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있는’ 리더가 하는 두가지 실수

개인적으로 ‘능력이 있는’ 리더가 할 수 있는 두가지 종류의 실수가 있다.

첫번째는,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다른 이들의 능력을 불신하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많은 경우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이나 과대평가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겸손하지 못한 리더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듯 하다.

두번째는, 자신의 능력을 일반화하여,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때로 ‘능력있는’ 사람들이 하는 어떤 일들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모델로 삼을수 없는 독특성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능력있는 리더들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섬기고 있는 follower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돌보지 않는 독선과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두가지의 balance를 갖춘 리더를 보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어떤 것이 더 나쁜 리더일까?
두가지 모두 나쁜 리더의 모습들이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번째 유형인 것 같다.
더 뿌리깊은 교만과 더 뿌리깊은 사랑없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는…
너무 자주… 두번째 리더의 모습을 보인다.

8 thoughts on “‘능력있는’ 리더가 하는 두가지 실수

  1. 나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부정적인 면들은 왜 이리 쉽게 나타나는 걸까.

    작년 이맘때쯤 부터 내 이런 면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해 왔는데, 이번주에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님 한분이 나의 이런 면들을 다시 remind 해주셨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2. 이번 주에 저도 위의 글과 관련하여 이런 저런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요, 너무나 능력많은 사람이 너무 겸손하면 그 겸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겸손자체가 칭송을 받아야 하는 미덕일까요? 아님 지금 당장의 순간적인 겸손이 아니더라도 결국의 한 인간의 삶의 지향점에서 드러난 열매로 최종적인 겸손을 평가해야 할까요?
    주님이 당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내신 것은 겸손도, 교만도 아닌 사실이요, 진리인 것처럼 어떤 경우 나는 이렇다, 혹은 남들이 그(그녀)는 그렇다 라고 모두가 평가할 때 그것을 너무 평가절하(여기서는 겸손)하는 것의 이면을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 ㅎㅎ(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 흠…
      제가 explicit 하게 쓰지는 않았는데… 제 고민의 더 깊은 곳을 찌르시네요. ^^

      겸손의 기본 정신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 (그로 인해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저는 조금씩 하게 되는데요…

      때로는,
      나를 나타내어 열매를 맺으려는 것과,
      다른사람에대한 배려/사랑이 충돌하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아마 제가 여러가지로 성숙하지 못한 탓일 텐데…

      나름대로는…
      여러분들께 조언도 구하려 해보고,
      이런 저런 시도도 해 보는데…
      저는 여전히 struggle 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고민들이 있는데,
      그 구체적인 사안들은 이야기하지 않은채… 추상적인 말로 쓰려니… 정리도 안되고 그러네요. ^^

      안 간사님과 차 한잔 마시며 언제 좀 조언도 구하고 해야겠습니다.

  3. 김영봉 목사님이 쓰신 ‘드러나지 않음의 미덕’입니다.

