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time?

미국의 노동자들이 일년간 노동시간이 1951년에 2031시간이었다.
2017년에는 그것이 1757시간으로 줄었다.
한국은 1980년 2864시간이던 것이 2017년에는 2063 으로 줄었다. (아마 요즘은 더 줄었을 듯)

어쨌든 이제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이 자료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산업혁명시대에 노동자들이 하루에 12~15시간 일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료는 여기서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물론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은 결국 생산성(productivity)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더 많은 것을 해 내는 사회가 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여러 기술의 발전은 사회의 생산성을 더 높여줄 것이고, 어쩌면 사람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더 줄어들것이다.

그런데…현대인들이 그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 ‘탐닉’하는데 사용한다.

netflix/youtube 같은 영상 자료들을 탐닉해서 보거나,
낚시/등산/운동 등등의 야외 취미활동을 탐닉하거나,
컴퓨터 게임 같은 것에 탐닉 하는 것.

나는 이것들이 나쁘다고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에 빠지고 탐닉하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일반화하기에는 분명히 위험성이 있긴 하지만,
나는 줄어든 노동시간으로 인해 얻어지는 시간을 활용하는 어떤 방식은…
대단히 건강하지 못하거나, 대단히 게으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천년전에 쓰여진 잠언 같은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 게으름 말이다.
혹은 2천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7 deadly sins에서 이야기하는 그 게으름 말이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어떤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자기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채 취미활동에 매달리던 어떤 사람.
분명히 무너져 있는 자신의 어떤 부분을 등한시 한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자꾸만 탐닉하던 어떤 사람.

게으름을 그 사람의 잘못으로 모두 돌리긴 어렵다.
어떤 사람은 overwhelm한 상황 속에서 일종의 도피처로 게으름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게으름은 건강하지 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교회에서는 최소한 그런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뭔가 고난을 감수하고 따르라는 말씀인 것 같이 보인다.

물론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생각하고 공부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실때에는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 속죄의 십자가같은 의미로 말씀하셨을 리가 만무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전이기 때문.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은 그 말씀을 어떻게 들었을까?

십자가는 그 당시 제국에 대한 반역을 하는 죄인에 대한 처형 방법이었다.
아주 많은 죄를 지었다고 십자가 처형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사람들이 들었을때, 그 사람들은 아마도 로마에 반역하는 것을 각오하고…라고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정치적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으로 연결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엔 아마도…
그 당시 사람들이 살고있는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었던 로마 제국 체제를 거부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가 너희의 삶의 터전과 근거를 삼고 있는 그 근본 자체를 흔들어버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의 맥락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 이전에 바로 바리새인에 대한 비판을 하시는 흐름이 쭈욱~ 나온다.
그러니 아마도.. 자기 agenda에 천착해있는 바리새인들과 같아지지 말고,
너희는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모든 agenda, 너의 삶과 생활과 사상의 근본이 되는 모든 foundation 자체를 포기하고 따라오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읽어보면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고난을 감수하라는 말씀이라기 보다는
너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모든 ‘근거’들을 포기하라는 말씀에 가깝다고 생각하게되었다.

어찌보면 훨씬 더 radical한 말씀인거다…

Tony Campolo @ Hour of Power

토니 캠폴로가 로버트 슐러 / 바비 슐러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적어도 내겐 기이한 일로 보였다.

토니 캠폴로는 미국적 소비주의에 기독교가 오염된 것을 비판하는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하나이고, 로버트 슐러 / 바비 슐러는,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런 미국적 소비주의에 가장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기독교 설교자들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래의 youtube 설교를 들어보면 토니 캠폴로는 그 설교를 하는 도중에 바비 슐러와 그 교회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 이야기만을 하면서 설교를 한다.

이런 것은 어느정도 타협인걸까, 그렇지 않으면 굳이 이런 자리에서 그 차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함께 하려는 일종의 관용일까.

내가 더 젊었을 때에는 이런 모습을 타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은 타협이 아닌 관용과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내가 토니 캠폴로가 이런 자리에서 설교 했다는 것을 관용과 지혜의 모습이라고 판단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분이 그분의 신념과 믿음을 굽히거나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내 믿음 때문이다.

