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

요즘 실리콘밸리는 다들 미쳐돌아간다.
한동안 테슬라의 주가가 미친듯이 올라서, 테슬라 직원과 테슬라 주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미친듯이 많은 돈을 한꺼번에 버는 일이 생겼었다.
이제는 NVidia의 주가가 미친듯이 올라서, NVidia 직원과 NVidia 주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말도 안되게 짧은 기간에 말도 안되게 큰 돈을 버는 일들이 생겼다.

사람들은 다들 그래서 다음 어디에서 그렇게 큰 잭팟이 터지나 하면서 눈이 벌개져서 찾고 있다.

내가 우리 회사 동료들이 얼마나 버는지 당연히 알지 못하지만, 대충 그래도 어느정도 벌 것이라고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적어도 연봉 35만~40만불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조금 더 돈을 벌지 못하는 것 때문에 정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면서 어떻게하면 자신도 그렇게 한꺼번에 부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몹시 초조해한다.

가령, start-up을 하면서 많은 risk를 감수하고, 그것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서 high-risk high-return을 얻게 되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만하다.

그렇지만, 지금과같은 상황에서 주가에의해 어떤 사람들이 갑자기 큰 부자가되는 체제는 그냥 그 속에서 사람들이 망가져가버리게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아, 내가 아는 사람들중에 Tesla나 Nvidia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 사람들이 돈 많이 벌게된게 잘못되었다는게 전혀 아니다. 그 사람들 돈 많이 벌고, 그걸로 좋은 일 많이 하면 좋겠다.^^)

Dune

영화 Dune Part 2를 봤다. – 일종의 내 생일 축하 기념(?) 으로.

몇가지 생각.

  1. 나는 SF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열광하고 좋아하는 Star wars나 Star track도 뭐 그냥 그렇게 보았다.
    Dune도 당연히 나는 큰 기대 없이 보았다.
    첫편을 보고는, 음… 이건 좀 다르게 재미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두번째 편을 보고서야, 아 이건 다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다. 생각할 것도 많고.
  2. 어디선가 비슷한 생각을 읽은 것 같은데,
    Dune 시리즈는 20년전에 나왔던 The Lord of the Rings (반지의 제왕) 시리즈 영화와 대비될만한 것 같다.
    The Lord of the Rings 영화를 보았을때 받았던 비슷한 느낌을 Dune 을 보면서 받는다.
    그 스케일의 웅장함, 서사의 무게, 그 속에서 작가가 하고 싶어하는 무거운 메시지…
  3. The Lord of the Rings는, J.R.R. Tolkien이 쓴 소설을 바탕으로 했고, Tolkien은 잘 알려진 그리스도인이다. The Lord of the Rings에서도 그런 기독교적 사상이 여기저기 잘 스며들어있다.
    반면, Dune의 작가인 Frank Herbert는, 적어도 내가 알기론 종교를 가졌던 것 같지 않고, Dune에서는 적어도 현상으로서의 종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한편 Dune을 보면서 살짝 불편한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 뭔가 속시원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4. 그리고, 어쨌든 Dune의 이야기는 ‘메시아 서사’이다. 자신이 메시아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는 주인공의 고뇌가 담겨 있다.
    나는 예수님도 그런 고뇌를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5. 1984년에 Dune을 한편짜리 영화로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원작을 잘 살리지 못한 실패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Dune 시리즈는 아주 평가가 좋다.
  6. 그런데 찾아보니 Dune을 책으로보면 이게 자그마치 6권짜리다!
    게다가 그 아들이 이어서 후속편 같은 것도 썼다고 하고 (그건 평가가 별로 좋지 않은 듯)
    Dune 책을 해석해주는 책들도 많이 나와있는 것 같다.
    아마 책을 사서 보게될 것 같지는 않다. 엄두가 나질 않는다.

55세

지난주 55번째 생일을 맞았다.
사실 생일에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고, 부활절을 바로 앞두고 조금 근신하고 싶어서, 그냥 조용히 생일을 지나갔다.