    뉴스앤조이 김종희 기자가 「숨어 계신 하나님」에 대한 서평 기사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신학은 그의 목회를 튼실하게 세워준다. 때로는 그 모습이 답답해 보일 때도 있다. 화끈하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비밀 햇볕(密陽)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이 답답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하나님, 좀 화끈하게 나타나주시죠?”, 미주뉴스앤조이). 이 기사를 읽고 저는 빙긋이 웃었습니다. 제 모습이 답답해 보일 때도 있다고 말하는 김 기자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언론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가장 대가 ‘쎈’ 사람 중 하나인 강골 김종희 기자를 만난 것은 2003년이었습니다. 청부론을 정면으로 비판한 저의 책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가 출간되자마자 김 기자로부터 “한번 뵙시다”라는 이메일이 왔습니다. 저는 당시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직접 만날 수는 없었고, 이메일로 여러 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진작부터 한국교회의 정신을 부패시키던 기독교 청부론에 대해 비판해 왔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제 책을 보고 반가웠던가 봅니다. 2003년 한 해 동안 한국교회의 가장 큰 이슈가 ‘청부론 논쟁’이었는데, 이 불길을 잡고 있던 사람이 바로 김종희 기자였습니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저도 김 기자를 좋아하게 되었고, 김 기자도 저를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신뢰를 늘 불안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비판과 개혁의 대상으로서 매우 취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 기자에게 가끔 이렇게 농담을 합니다. “언젠가 김 기자가 제 옆구리를 찌를 날이 있을 것을 압니다.” 청부론 논쟁 이후 지금까지 김 기자는 저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만을 썼지만, 제가 완전한 사람이 아니고야, 언제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 자신이야 비판 당할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헛된 바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언젠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예언자 나단의 비판 앞에서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겸허히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제게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김 기자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더 날카롭게 보고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기자로서 그가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김 기자가 저를 답답하게 느끼는 이유가 있습니다. 청부론 논쟁 이후, 그는 제가 여러 가지 계기에 또한 여러 가지 목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깃발을 들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교회 개혁을 위해 골몰하며 기도하며 분투하는 그로서는 제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체질상 투사가 아닙니다. 제 글만 읽은 사람들은 저를 투사로 여기지만, 저를 직접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 제게 투사적인 일을 해주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 때마다 저는 김 기자가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완곡하게 사양해 왔습니다. 뒤에서 돕는 것은 하겠지만, 앞에서 깃발을 둘고 나서지는 않겠다고 사양해 왔습니다. 그럴 사람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제 몫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참된 변화를 위해 숨어서 일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김 기자가 가끔 저를 답답하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 대목을 읽고 저는 감사했습니다. 김 기자에게는 좀더 화끈하게 활약해 주지 않아서 미안하지만, 5년 동안의 교제를 통해 그에게 비친 제 모습이 제가 추구하는 바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타락한 욕망을 봅니다. 저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이 욕망은 존재합니다. 요즈음은 누구나 ‘튀는 것’을 추구합니다. 학자들도 어떻게든 튀고 싶어서 안달인 것 같습니다. 나라의 일꾼을 뽑는 정치 선거에서도 튀는 경쟁이 인기입니다. 어떻게든 사람들 앞에 나타나고 또한 뚜렷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과거에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필명’이라는 것을 사용했습니다. 글을 써서 유명해지는 일을 피한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정신의 타락을 가져온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필명을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책의 앞 표지 날개에 저자의 근사한 사진이 고정된 지 오래입니다. 저자의 프로필은 대개 본인이 쓰는데,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 쓴 프로필로서는 낯 뜨거운 것들이 많습니다. 모두 다 튀고 싶고 드러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이 마음이 제게도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요즈음도 매일 이 유혹과 씨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상황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드러나고 싶어하는 저의 타락한 본성을 어느 정도까지 다독거려가며 큰 유혹을 분별해 가며 사는 셈입니다. 마치, 단 것을 물고 살려는 아이를 다루는 것과 비슷합니다. 단 것을 먹고 싶어하는 아이의 욕구를 최소한에서 충족해 주면서, 그것이 지나쳐서 치아를 상하게 하고 소아 당뇨를 유발하지 않도록 절제시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 훈련하면, 나중에는 단 것에 대한 욕구도 진정되고 스스로 통제할 능력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망을 잘 다독거리며 다스립니다.
    드러남으로써 얻는 것은 명성과 그에 따른 금전적 이득이지만, 그로 인해 잃는 것은 인격과 영성입니다. 인격과 영성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실은 이토록 분명한데, 자신을 팔아서 명성과 돈을 얻어 보려고 안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숨겨져 있을 때는 아름다운 인격의 향기를 풍기던 사람이 팔려 다니면서 그 향기를 잃어 버리고 오히려 악취를 풍기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지요! 숨겨져 있을 때는 맑고 깊은 영성의 빛을 발하던 사람이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추하게 추락하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지요! 화폐 단위로 환산되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없다는 자본주의 논리에 우리 모두가 속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 영화 “서편제”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상이 생각납니다. 비운의 소리꾼 송화가 실명을 하고 온갖 고난을 겪은 다음, 마음에 쌓인 한이 승화되어 득음을 하게 되지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시골 주막집에서 송화는 난생 처음 오빠의 북 장단에 맞추어 신의 경지에 오른 소리를 뽑아냅니다. 그 다음 날, 송화가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아깝다, 저 소리! 이제야 세상에 드러날 때가 되었는데, 또 어디로 사라지나? 저 소리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방송국마다 초청하려고 줄을 댈 텐데, 어디로 사라지나? 저 소리면 송하의 고생은 끝인데, 어디로 사라지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아뿔싸, 내가 이토록 타락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송화의 소리는 감추어져 있어야 더 가치가 있고, 감추어져 있어야 그 소리가 유지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는, ‘감추어져 있음의 미덕’에 눈을 떴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 자신도 위험할 정도로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노출된 만큼 저에게는 희망이 없는 겁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한계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더 이상의 타락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숨어 있으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찬사와 인정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을 더 예민하게 하려 합니다. 저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러 다니지 않으려 합니다. 부른다고 해서 아무 데나 나다니지 않으려 합니다. 그냥,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 할 뿐입니다. 저의 이러한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김종희 기자가 말했지만, 꿰뚫어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니, 제 본심을 어느 정도 헤아릴 줄 압니다. 저에게 좋은 ‘지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4. 앗, 여기는 코멘트 할 내용이 무척 많네요.
    그런데 원글의 능력있는 리더의 첫번째 실수를 생각해 보면 말이죠.
    겸손한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후배들이나 멤버들의 능력을 저평가하는 실수를 많이
    하는것 같습니다.

    코스타의 경우도 리더쉽을 가진 간사님들이 후배 간사님들의 리더쉽을 못세워주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한번 빡세게 토론해봐야 하는거 아닌가요?

  5. 음… 두 가지 leader의 공동점은 ‘목표’지향적인 것이 아닐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개개인의 능력의 차이를 주셨고 그에 적합한 열매를 기대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열달란트 vs. 한달란트. 문제는 열달란트 가진 사람이 한달란트 가진 사람을 무시(?)할 때와 역으로 한달란트 가진 사람이 열달란트 가진 사람을 부러워해 흉내를 내보려고 할 때 발생하겠지요. KOSTA에 오시는 분들 대다수가 여러 달란트 가진 분들이라고 보여지고 개중에 예외적으로 열 달란트 넘게 가지신 분들고 계실겁니다. 만약 KOSTA focus가 이 ‘예외적’ case에 걸맞는 것으로 목표를 잡는다면… 여러명의 뱁새들에게 좌절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던져봅니다. (맡은 책임이 없는 사람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였습니다.)

  6. 정말 여러분들의 열렬한 성원(^^)과 조언과 comment가 눈을 많이 열어주네요.
    이런 얘기는 좀 더 자주 올리면… 더 자주 좋은 얘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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