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게 그렇게 좋았다.

목사님이,

어른 설교를 하기 전에, 5분 정도 아이들을 위해서 어린이 설교를 해 주신다.

이번 주에는, 아예 바닥에 아이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완전, 동네 애들과 이야기하는 동네 아저씨의 모습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이 시간이 그렇게 좋다.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이 두 아이들은,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게 분명해 보이지만, ^^

그래도 그 아이들에게 짧게 설명해 주시는 목사님의 설교도 좋고,

그 전에 모두 다 함께 어린이 찬양을 부르는 분위기(?)도 좋고….

바라기로는,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더라도,

동네 아저씨 목사님이 해주신 이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살면 좋겠다. 

지난 주말

지난 금요일 밤 11시 반경,

text가 하나 왔다.

뭐 이런거다. 

Hi Ohseung, are you still awake? Got a question about plasma damage

음….

결국 내가 전화를 했고, 내용인 즉슨, 우리가 internal customer에게 보낸 sample의 대부분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정이 다 된 그 시간까지 아직 사람들이 실험실에서 끙끙거리며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러 실험을 통해서, 문제가 우리가 사용하는 ‘plasma treatment’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밝혀 냈는데,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사실 나는 박사학위를 plasma로 받았으므로, 굳이 말하자면… 나는 그쪽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쩝…)

그 밤에 전화로 한참 이런 저런 discussion을 하고, 

토요일 아침에 실험실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토요일 새벽에 팅~ 하고 날라온 또 하나의 text.

토요일 아침 일찍 급하게 conference call을 해야 한다고. 대만에서 온 연락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사고가 하나 대만에서 터졌다.)

으윽….  이 인간들이…

결국 토요일 아침 일찍 conference call을 하나 하고,

회사로 나갔다.

문제가 생긴 sample들을 여러가지로 관찰해보고, 현미경으로 조사도 해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process condition을 바꾸도록 거기에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suggest를 하고는 집에 왔다. 

계속 이메일로 연락이 오고, 뭐 몸이 집에 와있긴 했지만 계속 process condition에 대해서 discussion을 해야 했다.

결국 밤 8시가 다 되어서야….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sample들을 internal customer들에게 보낼 수 있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서 집에 와서 민우와 점심 식사.

그리고 주일 오후가 되니,

아시아 쪽에서는 다시 이메일과 text가 들어온다. -.-;

독촉, 부탁, 요청, 질문….

아,

주말이 날라갔다. -.-;

나는 다른 사람을 막 대할 권리가 없다.

회사 일로 많이 stress가 쌓여 있을 때에는,

(뭐 회사일이 아니어도 좋다. 내 개인적인 일이 될수도 있고, 심지어는 Christian ministry일수도 있겠다.)

자연히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내 뜻에 잘 맞추어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공격적이 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특히 그 대상이 ‘만만한’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내가 막 대해도 내게 크게 피해가 오지 않을 사람이라면…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사람을 막 대할 권리가 없다.

그 사람은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소중한 피조물이다.

신경이 날카로와진 (혹은 많이 upset 되어 있는) 내 상태가,

다른 사람에대한 무례함을 보장해준다는 착각은…

무엇보다도 나를 파괴시키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다. 대.단.히.

내가 회사에서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몇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credit을 빼앗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일인 경우, 그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했다고 credit을 양보한다.

가령,

내가 A 라는 사람과 대충 50:50 의 일을 한 경우에, 나는 “A가 대부분의 일을 했고 내가 약간 도왔다.” 라고 이야기한다.

A가 20, 내가 80정도의 일을 한 경우, “우리가 함께 일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분명히 50:50 일을 했고, 나는 그것의 credit을 더 많이 그 사람에게 돌리는데… 그 사람은 실제로 자기가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건, 그 사람들이 뭐 악의를 가지고, 자기가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자기가 더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더 크고 많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눈에 보기에 공정하게 평가를 하면, 실제로는 자신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평가를 하게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대.단.히.