더 깊고 강한 믿음은 어쩌면 조금 더 여유있는 관용을 보여주는 근거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버지니아 다녀왔다

지난 주말 버지니아에서 주로 남부 버지니아에 있는 몇개 교회/학교 연합 수련회가 있었는데, 그곳에 다녀왔다. 정확하게는 잘 모르지만 얼핏 보기에 한 150~200명 정도쯤 모이지 않았나 싶다.
거의 99%가 학부생이었으니 우리 민우보다 어린 아이들이었다.

4번의 설교를 해야했는데,
다행히 그럭저럭 잘 마친 것 같다.

  1. 이번 설교를 위해서 아주 새로운 본문을 공부해가며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서, 예전에 공부하거나 설교했던 본문을 가지고 약간 내용을 바꾸어서 준비해서 갔다.
    그들만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에, 그리고 그것을 더 잘 준비하지 못한 내 게으름때문에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2. 나야 설교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 같은 사람의 경험이 그냥 뭐 일천한 것이겠지만…
    어떤 때는 설교를 준비할때 그야말로 그 청중을 향한 여러가지 생각들이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들어와서 뭐 한시간 짜리 설교가 10분만에 뚝딱 준비가되는 때도 있다. 나는 이게 정말 성령께서 해주시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렇게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번에는 여러가지 새로운 생각들이 쏟아져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가 더 힘들었고, 뭔가 짜내서 하는 것 같은 부담이 내게 있었다.
  3. 계속 준비하는 마지막까지 좀 스트레스 많이 받는 회사일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더 집중해서 준비하는 것이 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설교 내용이야 뭐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다 마음에 담는 일이 잘 되지 않아서 하루 일찍 버지니아에 가서 하루밤 60불짜리 제일 싼 호텔에서 묵으며 혼자서 기도도 하고 준비도 해보려 했다.
    그런데 정말 마지막까지 막~ 분주하고 정신없는 내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는거다.
    그래서 그 내용이 마음에 온전히 잘 담겨서 이야기할 자신이 정말 없었다.

  4. 생각이 쏟어져들어와서 준비하게되는 설교는 그 내용을 미리 연습을 한다거나 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그 생각들이 머리와 마음에 생생하게 다 담기게 되고, 몇개의 bullet point만 정리해가면 현장에서도 그야말로 신기할 정도로 말이 막 나온다.
    어떤땐 어떤 말을 하고 나서도, 내가 이런 말을 어떻게 생각해냈지 할 정도로 딱 맞는 표현이 갑자기떠올라서 이야기를 하게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호텔방에서 그 내용을 가지고 혼자 연습도 해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서도 내용이 머리속에는 있는데 마음에 온전히 담긴다는 느낌이 계속 들지 않는 거다.
    그래서 기도를 조금 더 하려고 하는데 기도도 뭔가 막혀서 잘 되지 않았다.
  5. 결국 현장에 도착해서 설교를 하기 직전까지도 그렇게 막혀있는 것이 해결되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첫첫날 저녁 설교를 시작해야 했다.
    마음에 부담이 컸다.
    그냥 내가 머리에서 끄집어낸 지식을 짜집기해서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 내용이 온전히 내 마음에 다 담겨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부담.
  6. 설교들을 마치고나서 설교 잘 들었다, 도움이 많이 되었다 등등의 반응을 나는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워낙 가벼운 친절로부터 비롯된 칭찬이 교회 문화 속에 많이 있는 편이어서 별로 좋지 않았어도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설교가 정말 잘 되었는지를 평가하기위해서 나는 웬만하면 그 설교를 다시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그때 내가 어떻게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했었는가를 복기해보는 편이다.
    어제 밤 늦게 집에 들어왔으니 아직 당연히 그럴 기회는 없었다. 아마 이번주는 쉽지 않을 것 같고, 주말에 시간을 좀 내어서 한번 해봐야겠다.
  7.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고 생각했다.
    그 학생들의 고민과 생각들을 담아보려고 나름 노력을 했고, 그 문화와 언어로 전달해보려고 노력을 했는데,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전달이 어느정도는 된 것 같았다.
    집중해서 듣는 진지한 모습도 좋았고, 좋은 질문과 대화들도 많이 이루어졌다.
  8. 혹시 원하면 2주 이내에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추가의 Q&A zoom 세션을 할 수 있다고 offer를 했는데 들어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그 zoom세션에서 어떤 질문들이 나오는가 하는 것이 내가 한 이야기를 학생들이 어떻게 소화했는가를 평가하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9. 나는 설교하는 사람의 느낌에 맞추어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설교하는 사람의 기분이 그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는가 하는 것을 좌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설교하는 사람 입장에서 하나님께서 이 과정을 함께하신다는 확신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
  10. 기본적으로 나는 이런 친구들에게 깊은 부채의식이 있다.
    내가 자라오면서 누렸던 좋은 환경들, 좋은 믿음의 선배들과의 만남, 건강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던 환경, 뭔가 복음과 교회에 대한 낙관에서 오는 진취성… 이런 것들을 누렸던 사람으로서, 그런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이 세대에 대한 부담감과 부채의식.
    그래서 내가 얼마나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다른 대안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 혹시 있다면 그래도 이렇게라도 뭔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11. 이번에 특히 message 준비과정에서 어려웠던 경험은 나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할 것 같다.
    나름대로 내 자신의 상태에 대한 점검, 성찰등이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12. 내일은 또 출장이다.
    이번주는 껌뻑 죽었다 하고 버텨보아야 한다. ㅠㅠ

