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를 읽으며

이번달부터 로마서 QT를 하고 있다.
원래 계획은, 로마서를 좀 꼼꼼히 공부하면서 보겠다는 것이었는데,
도.무.지. 그럴 여유를 찾지 못해서 그냥 약간 더 심각한(?) QT 수준으로 보고 있다. ^^

도대체 New perspective와 관점에서 읽어내려가는 로마서와,
전통적 관점에서 읽어내려가는 로마서는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하는게 내가 이번에 로마서를 읽어내려가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내 생각은 이렇다.

– Summary: New Perspective와 전통적 관점 모두가 매우 valid한 point를 가지고 있다.

– New Perspective는 Then & There의 차원에서, 성경 본문의 역사성, 현장성, 1st hand reader 에 더 중점을 두고 읽고자 하는 시도이고, 전통적 관점은, Here & Now의 차원에서, 성경본문의 통시성, 초월성, 적용에 더 중점이 있다.
(New perspective, 유대인의 메시아, 구약 언약의 성취, 하나님 통치의 회복… .vs. 전통적 관점, 죄에 빠진 인간, 죄의 용서 등등 )

– 로마서는 유대인의 메시아가 어떻게 전 세상의 구세주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바울의 시도가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면, New perspective의 관점과 전통적 관점을 연결시키는 다리가 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대인의 메시아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예수가 구세주되심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는 오히려 더 relevancy를 가질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 바울은, 이 두가지중 하나도 그냥 포기하지 않는 것 같다.
역사적 관점의 승리하신 메시아는, 통시적 관점의 대속 제물이 되신 예수와 통하는 것 같다.

– 이방인인 나로서는, 좀 더 마음 편하게 substitutionary atonement의 관점으로 지금 로마서를 읽어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어차피 1세기 유대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유대인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내가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st century Judaism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시적/초월적 관점으로 풀어내 놓은 해설서를 읽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로마서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 이런 것도, 누가 좀 잘 가르쳐 주면 좋겠습니다.
저보다 더 이런거 잘 아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텐데…
한줄씩 좀 남겨주세요!
시간이 없어서 길게 풀어서 설명을 못했지만, 로마서를 가지고 New perspective와 전통적 관점 사이에서 갈등하며 읽어본 분들이 계실텐데 말이죠…

7 thoughts on “로마서를 읽으며”

  1. 새관점이 구관점보다 죄, 속죄, 용서 등을 덜 설명한다고 생각해? 나는 오히려 새관점에서야 비로소 그것들이 퍼즐의 자리를 찾듯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고 보는데.

    1. Interesting!
      네 그 comment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언제 기회되면 네 블로그에 한번 올려라.

      나는 전통적인 penal substitutionary atonement에 근거한 죄와 사죄에 대한 이해만이 주는 benefit이랄까 그런게 있다고 봐.

      Tim Keller에 따르면,
      New Perspective를 따르면,
      주를 깊이 사모하여 따르는 기독교적 모델이 나오기 어렵다고 했는데,
      그런 관점에도 동의하는 편이고.

    2. 결과적으로 어떤 모델이 나오느냐를 근거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나는 마뜩치는 않네. 게다가 그렇게 따지자면 구관점에서처럼 바울이 말한 “works of the law”를 모든 선행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야기되는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아 보이고.

      새관점이라는 이름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크(다고 들었)지만, 쌘더스와는 달리 라이트의 atonement 이론에는 분명히 penal substitution의 측면이 들어 있지 않나? 메시아께서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이니까. 그리고 Christus Victor 관점과 penal substitution 관점이 양립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내가 위 댓글에서 한 말은, “피스티스”를 faith보다는 faithfulness로 해석할 때, 죄와 용서의 문제가 더 명확한 컨텍스트에서 해결되는 것 같다는 뜻이었어. 그런데 새관점을 아우르기까지는 않더라도 라이트에 대해서는 주변에 훨씬 더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내가 더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그 분들께 묻는 것이 좋을 듯.

    3. 여기 짧게 쓰지 말고 네 블로그에 제대로 쓰라니까. ㅋㅋ

      예수를 깊이 사랑함, 하나님과의 초월절 만남, 죄의 용서로 인한 감사…
      이런 것들이 new perspective에서 다루어지는 주된 theme으로 충분히 다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이 나는 없어.

      네가 말한대로 Christus victor와 penal substitution이 양립하지 못할 이유는 당연히 없고, N.T. Wright도 그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데…

      사실,
      살아가다보면, 죄의 문제가 그렇게 가볍지는 않다는 걸 점점 더 배우게 되거든.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그런거 같기도 한데…
      그런데 그 죄의 문제를 하나님 나라가 열렸다!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 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덮어버리고 지나가는게 나는 뭔가 찝찝하게 느끼는 거지.

      인간에 (뭐 결국은 내게) 깊게 뿌리박혀 있는 죄가,
      정말 인간적인 노력으로 도무지 해결이 되지 않는데,
      그래서 일방적인 은혜로 그것이 해결되었고, 내 죄짐이 벗어졌다는 관점은,
      소위 Kingdom theology의 큰그림만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많이 놓치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

      어떤 입장을 따를때 어떤 부작용이 있느냐 하는 것은 적절한 판단기준이 아닐지 모르지만,
      어떤 입장을 따를때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가 어떤 것이냐를 고민해보면 그 입장에서 어떤 점들이 빠져 있는지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 것 같다.

      나도 전통적 관점이 답답하게 느껴질때도 많이 있지만,
      그래서 New Perspective가 되었건 Kingdom theology가 되었건 뭐 그런거 아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따르지만,
      전통적 관점이 주었던 어떤 면들이 간과되지는 않아야 겠다는 생각도…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이 들기도 한다.

      내가 지금 로마서를 읽어가는 방식도 그래서,
      두가지 (or more) 관점을 다 염두어두고 읽으며 그 다양한 관점이 주는 유익을 다 취해보려고 하는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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