사실 생일 당일까지 내가 55세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게 55번째 생일을 축하한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어릴때, 55세쯤 되면 정말 내가 많이 무르익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르익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이제 나의 전성기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ㅠㅠ

내 체력이나 지적능력은 분명히 더 이상 예전같지 않지만,
아직 내가 가야할 길은 멀다는 생각이다.
더 잘 익어가야…

He is Risen

부활절을 지내며 생각하게된 몇가지

  • 예수님께서 부활하신것을 마음껏 기뻐하는 것은, 뭘 어떻게해도 성이 다 차지 않는다. 정말 기쁘고 좋은 사건인데, 정말 Good News인데, 그걸 어떻게든 표현해 내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 적어도 내가 다녔던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미국 교회들은 대개 건강한 교회들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그런 교회들에서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는 매우 ‘개인전도’에 집중해서 설교를 하고 예배를 디자인한다. 한편 그것이 참 좋아보이고, 그런 마음을 쓰는 교회가 참 멋지다.
    그렇지만 또 한편, 정말 그 부활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끼리 더 깊게 그 부활의 신비에 대해 나누고, 그것을 함께 마음껏 기뻐하는 것이 정말 부족한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 부활절에 교회에서 이 노래를 부른적은 없었던것 같은데, 정말 가사가 좋다. link
  •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절에 교회에서 다 함께 모두 함께 낭독해도 참 좋을 것 같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나는 새번역 성경을 보지만, 이 구절은 예전에 개역성경을 볼때 외웠던 구절이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 뭔가 입에 더 착착 붙는다.)

나와 하나님 사이의 비밀

유난을 떨면서 가까운 친구사이는 물론이고,
함께 오래 살았던 부부사이에도,
그냥 정말 친밀한 사이라면, 그 사이에만 있는 독특한 비밀/정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다못해 회사에서 오래 함께 일한 사람들 사이에도, 그 둘 사이에 나눈 이야기들, 일하면서 알게된 서로의 스타일 등등 그저 둘 사이에만 존재하는 ‘비밀’이 있게 된다.

이게 꼭 둘 사이에서만 꼭꼭 감추어두려고 하는 것이 물론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구구절절 다른 사람들에게 다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기도 하고, 그걸 다 설명해내려면 너무 많은 context를 설명해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둘 사이의 ‘비밀’로 남을 수도 있다.

어떤 개인과 하나님 사이에도 그런 비밀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오래되고 깊어지면 더더욱.

나는 목회자나 설교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 같이 다른 기독교인들과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하나님과의 비밀의 깊이가 얕아지게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깨닫게 된것, 알게된것을 부지런히 퍼내가며 다 이야기하게되기 쉽기 때문.

그런데,
그렇게 나와 하나님 사이만의 비밀을 다 퍼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나치게 ‘객관화’되어서,
하나님과의 친밀함 자체도 그저 말로 설명하는 수준이 되어버리게 도는 우려가 있다.

내가 여러 social media에서 구구절절 내가 하는 일들을 쓰거나 표현하지 않는 커다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블로그다.
이 블로그에서 거의 매일 하나씩 글을 쓰다보면, 나와 하나님 사이의 그 은밀한 비밀이 이곳에 흘러나오고, 나와 하나님 사이의 친밀함이 얕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나는 두가지를 배웠다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말씀하셨을때에,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권세는 하나님의 것’ 이요,
‘한결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 이라는 사실을. (새번역)

Once God has spoken;
twice have I heard this:
that power belongs to God,
and that to you, O Lord, belongs steadfast love. (ESV, 시편 62:11-12)

가끔은 늘 알던 성경말씀이 심장 깊이 박힐때가 있다.

다음주 고난주간을 앞두고, 이 말씀이 그렇게 움직인다.

정치 과몰입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가 한달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내 news feed에도 온통 그 이야기다.
미국 뉴스도 그렇다. 매번 미국 대통령 선거 이야기다.