약간 바쁜 며칠

오늘, 내일 – San Francisco에 있는 학회/exhibition에 참석. 몇개의 중요한 meeting이 예약되어 있음

목,금,토,일 – 동부에 있는 어느 청년 모임 수련회 참석.
이것 때문에 지난 주말은 내내 설교준비하느라 정신 없었음. 아직도 설교 마무리를 조금 더 해야하는데… 4번의 설교를 하나의 주제로 준비하는 것은 나 같은 비전문가에게는 그래도 시간이 꽤 드는 일인것 같다.

다음주 화,수 – 서부에 있는 한 학회/exhibition에 참석. 이것도 하루종일 여러 회사들 만나고 바쁘게 지낼 예정.

아마도 blog update도 다음주 중반까지는 잘 못 할듯….

참… 돈이라는게…

박사과정할때 참 돈이 없어서 고생했다.
민우도 태어났고, 돈이 드는데… 꽤 아껴쓰려고 해도 늘 적자였다.

박사과정 마치고 첫 직장을 잡았을때,
박사과정때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는 월급을 받았지만 돈은 계속 없었다.
문제가 많은 중고차 타고 다녔고, 내가 아침마다 만들어갔던 점심용 샌드위치는 하루에 1불을 넘지 않도록 만들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사마시고 하는 것도 쉽게 할 수 없는 사치였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때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면서 살지만,
여전히 완전 돈 아껴가며 사는건 마찬가지다.
나는 여전히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제일 싼 차중 하나를 타고 다니고 (그래도 새차로 사서 타긴하니, 훨씬 나아진거겠지만)
어디 한번 외식을 하는 것도 선뜻 잘 하게 되지 않는다.
나와 아내 둘만 있으니, 둘이서 2인분 시키면 너무 음식이 많이 남아서 외식하는게 좀 낭비갔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그렇기도 하고.
게다가 요즘은 inflation이 심해져서 뭐 하나 사더라도 다 비싸고, 뭐 하나 사먹더라도 다 비싸셔서 더더욱…

그래도 이제는 어느정도 나누며 사는 것도 가능해졌고, 조금씩 저축하면서 사는 것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훨씬 사정이 나아지긴 한것이다. 나름 그래도 여기 저기 아껴서 많이 헌금하면서 살려고 하는데 그것도 늘 마음대로 잘 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에는 결코 아끼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실제로는… 아껴야 하는 것에 아끼지 않고,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에 아낄때가 너무 많지만.

돈이 넘쳐나는 실리콘 밸리에 살면서,
그 넘쳐나는 돈에 흥청망청 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그러나 아주 없는 돈을 쪼개가며 가치있는 사려는 사람들을 다른 곳에서 만나기도 한다.

어떻게든… 무슨수를 써서든…
이곳 실리콘 밸리의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쓰면서 살지는 말아야 겠다는 결심을 수도 없이 다시 해본다.
그렇게 내가 망가져버리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

봄학기 성경공부

오늘부터 다시 봄학기 성경공부를 시작한다.
이번 봄학기에는 누가복음 14장 이후를 하는데, 아마 18~19장 정도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 가을학기에는 3 그룹으로 하느라 좀 빡빡했는데,
이번학기에는 감사하게도(?) 토요일 저녁 9시 그룹에 신청자가 적어서 그냥 금요일과 토요일 한그룹씩, 2 그룹만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누가복음 개요 그런 ‘강의’에 해당하는 것은 미리 영상으로 녹화해서 올려놓아 성경공부 시작 전에 미리 보도록 했고, 첫시간부터 바로 본문에 들어가려고 한다.

