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와 예배

기독교의 특징은, 예배에 있다기 보다는 계시에 있다.

예배는, 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예배는, 계시가 지향하는 목표이다.

예배는, 바른 계시를 통해서 도달할 수 있다.

흔히,

‘예배자’가 될 것을 요청하는 것을 듣곤 하는데…

바른 계시가 없다면 예배가 이루어질 수 없다.

현대 교회에서,

계시없는 예배를 추구하는 일을 자주 목격하는데…

이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열매도 있을 수 없다.

예배는 도달헤야할 목표이지만,

인간에게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계시이다.

=====

이상은, 내가 오랬동안 가져왔던 생각이다.

한동안 이 생각에 깊은 회의가 있었다.

내가 너무 modernistic한 framework에서 기독교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예배와 계시가 sequential하지 않고 함께 공존하며 나갈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좀 했었다.

요즘 내가 도달하고 있는 지점은,

그래도 계시가 예배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회귀이다.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이 예배의 회복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난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계시의 회복은 아닐까.

7 thoughts on “계시와 예배”

  1. 이 시대에 계시가 필요하다는 데는 절대동감이다. 물론 예배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계시가 더 절박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에 동의가 된다. 사실 계시가 주어지면 다수는 참된 예배자로 살아가게 되고 그런 무리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예배의 회복도 된다고 본다. 물론 참된 예배의 회복을 통해서도 계시가 주어질수도 있지만 특졀한 때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예배의 회복애 계시까자 염두에 두지는 않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것 같다.
    그런데 과연 계시는 회복될수 있는건가? 라는 질문엔 글쎄다. 계시는 전적으로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란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런 면에서 계시의 회복이란 표현보다는 계시를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몇 백년동안 침묵하시고 계시하지 않으셨던 때가 역사적으로 있었다는 것을 염두애 둔다면, 이 시대가 그런 시대라면 우린 어떤 태도와 모습으로 살아가야하며 어떻게 절대 주권자애개서 비롯되는 계시를 기대하며 소망하며 살아가야하는가? 그런 면에서 고민이 많고 시므온이나 안나같은 사람들을 나는 주목해본다.

  2. 형, 어제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참 신기하게도, 멀리 떨어져서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걸 확인하는게, 저로선 큰 위로가 되었고요.
    형 지적대로, 계시가 회복된다고 이야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오히려 선포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해야 할까요.
    혹은 계시가 더 드러나야 한다고 (revelation of the revelation)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요…
    뭐 하여간 그런 표현을 써야 할 것 같네요. ^^
    지금쯤은 벌써 한국 가는 비행기 안에 타셨겠네요. 언제 또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 나누어요.

    1. 오늘 큐티하는데 느헤미야 8장에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니 온 백성이 일어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내용이 나오네요. 말씀하신 계시와 예배가 생각나 묵상하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

    2. 애고, 목사님-
      저는 혼자 호텔방에서,
      지난 주에 하신 팔복 마지막 설교 들었습니다. ^^
      팔복 다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요한복음도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

  3. ㅋㅋ 안간사님처럼 저도 사실 이 글이후에 계속해서 계시와 예배에 대해 고민해 왔는데요. 질문이 하나 있어서요. (저의 질문은 아마 계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 저의 질문은 계시의 임함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예배와의 관계 뭐 그런 것에 대한 것 같습니다..ㅋㅋ

    (이글의 주요 맥락인) 교회/단체의 공적예배에서 계시가 임하는 방법,
    음 가장 우선적으로 ‘말씀의 선포’가 떠오르는데요. (근데 계시의 회복 내지는 소망은 뭘 말씀하시나요?)

    근데, 계시의 임함(?)은 주로 말씀의 선포만을 통해서인가요?
    더불어 졸개님께서 말씀하신 계시의 사모는,
    공동체는 말씀을 사모하고 선포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투명한 계시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하는 그러한 것을 의미하시는 것인가요?
    (공예배의 각요소, 예배로의 부름, 찬양/경배, 기도, 봉헌, 헌신과 결단, 파송 등등을 생각해보면 말씀선포를 빼고는 그다지 계시와 딱 떨어지게 연결되는 부분이 없어보이긴 합니다.)