나는 20대부터 지금껏 한국이나 미국이나 모두 한쪽만을 지지해왔고, 나는 한국 국회의원 선거나 미국 대통령 선거나 둘 다 투표권이 없지만, 만일 투표할 수 있다면 이번에도 같은 쪽에 투표할것 같긴 하다.

그러나,
정치가 마치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으려고 정말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특히,
지금 어떤 정치 집단이 너무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어서 어떻게든 그 반대쪽이 힘을 얻는 것이 정상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궁극적 해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시 remind 해본다.

어떤의미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는 정치적으로는 점점 anabaptist가 되어가는 것 같다.

밥은 먹어야지…

내가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할때,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 그냥 마음에 여유가 정말 없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구소에 다니던 그 형은,
점심시간에 내 실험실 근처까지 와서는, 나와 밥을 먹어 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하는 말. “오승아,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나와라. 나랑 밥 먹자”

그 형이 그렇게 불러내어서 함께 밥을 먹으며,
쫓기며 살던 내게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도움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 주말,
그 형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 형을 만나지 못한지 20년도 더 지났지만…
그 형에겐 지금도 참 고맙다.

아직 내 믿음이 형성되어가던 시기에 (뭐 지금이라고 다 형성되었냐 하면 그건 아니겠지만)
그 형은 내게 참 큰 힘이 되어주었다.

형… 20여년 못보았는데, 그 사이 먼저 가셨네요.
앞으로 한 몇십년 후딱 지나면 형 다시 보겠지요.
그때 형에게 고마웠던거 많이 이야기할께요.

바울과 요한

지난달인가,
동네 목사님 한분과 식사를 했는데,
그분이 나보고 바울같은 스타일의 사람이라고 하셨다.

음…
나는 아니라고 막 그랬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바울같은 사람이 아닌 근거 몇가지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바울은 엄청 천재였다.
    나는 아니다. 아마 평균보다는 살짝 더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을 것 같긴 한데, 당연히 천재는 아니다.
  2. 바울은 완벽주의자였다.
    나는 아니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catch하지 않는 detail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완전 빈틈이 많고 그 빈틈이 많은 속에서 살아간다.
  3. 바울은 자신에대한 확신이 늘 강했다.
    나는 내가 가진 생각이나 믿음에대한 회의가 늘 내게 가득하다.
  4. 바울은 결단력이 강했다.
    나는 꽤 우유부단한 편이다. 가끔 급하게 생각과 결심을 해야할때는 정말 이를 악물고 내 본성을 거스러서 하는 편이다.
  5. 바울은 그칠줄 모르는 엔진같은 사람이었다.
    낮에는 텐트를 만드는 생업을 하고, 밤에는 열을 팍팍 내면서 설교를 하고…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은 땅 끝 까지 가겠다면서 방방.
    나는 꽤 게으르다. 내가 가끔 부지런하게 보일때가 있는데, 그건 내게 닥쳐오는 일을 가능하면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빨리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바람때문에 폭풍처럼 일을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혹은 일이 밀어닥쳐서 내가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두려워서 그렇게 후다닥 내게 떨어지는 일을 처리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바울은 에니어그램 1번이나 8번 이 아닌가 싶고, 나는 3번이나 6번에 가깝다.
이렇게 나는 바울 스타일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요한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의외로 나는 꽤 관계적이다.
특히 하나님을 생각할때 그렇다.
내게 있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분이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불도우저같이 감당하기 보다는,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 사랑때문에 그 안에 머물러 충성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내가 훈련과 교육을 받아온 길이,
나의 관계적인 면들을 잘 develop하도록 나를 이끌어주지 못했던 것 같고,
그래서 나는 functionally 그저 열심히 일하는 사람같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주 예전에…
한 30년쯤 전에, 나를 잘 관찰하던 한 형이 내게 그렇게 이야기해준적이 있었다.
너는 요한과 같은 사람인것 같다고.

그때 나는 엥? 내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그 형이 나를 잘 보았구나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