나는 뭐 전문적으로 신학공부를 했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꽤 열심히 성경공부를 지난 거의 30년 이상 해오면서 살았는데…
아직도 성경 본문을 읽으며 새롭게 배우는 것이 참 많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이번 학기에도 기대를 많이 해본다.

정말 복음을 아는 건가?

정말 이 사람이 복음을 알고 있는걸까?

어떤 사람을 쉽게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참 건강하지도 못하고 바람직하지도 못할 뿐더러, 여러 방면에서 파괴적이다.
그러니, 언제든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려고 하는 순간이 되면 재빨리 어떻게든 그 순간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그렇지만,
정말 그 사람을 위해서, 혹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어떤 사람이 정말 복음을 알고 있는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어찌되었건 간에 이런저런 형태로 소위 ‘영적 리더십’이라는 것을 행사해야하는 위치에 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을 보며 그 사람이 과연 복음을 알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야 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복음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정말 복음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었구나 라고 생각한 경우는, 적어도 내 경험에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반면,
그 사람이 복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그 사람은 그저 상황과 분위기에 휩쓸려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 사람은 수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니 고민이다.
어떤 사람이,
정말 복음을 알지못한다고 보일때,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그냥 받아주고 그저 다양성의 일부로 인정해주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든 그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들을 더 해보아야 하는 걸까.

역겨운 위선

  1. 회사에서 무슨 프로젝트가 잘 되었다는 이메일이 돌면, 그 뒤에 사람들이 줄줄이 축하한다, 아주 훌륭하다, 모두가 한팀이 되어 이 일을 해내기 기쁘다, unbelievable, amazing, outstanding과 같은 단어들을 써가면서 칭찬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잘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예의상 그렇게 쓰는 거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회사에서는 자꾸만 표현의 inflation이 심해진다.
    unbelievable, excellent, superb, amazing과 같은 말들이 자꾸 나오는데… 그런 말들을 너무 계속 쓰다보니 그냥 그렇게 쓰는게 별 감흥이 없게 되었다.

  2. 회사에서 executive들이 흔히, 직원들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직원들의 만족이 중요하다,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되어서, 이 멋진 vision에 다 같이 헌신해서 가자…
    뭐 이렇게 말하는데…
    아… 그 사람들이 그거 진심으로 이야기하는거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것에 박수쳐주면서 호응하는 사람들도 그거 거짓이라는거 아는데… 그냥 다 같이 거짓말의 홍수 속에 춤을 춘다. 그냥 다 그런다.
    그냥 과장, 거짓말등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3. 이런식으로 매우 흔한 위선이 이번 대량 layoff 사태들을 겪으면서 더 적나라하게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을 해고하면서 여러가지 표현들을 써가며… 어떻게든 있는 직원들은 일하게 만들려는 시도들.
    해고당한 사람들을 위하는척 하면서 괜히 자기가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떠벌리고 싶어하는 linkedin의 포스팅들.
    막상 해고당한 사람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기보다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4. 이 와중에 위선 없이 자기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도 물론 있다.
    이번에 정리해고 당해서 없어진 사람의 자리로 살짝 승진하면서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참지 못하는 사람.

우아…
정말 참 역겨운 모습을 참 많이 본다.

묵상과 기도

새해 조금 더 깊이 있는 묵상과 기도를 위한 방법들을 아직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중 Tim Keller가 자신이 기도를 하는 이야기를 하는 Podcast 하나를 들었다.

그분이 지난 몇년간 췌장암 4기와 싸우면서 기도가 깊어졌다고 했는데,
그중 기도를 하기위해 다음과 같은 루틴을 사용한다고 했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깊게 묵상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질 때 까지 계속 그 말씀을 묵상을 한다.
그 후에 그렇게 마음이 뜨거워지면 그때 기도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꽤 오랫동안 내가 기도를 그렇게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렇게 기도하고 있지 않는다.

아… 내가 기도하는 법을 잃어버렸었구나 ㅠㅠ

다시 묵상과 기도의 루틴을 잘 만들어보려고 지금 노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