 한번 태국에 가면 2-3달씩 계속 그곳에서 지낸다.
그러면서 주말에는 근처 다른 나라를 여행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보니 태국을 중심으로 주로 많은 아시아 나라들을 주말에 다니는데, 그 리스트가 아주 화려하다.

태국, 베트남을 비롯해서, 한,중,일, 말레이지아, 싱가폴, 대만, 등등 많은 나라의 여러 도시를 주말마다 여행을 한다.

계속 출장중인 셈이니,
세끼를 모두 회사돈으로 먹고 있고 (게다가 꽤 좋은 음식들을)
잠은 호텔에서 자고, (보통은 꽤 좋은 호텔에서)
주말에는 자유롭게 여러 나라 여행을 하면서 다니고 있으니
어떤 사람들은 Albert를 꽤 부러워하기도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누군가가 계속 현장에 있고, 필요한 것들을 현장에서 하고 있으니…
나도 수시로 Albert에게 네가 거기있어서 참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한국에서 보면….
어디 한달살기 뭐 그런것들 하는 것 같던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Albert의 삶이 환상적으로 느껴지겠지.

나 같으면 얼마 있다가는 좀 힘들것 같다. 심지어는 내가 젊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사는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친구는 아주 즐겁게 그렇게 살고 있다.

생일

고등학교때부터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나는 15살부터 생일을 약간 띄엄띄엄 보내는 때가 많았다.
남자애들끼리 사는데 살갑게 생일 챙기고 그런거 별로 없었다.

나는 내 생일을 대단하게 보낸적이 별로 없기도 했고,
솔직히 말하면 그거 시끄럽게 떠벌리는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어릴때 집에 아이들 초대해서 함께 짜장면 먹었던 기억은 있다)

나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내 생일이 언제인지 잘 모르도록 하면서 살고 있다.
별로 마음에도 없는 축하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생일에 선물을 하는 사람은 아내와 딸이다.
나는 그것도 괜히 돈쓰고 시간쓰는게 싫어서,
생일 얼마전에는 내가 원하는 일상용품을 사달라고 아예 이야기를 한다.
금년에는 운동할때 쓰는 모자와 수염 trimmer를 사달라고 했다. 대충 10~20불정도.

어릴때부터 미역국을 많이 먹고 자라서인지 나는 미역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늘 집에 미역국이 있었고, 미역국이 생일에 먹는 건지도 꽤 어른이 되어서까지 잘 몰랐다.
그러니 생일에 미역국 먹고 어쩌고 하는 것도 나는 별로다.

나는 누구든 내게 그렇게 생일에 번잡스럽게 하는게 그냥 불편하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아내와 딸도 딱 그렇게 한다.
케익이라도 사려고 하면 그거 하지 말자고 하고, 선물 같은거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생일에 그냥 간단하게 집에서 불고기 구워서 먹고 작은 조각 케익 하나 나누어 먹는 정도 하곤 한다.
그건 좀 내 마음에 잘 차지 않는다. 그래도 그것보다는 살짝 좀 번잡스럽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내 생일 즈음이 되면 제일 먼저 생일 축하를 하는 것들은, 주로 쇼핑몰이다. 생일을 기념해서 5불짜리 할일 쿠폰 같은걸 보내온다.그 정도는 그래도 괜찮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생일은 축하하는 날이라기 보다는,
내가 감사하는 날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
나와 함께 자라준 형제 자매에 대한 감사,
나의 선생님들, 친구들에 대한 감사,
내가 여태껏 만나온 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내게 주어진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한 감사.

말하자면 ‘count your blessing’하는 날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오늘 내 생이라던가 그런거 아님 ㅋㅋ 그냥 생일에 대한 짧은 글을 쓴 것 일뿐)

건강

나는 소위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20대에는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일주일동안 시험공부를 했던 때도 많이 있었고,
시험기간이 끝난 후 하루 푹 자면 피로가 다 없어졌다.

50대에 들어서기 까지 하루 5시간정도 자는 것이 내 일반적인 패턴이었고,
잠은 늘 푹 잘 잤다.

천식이 있다는 것 말고는 크게 건강에 문제도 많이 없었다.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이긴 했지만 다른 큰 병은 걸린적이 없었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게 영 그렇지 않다.

하루에 6~7시간씩은 자야 하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해서 많이 관리를 해야한다. 나는 내가 잠 자는 것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전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살이 쉽게 찌고, 찐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 출장이라도 한 주 다녀오면 살이 확~ 찌는데 그걸 관리하는게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중성지방이 높아졌고, 그거 관리하기위해 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작년에는 갑상선에 작은 혹(?)이 발견되어서 걱정을 했지만 조직검사를 하고는 암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열심히 운동해보려고 노력하는데 조금만 무리하면 관절등에 통증이 생겨서 무리하지 않게 운동을 해야 한다.

또 최근에는 목이 자꾸만 쉬어서 병원에 가서 이비인후과 내시경을 해 보았더니 reflux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이상 젊지 않은 내 육체와 잘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배워나가는 것이 아마 점점 더 많이 질 듯 하다.

나는 천수를 누리면서 오래 오래 살고 싶은 바람은 없다.
그리고 어쨌든 나도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아픈 곳들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다루며 배워나가는 과정이 계속 될 것이고.

노화가 점점 진행되는 내 몸과 친구가 되는 지혜가 내게서 함께 자라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