높은 이상과 건강한 현실

높은 이상을 갖는 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사실 이상이 형편없이 낮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정말 복창이 터지게 답답한 일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늘 이상과의 간극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높은 이상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래서… 높은 이상에 다다르지 못하는 현실을 더 improve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건강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현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포기하거나 모두 무가치한 것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매우 건강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 싶다.

가령, 부부 관계 속에서…

이상적인 부부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높은 이상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이상에 도다르지 못했다고 해서 그 부부관계 자체가 모두 잘못이라고 포기해버리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건강한 이상과 현실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높은 이상적 부부관계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지만,

또한 지금 그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현재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현재상태를 appreciate하고, 누릴 줄 알아야한다.

때로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의 벽을 만났을때 너무 쉽게 이건 아니야 이건 안되는 거야 라는 식으로 포기해버리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결코 건강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Return of the King

이번주 설교는 Eschatology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있게될 것인가, 그것과 관련된 우리의 소망은 무엇인가.

보통 나는 설교 시간에 노트를 하면서, 

그 내용을 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제는 노트를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설교에 몰입하며 끝까지 들었다.

Tim Keller가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설교를 정말 제대로 하면, 처음 설교를 할때 노트를 하던 사람도 펜을 놓고 몰입해서 듣게 된다고.

내가 딱 그랬다.

몸과 마음이 다 무겁고 힘든 상태에서 참석한 얘베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이 아니었다 싶다.

좋은 설교를 듣고 나면, 당연히 설교자에게 감사해야할 일이겠지만, (그리고 많이 감사하지만…^^)

또한 그 설교를 함께 들었던 사람들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감사했다.

억울한(?) P 영감님

국회의장까지 지내신 P 영감님께서,

자기 손녀 나이인 캐디를 성추행 했단다.

허 참… 의욕도 왕성하셔라…

그런데, 그분은 ‘그냥 딸같아서 귀여워서 그랬다’고 하셨다고.

그러면서 그 사람이 싫은 내색 했으면 그렇게 했겠느냐고…

마치 자신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신 것 같다.

쩝…

그런데, P 영감님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느낄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이 사건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P 영감님은 두가지의 비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 여성은 성적 유희의 대상이다.

– 갑은 을에게 막 대해도 된다. (혹은 더 힘있는 사람은 힘이 약한 사람을 배려해줄 필요가 없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1) 여성이 성적 유희의 대상이다?

사실 TV나 여러 대중문화해서 접하는 여성들은, 정말 성적 유희의 대상이 아닌가.

소위 한국의 인기있는 여러 ‘걸 그룹’들을 봐라.

완전히 헐벗고 나와서 가능하면 남성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도록 요구받지 않는가.

뭐 이건 ‘걸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문화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코드이다.

못생긴 여자는 여자도 아니라는 식으로 당연히 각종 매체에서 다루어 지고… 그들을 비웃고…

여자들은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의느님’들을 만나서 예쁜 여자로 거듭나고…

가능하면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 남자들을 유혹하고…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을 보면서 점수를 매기고…

예쁜 여자로 거듭나서 ‘상류층’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이야기가 그냥 광고에 버젓이 나오고… 

(2) 갑은 을에게 막해도 된다?

결국 사람들이 취하는 자세는 이렇다.

갑은 을에게 막한다. 을은 억울하지만 참아야 한다. 그러니까 억울하면 갑이 되어라.

성공해라. 남들을 지배하고 눌러라.

그래서 사람들이 결국은 자기 자식들 좋은 학교 보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자들의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자들의 배를 채우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갑이 을에게 막 대하는 것을 비판하기 보다는, 갑이 되라고 요청하는 것이 시대정신이 아닌가.

P 영감님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할만 하다.

아니, 세상이 다 그런데… 왜 나만 갖고 그래?

P 영감님이 억울하게 생각할만 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평소 ‘갑’이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이야기했던 교회,

shallow한 행복을 이야기했던 교회,

미(beauty), 부(wealth) 등의 강함을 추구했던 교회 들은…

P 영감님에게 뭐라고 할 자격 없다. 

