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공동체, 예배, 자라남

나는, 설교가 예배의 핵심에 들어가 있는 것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

‘예배’라고 되어 있는 세팅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worship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과연 가장 최상의 예배 세팅일까 하는 의문이 늘 있다.

그리고,
정말 많은 경우,
교회에서 예배 설교의 역할은, 그 설교를 통해서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보다는,
그 교회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바를 계속 해서 remind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배 시간의 설교는,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복해서,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하여 재확인하고, 잘못된 길로 교회와 교인들이 흐르지 않도록 막는 일종의 ‘가드레일’역할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너무나도 자주, 목회자들은 설교 강단에서 ‘프리마돈나’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불행하게도)

이와 연관해서, 나는,
사람들이 ‘설교 잘 하는 사람’을 쫒아다니며 교회를 옮기는 것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소비주의 성향의 대중이 선택하는 ‘좋은 설교’의 기준은,
메시지의 건강함이라기 보다는, 설교자의 테크닉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Shiker 목사님은,
스스로 늘 자신이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우기신다.
아마 자신의 설교에 화려한 기교나 웅장한 카리스마가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어쩌면 뭐 그런 기교나 카리스마가 없다고 생각될수도 있겠다.

그런데,
최근 Shiker 목사님께서 무슨 작정을 하셨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Shiker 목사님에 대해서 무슨 작정을 하셨는지)
요즘 계속 설교의 칼 끝이 살아 있음을 경험한다.

게다가 더더욱 감사한 것은,
설교자 혼자 방방뛰면서 교인들을 무리하게 drive 해가는 설교라던가,
혹은 교인들의 상태와 무관하게 그저 ‘일반적인’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설교가 아니라,
설교와 교회와 교인이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Hana Seed Church에서는,
목사님과 ‘흔한’ 30대 평신도 두명이 함께 teaching team을 구성해서,
그 teaching team이 설교의 내용과 방향을 정한다.
나는 그 teaching team의 사람들을 모두 다 잘 알고 있으므로,
때로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는데 J 형제나 E 형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지난 주일 설교 서두에서,
Shiker 목사님이,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주 힘들었다고 하시면서,
설교가 별로 일 것이라고 미리 설교 전에 초를 치셨다. ^^

그런데,
그 설교를 듣고 나서 나는,
그냥 한편의 좋은 설교를 들은 것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공동체의 살아있는 생명을 경험했을때 느끼는 감동을 가지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사족)
사실 목사님의 설교가 좋았다 어땠다 하는 이야기를 여기 쓰는게 좀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그 설교를 하신 분이 이 블로그를 자주 읽으시기 때문이다. ^^
그래서 가능하면 안쓰려고 하는데… 앞으로는 가능하면 내가 들을 주일 설교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않기로 결심 중이다. ㅎㅎ

2 thoughts on “설교, 공동체, 예배, 자라남

  1. 칼이 있으신 것을… 이제 아셨나요?
    저는 이곳 MD에 있을 때에부터 알았는데…
    그래서 몇개월전까지만 해도 팟캐스트로 들었었는데…
    (물론 요즘은 육아로 힘들다는 핑계로 못 듣지만)
    그래서… 그 교회가 부럽습니다. 성도가 부럽습니다. ㅠㅠ

    • ㅎㅎ
      제가 뭐 늘 많이 둔합니다.
      저희 교회도 사실은 고생이 많습니다.
      저희 목사님은 맨날 제가 제일 말 잘 안듣는 성도라고 갈구시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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