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적이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결국은 초월성을 상실해버렸다는 것은,
신비를 상실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세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존재/임재를 잃어버린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대충 그 부류를 생각해보면,
우선, 하나님이 아젠다의 목표에 있지 않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신앙은 그저 수단일 뿐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대단히 초월성을 추구하는 것 같아 보이는 많은 은사주의자들은, 오히려 그 목표에 하나님이 있지 않기 때문에, 초월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많이 보인다.
예수 믿고, 방언하고, 자기 문제 해결 받고, 병고침 받고, 미귀를 물리치고…
혹은 좀더 교묘하게 하나님을 목표에 두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선교를 하면서, 선교전략상 ‘영적인’ 부분을 악용하는 경우이다.
선교라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 구체적인 실행전략으로 초월적인 것을 추구한다.
영적 전쟁, 하나님의 권능…
그렇지만, 그 추구하는 정점에, 하나님 당신이 계시기 보다는, 선교적 목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교회 성장, 교세확장, 전도, 선행 등등의 종교적 목표를 세운 후 그것의 수단으로 초자연적인 것을 추구하는 일련의 성향들은 모두 궁극적 의미에서의 초월/신비를 상실해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그저,
현실 세계에서의 해결책으로 신비를 가져다 쓰는 것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초월성은, 하나님 그분을 추구하는 것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뒤에 또 이야기 하겠지만, 하나님 그분을 추구하는 것에는 인격성이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