@ 아… 또 독해력이 딸리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 글 읽고서, 그러니까 P 영감님을 두둔하는거냐 라고 이야기하시겠지만… 그런거 당연히 아니다. P 영감님은 비난받을 짓을 했고, 그에따른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말 벌을 받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하지만…)

교만한 사람을 다루는 것은 쉽다.

교만한 사람을 다루는 일은, 

대단히 쉽다.

그저 그 사람에게 좋은 말만 해주면 된다.

무조건 칭찬하고, 아부하면, 그 사람은 다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을 다루는 일은,

참 어렵다.

그런 사람은,

shallow한 칭찬이 먹히질 않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있기 때문에, 

근거없는 칭찬을 들으면 불편해한다.

그래서,

정말 그 사람을 잘 이해하고 알아야, 그 사람을 잘 대할 수 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참된 모습이 어떤지 잘 모르기 때문에,

다른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positioning 잘 해내질 못한다. 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너 잘났다 이렇게 해주면 자기가 그저 잘난줄 알고 땡~ 이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참된 모습을 잘 알기 때문에,

다른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positioning 할 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자신 뿐 아니라 남들을 보는 통찰까지고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주… 너무나도 자주…

회사에서 일을 할때이건, 

Christian ministry관련해서 사람을 만날때 이건…

내게 좋은 말만 많이 해주는 사람들을 만난다.

어느순간,

무조건 내게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만 보이게 되는 것은….

내가 심하게 교만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회사에서도 소위 ‘갑질’을 하다보니…

Christian ministry에서도 ‘대접’받는 일들이 심심치않게 있다 보니…

내가 내 정확한 위치를 헷갈리게 되는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점점….

사람들이 다루기 쉬운 종류의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Somehow, 하나님께서 온전케 하실 것이라는 믿음

회사일로 하루에 10시간~15시간을 보내는 나로서는,

이 일이 하나님 나라에 의미 없는 일이라면 정말 허탈한 일이다. 

다행인것은, 적어도 내가 믿는 대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 나라에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냥 그렇게 쉽게 생각하기에는…

하는 일이 너무 dry하다.

이 일을 통해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 것에 대한 그림도 내게는 없고,

사랑이 나누어진다거나 가치가 창출되는 것도 미미해보인다.

뭐 결국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creative하게 세상에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일텐데,

그 과정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tedious하다. -.-;

결국,

이 과정을 견디어내며 보낼 수 있는 근거는,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다 알수 없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언젠가 이 의미없어 보이는 일까지도 선용하셔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회복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라는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때에,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다 엮어내는 일을 하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을 살아가는데에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참 불편한 상황 (?)

나름대로,

기독교관련 수양회를 꽤 많이 다녀봤으니,

그리고 여러 수양회 design과 수행을 꽤 많이 해 봤으니,

그런 쪽에는 경험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수양회에서,

참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광경 가운데 하나는,

강사가 자기도취가 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쏟아놓는 것이다.

Trust me. I’ve seen a LOT.

뭐 이런건 기독교 수양회에서만 보는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여러 상황에서 자기도취에 빠져서 썰을 푸는 사람들은 참 많이 보곤 한다.

그런 것은,

그 ‘썰’을 듣는 사람들에게 건강하지 못한 영향력을 주기 십상이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썰’을 풀어놓는 사람에게 잘못된 자기 이미지를 갖게 만든다. (실제 자신의 모습보다 훨씬 더 자기가 괜찮은 줄 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사람이 나를 쳐다보면서, 뭔가 괜찮은 얘기를 해주기를 기대하는 세팅이 참 불편하다. ^^

마치 내가 그렇게 자기에 도취되어서 ‘썰’을 풀어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지난 주말에는,

그런 상황을 여러번 마주해야 했다.

물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이제 20대, 30대의 후배들을 보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

그나마… 예전에는 이런 생각 없이 ‘자아도취’가 잘 되었던 것을 생각해볼때,

내 말과 행동에 점점 확신이 없어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건강한 sign인지도 모르겠다.

나름,

열정적인 주말을 보내고 나서,

어떻게든 그냥 보통의 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고자 열심히 노력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