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 세계관 (4)

잘못된 초월성의 또 다른 예는,

하나님을 목표로 두고 있긴 한 것 같은데,

그 과정에 하나님이 상실해버린 경우이다.

나는, 

비뚤어진 개혁주의적 세계관이 이런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비뚤어진 평화주의적 세계관도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동기에서 출발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표현해 내는 과정에서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저 정교한 전략과 계산과 논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소위 ‘젊은 복음주의자’들이라고 불리우는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이런 성향을 흔히 발견한다. (나를 포함해서.)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교회가 건강하게 되는 것을 소망하고 거짓된 복음이 득세하는 것을 대단히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해내는 solution/과정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 보인다.

궁극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바꾸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인식,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방법론도 하나님의 거대한 일하심 안의 작은 부분일 뿐이며, 자신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겸손함은 이들에게서 찾아보기 참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들에게 심정적, 정서적 동질감을 더 느끼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목표로 두고 과정에서의 초월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보면,

더 마음이 아프다.

망가진 나 자신을 거울을 통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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