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해도 괜찮아

Shiker 간사님이 내게 한번 읽어보라고 던져 주신, “욕망해도 괜찮아”를 어제야 결국 다 읽었다. -.-;

내가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7월 말에 내가 그 책을 받고 두달이나 걸릴만큼 그렇게까지 심한 사람은 아닌데, 이 책은 우선 책읽기를 시작하는데 아주 오래걸렸다. ^^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내가 새롭게 취득해야하는 정보의 양이 늘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양보다 10배쯤 많다…는 압박에서 살고 있는 터라, 투자한 시간에 대비해서 충분한 효과가 있는 책이 아니라면 쉽게 손이 가질 않는데, 이 책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웬지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렇게 효율적인 시간활용이 아닐 것 같은 생각.

책을 다 읽고나서?

음… 뭐랄까…

한편 뭐, 오랜만에 읽으면서 그 문장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다시 따져봐야하는 것이 아닌 책을 읽어서… 좀 어색했지만, 결국 쭈루룩 읽어 내려갔다.

김두식 교수님…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잘 알겠는데, 나는 솔직히 그분의 결론에 좀 동의하기 어렵다.

책 맨 마지막에 나온대로, 욕망은 B형 간염 바이러스 같은 놈이어서, 그걸 데리고 잘 살면 괜찮은데, 그걸 때려잡으려 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글쎄…

김두식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나는 아주 극단적으로 계(戒)의 사람인데,

그래서 그런걸까.

나는 그 욕망을 많은 경우 때려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잘못된 욕망을 건강한 욕망으로 replace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계(戒) 자체를 자신의 색(色)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한 성숙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계(戒)를 그냥 내게 주어진, 내것이 아닌 계(戒)의 상태에서 지켜내는 일을 하다보면 색(色)을 억누를수밖에 없고, 그래서 지랄총량의 법칙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만…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 계(戒)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또 강요받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것이지만 말이다.

내가 계속 계(戒)의 사람이어서 그런걸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계속 근본주의적인 사람일 수 밖에 없는 걸까.

4 thoughts on “욕망해도 괜찮아”

    1. 논란이 있었던 책은 “불편해도 괜찮아”가 아닌가 싶어요. 이 책은 그것에 비하면 PG-13 정도죠. ^^

      근데 목졸님은 ‘계’가 편하거나 이미 자신에게 체화되어서 ‘색’을 넘어서 자신의 ‘색’을 찾은게 아닐까요?

      김두식 교수님은 책을 통해서 숨겨진, 그러나 왜곡된 욕망을 드러내도록 하는 창구를 만들었다면 다른 형태/장을 통해서 그것들이 분출되고 건강한 담론/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2. 음…
      김두식 교수님의 주장이 이 책 후에 더 연결해서 나올 거라면, 좀 더 얘기가 되는 것 같네요. ^^
      욕망해도 괜찮다로 끝낼 게 아니라, 어떤 욕망을 할 것이냐, 어떻게 욕망할 것이냐 등을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요.

      요즘,
      복음주의와 moralism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제가 moralistic해진 현대의 복음주의는, 복음주의가 원래 표방하던 가치로 부터 멀어진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좀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보면,’
      moralism을 거부한다는 차원에서, 저도 김두식 교수님에 동의한다고 볼수도 있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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