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지막으로,
‘목회자’를 가졌던(?) 것은 92~3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지금은 LA에 계신, 한국말이 서투른 한 전도사님이 내가 다니던 교회의 목회자였다.
그분의 허름한 단칸방 셋집에 가서 성경공부를 하기도 했고, 그분은 나 하나를 위해서 그 당시 대학원 기숙사에 아침 일찍 오셔서 나와 QT를 하고 아침밥을 함께 먹어주셨다. (사실은 그 기숙사 학생들이 함께 QT모임을 하자는 것이 취지였으나, 대부분의 경우 나 혼자 나왔었다.)
그리고 그때 즈음에,
정말 genuine하게 내 영적인 성장, 그리고 내 영혼의 상태에 관심을 가졌던 형들과 친구들이 소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내게는 ‘목회자’가 한번도 없었다.
물론 교회에 계속 다녔고, 그 교회에 목사님들이 계셨지만,
그분들은 대부분 나를 활용할 resource로 여겼고,
내가 무슨 생각과 고민을 하는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분들은 그냥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들이었지, 나를 ‘목양’하는 분들은 아니셨다.
목사님뿐 아니라, 그냥 다른 선후배 동기들도 대부분,
내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나를 찾아 오는 사람들이었지,
내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내 고민과 생각과 마음의 상태와 영혼의 건강이 어떠한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정말 별로 없었다.
내게 ‘목회자’의 역할을 했던 분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게 쓴 소리도 선뜻 할 수 있는 형도 있었고,
내가 정말 어떻게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서 내 안부를 묻는 친구도 있었다.
함께 동역하던 분들중에서도, 정말 나를 염려하고 기도해주는 분들이 계셨다.
그렇지만, ‘목사님’들은 내 영혼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목회자’ 없이 25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토요일,
내 아내와 함께 우리 목사님의 댁에서 오후 다과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된 내용은 내게 하는 ‘쓴 소리’들 이었는데, 뭐 우리 목사님이야 나를 잘 알고 계시므로,
매우 정확한 진단이 많이 있었다.
나누었던 이야기들도 참 감사했고,
따뜻한 분위기나 목사님/사모님의 마음 씀씀이도 참 감사했지만,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내게도 25년만에 ‘목회자’가 한분 생긴 것이로구나 하는 realization이었다.
오늘은 글은 제가 많은 생각하게끔 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 ‘나의 목사님’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니… 이 글을 읽기 전부터… 그런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쓴 졸개님도 부러웠고, 그 25년만에 찾게 되신 목사님도 부러웠습니다.
(그 25년만에 찾으신 목사님은 제게도 그런 비스무레한 분이시기도 한답니다.)
이쪽의 소식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최근에 많은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저의 품에 하나의 편지를 품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여차하면 드리려구요. 다행이 아직까지는 드리지는 않았지만요.
목사로 살아가고 있지만,
저도 역시 ‘저의 목사님’을 찾고 있답니다.
다른 사람들의 목사님으로 목양하고 섬기고…
더 나아가 진솔한 마음을 주는 목사가 되고픈 소망이 있는 동시에…
저도 기댈 수 있는… 저를 보살펴주는… 저를 걱정해주는…
때로는 제게 따끔한 말을 해주는… 저를 위해 기도해주는…
그런 목사님을 찾고 있는지 모릅니다. 간절히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최근에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답니다.
졸개님…
생각나시면…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그런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목회자를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렇지 않은 목회자로 인해
절망하고 포기하기보다
더 더욱 분연히 일어설 수 있도록…
목사님, 힘 내십시오.
목사님의 수고와 인내가 헛되지 않습니다.
고전 15:58
정말… 정말… 헛되지 않을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