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nt – 내 묵상 (11)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크리스천들의 관점이 심하게 polarize 되어 있다.
모두가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심하게 비판/비난하고 있다.

코스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매년, 저런 사람이 강사로 온다면 나는 다시 코스타 오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양쪽 진영에서 모두…)

이건, 코스타로 보면 대단히 큰 challenge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보면, 이건 코스타의 문제라기 보다는 한국교회의 문제이다.
보수적인 사람들도, 진보/개혁적인 사람들도, ‘저쪽’ 이야기는 모두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진영논리에 사로잡혀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하나님의 주권에 근거한 하나님의 선교를 제대로 풀어내면 이것을 통합해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구령의 열정,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 전통적 가치에 대한 존중, 새로운 도전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 등등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좋은 framework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The Sent 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너무 쉽게 한쪽의 손을 들어줘버리게되면, 힘들지만 붙들어야하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된다.

지금 20,30대의 청년들이,
보수적 복음주의자와 진보적 복음주의자를 함께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미국) 코스타가 거의 유일하다. (arguably)

나는
지금 20,30대의 청년-학생들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이들이, 심하게 polarize되어 있는 상태로부터 벗어나, 통합적인 복음을 아는 사람들로 자라나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야기하는대로,
크리스찬들이 나누어져 있으면, 정사와 권세잡은 자들이 여전히 세상을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세상의 왕되신다는 중요한 표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이 통합되는 것 (에베소서에 나온 것 같이)이다.

그리고,
이방인과 유대인을 가르던 벽이 허물어지고,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되는 것이다.

agenda를 aggressive하게 이루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내려는 자세가 아니라,
사랑 (혹은 loving-kindness)의 자세로서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자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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