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사는 모습 (6)

소위 ‘사막의 교부’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은,
초기 기독교의 신비주의자(mystic)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신비주의자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Eugene Thacker는, 그 당시 대부분의 신비주의자들이 나왔던 Alexandria에서 찾고 있었다.

Alexandria는 당시 상당히 발전된 도시였다.
여러가지 학문이 발달했고, 기술이 진보했으며, 여러 사상과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물론 로마 제국의 중요한 거점 도시로서 경제적인 풍요도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런 상황 속에서,
일종의 ‘벽’ 혹은 ‘한계’를 느끼고 ‘신비’를 찾아 사막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Eugene Thacker는, (이 사람은 허무주의자이다.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자신의 학생들에게 이 사막의 교부들이 추구했던 신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학생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 사람들의 상태가… 사막의 교부들이 Alexandria를 버리고 신비를 추구했던 그 상황과 비슷한 것일까.

“견디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하다보면,
결국은 신비 혹은 초월이라는 하나님의 속성과 대면할수 밖에 없다.

그런 초월적인 need가 지금 더 크다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다.

나는 기독교에서 신비 혹은 초월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신비 혹은 초월이 적절한 균형을 잃어버린 신비주의나 초월에의 추구가 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고 또한 생각한다.

이 두번째 견해에 관하여 조금 더 생각해보면서,
이런 생각을 더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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