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에,
진리란, 세상이 움직여지는 universal한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는 여러가지 지식을 담아낼 수 있는 일종의 토대를 마련해준다.
예를 들면,
음식이 오래두면 상한다 라는 ‘진리’를 알고 있다면,
우유는 오래두면 상하는데… 과연 계란은 오래두면 상할까? 라는 질문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답할 수 있다.
음식이 오래두면 상한다는 ‘진리’가 없으면,
음식재료마다 이건 오래두면 상할까 하는 여부를 경험을 통해서 조각조각 모아야한다.
그리고 가끔은… 어? 우유는 냉장고 밖에 놓으면 하루만에 상하는데, 김은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네. 아마 김은 상하지 않는 음식인가보다… 뭐 이런 황당한 결론에 도달할수도 있다.
…
때로,
깊은 신앙을 가지고 오래 살아온 어른들을 보면,
그분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참 지혜로운 모습을 보게된다.
그런 분들은,
자신이 믿고있는 진리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을 맞닥드렸을때, 참 지혜롭게 결정하고 행동한다.
나는,
그런 분들의 지혜는, 진리를 몸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at least partially)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세상은 어떤 곳이고,
죄가 어떤 것이고,
소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냥 ‘온 몸’으로 알고 있으니,
그것으로부터 지혜가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기독교에서 그런 지혜를 이야기하고, 나도 기독교에서 그런 지혜를 많이 배웠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기독교에서 지식을 많이 이야기하긴 하는데, 지혜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어졌다.
프로그램을 통한 지식의 공급을 이야기하지만, event를 통한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것을 통합해내는 지혜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가끔 깊은 신앙에서 나오는 진리를 가진 어른들에게서 보게되는 지혜의 광채를,
과연 내 세대나 내 다음 세대로부터 얼마나 찾아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