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theism (한국어로는 열린신론 이라는 번역을 쓰는 것 같다.)은 참 흥미로운 관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래의 일을 예정하시거나 알고계신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예전에 eKOSTA에 내가 아끼는 동생 한 사람이 이것에 관해 글을 쓴적도 있었다.
결국 이것은 고통의 문제를 설명해보고자 하는 기독교적 시도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계획하신다면, 도무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 왜곡, 고통의 문제를 설명해 내는 것이 정말 너무 어려운 것이다.
현대의 open theism이, 20세기 초반의 ‘과정신학 (Process Theology)’로 부터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지는 사실 잘 알지 못한다. – 아마도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하지만 예전에 과정신학에 대한 짧은 글을 읽으며 참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진화 하시는 하나님. 피조세계와 소통하시며 발전하시는 하나님.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원리를 그래도 어느정도 개략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는 나로서는,
때로 신학에서 지나치게 ‘시간’의 이슈에 집착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 답답해 보일때가 있다.
(이 문제는 언제 한번 이 블로그에서 더 풀어봐야겠다. 그룹 성경공부 같은 데에서, 이런 이야기를 몇번 불어봤는데… 나 완전히 왕따되는줄 알았다. ㅎㅎ)
하나님께서 선하신 창조자이시고, 전지전능 하시다는 전통적 견해와,
지금 이 세상의 악이 하나님의 control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런 생각이…
뭔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주변과 세상의 아픔을 놓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다가,
마음이 답답해서 이런 생각들을 해 보았다.
(오늘 글은, 너무 cryptic 해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시는 독자가 많을 줄 아는데… 다음에 좀 더 잘 정리해서 한번 제가 생각하는 시간에 대한 신학적 고찰을 올려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