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7)

이런 두번째 유형은,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믿음의 선배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해당된다.
그 외에도 흑인 노예들, 한국 초기 교회 성도들도 역시 이런 유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도무지 사람(들)의 노력으로는 바뀔 것 같지 않은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그저 하늘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다림’ 혹은 ‘하나님을 신뢰함’이 되겠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상황을 초월하는 초월자가 계시고, 그분이 우리 하나님 이심을 믿는 것이다.

내가 앞에서 언급한대로,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런 유형이 더 relevant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빈익빈 부익부가 계속 심화되어서, 경제는 발전하지 않아… 청년 실업은 증가하고 있고,
세상의 화려함이 더욱 심해짐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은 증가되는데,
그 체제 속에서 ‘노예’로 살거나 아니면 그 체제의 낙오자가 되도록 강요받는 상황.

장래가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렸고,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세상.

이런 세상 속에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상황 속에서 suffer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고, 홍해가 갈라지기를 기다리며 부르짖는 것.
그래서 초월, 신비, 고난 등의 개념들이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패배주의’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suffer할 수 밖에 없다고 하여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패배하시지 않는 다는 것을 기억하고 믿어야 한다.

우리의 삶도 의미가 없고,
우리는 그저 낙오자이고 실패자일 뿐이라는 패배주의적 생각은,
이 두번째 유형이 잘 못 제시되었을때 생기는 독소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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