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nt – 내 묵상 (4)

내 생각에,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을 이야기할때,
빠져서는 안되는 대단히 중요한 것은 그 주도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선교라는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중요한 key는,
하나님의 주권보다는,
신앙의 공공성인것 같아 보인다.

신앙의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신앙의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supporting argument로 하나님의 선교를 차용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가 원래 이야기하고자 하는 중요한 부분을 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 같다.

나는 신앙의 공공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앙의 사유화될때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본질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앙의 공공성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위 개념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리고 신앙의 공공성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이루어질때 따라오는 consequence 이다.

나는,
지금 이 시대에 다루어야 하는 더 근본적인 이슈는,
신앙의 공공성 문제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주권은, 흔히 hyper-Calvinist들이 이야기하는 식의 하나님의 주권이야기와는 다른 것이다. 나는 hyper-Calvinist들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적어도 신앙의 공공성을 이야기할때,
하나님의 주권 이야기를 충분히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신앙의 공공성은 하나님의 주권 개념으로 부터 파생되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반대방향으로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보냄받은 사람의 ‘원조’인 아브라함도 그랬고,
그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고,
신약의 백성들도 그랬고,
심지어는 예수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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