    만약 공예배에서 계시의 회복 (혹은 소망)이 말씀선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면,
    캐톨릭이나, 음 아마 성공회등 ritual이 강한 예배는 전체적으로 말씀의 선포부분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인가요? 일반적으로 저희와 다른 전통의 영성을 가진 형제 교파에서는 계시의 사모는 어떤식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이건 또 형식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캠퍼스 모임등에서 예배의 형식은 어떠해야 하나 하는 개인적인 고민과 맞닿아 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포스트 모던적 시대상황/영성에서
    말씀의 사모가 계시를 사모하는 것과 적절히 맞닿을 수 있을까요? 시대와 영성에 맞게(?) 하나님께서 쓰시는 다른 계시의 통로는 있을까요?
    (솔직히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는 뭐 거의 ‘지구온난화’처럼 모든 문제와 상황에 대한 만능 excuse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ㅋㅋ 이현령 비현령 같은 느낌..ㅋㅋ 사실 지구온난화 이전에는 모든 자연재난/이상현상은 무조건 엘리뇨 때문이었죠..ㅋㅋㅋ이쪽업계는 뭐만하면 무조건 포스트모던이라고 해서, 그걸 이야기한지 1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도 포스트모던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ㅋㅋㅋ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ㅋㅋㅋ)
    의식의 흐름(?)수법으로 써내려간 횡설수설 주절주절이었습니다. ㅋㅋㅋ 우문 현답 기대합니당.ㅋㅋ

    1. 성실하신 아땅님께서는,
      엄청 빡센 댓글을 다셔서,
      먼 이국 땅에서 시차로 해롱해롱하는 저로 하여금,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게 하시는군요. ㅎㅎ

      제가 글에서 쓴 “계시의 선포”는,
      기본적으로…
      우리 밖으로부터 우리에게 공급되는 하나님의 뜻 으로 생각했습니다.

      계시의 선포가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겠지요.
      (곁길입니다만, 아… 요즘은 설교에서 ‘계시의 선포’가 이루어지는 것을 참 보기 어렵습니다…. 소위 선포라고 하면, 그냥 목사님이 강단에서 소리지르면서 자기 주장을 펴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야말로 가장 계시의 선포로부터 거리가 먼 행위인데 말이죠.)

      그렇지만,
      언급하신 성례전, ritual이 계시의 선포가 이루어지는 통로로 이용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행위들이, 계시의 선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만, 그것이 종교 행위가 아니라, 예배행위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뭐 그런생각도 해 봅니다.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논지의 핵심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그 구원의 길 (예수)을 여셨다.
      라고 정리할 수 있다고 저는 보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밖에서 오는 (EXTRA NOS) 계시, 구원에 대한 개념과 행위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 것이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데 말이죠…

      자꾸만 이것을 도외시한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더 우선시하는 접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져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소위 찬양인도를 하시는 분들중 일부가,
      이 시대는 예배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뭐 이런식의 말씀들을 ‘남발’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것은,
      계시종교인 기독교를,
      무속신앙과 같은 예배종교로 만들어 버리는 접근이 아닐까…
      뭐 그런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아… 저는 예배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렇지만, 계시없는 예배는, 그저 무속신앙과 다를바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4. 계시란 결국 드러냄인데 잘 아시는대로 말씀과 성례전을 통한 계시를 드러냄의 가장 주요한 채널로 이해하죠. 다른 예배의 요소들(봉헌, 찬양, 파송..) 역시 “말씀선포”라고 하는 계시가 이루어지기 전의 보조수단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말씀선포와 연결되어 얼마나 “인격적”으로 준비되고 실천되느냐에 따라 계시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목졸님이 말씀하신대로 회중의 상태를 무시한 예배인도자의 무조건적 인도나 인격성이 배제된 봉헌, 파송등은 계시가(하나님의 자신을 드러냄) 온전히 선포된다고 보기 힘들겠죠. 선교단체와 같은 모임들 역시 지역교회에서 하는 전통적인 순서가 다 들어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순서, 한 순서가 회중과 하나님 사이를 어떻게 이어가고자 노력하느냐가 계시가 현실화되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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