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geeky한 생각 (8)

나는 가령,
회심은 천당을 가는 ticket을 확보하는 것이고, 그 후의 성화 과정은 optional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이라던가…
성화 없는 구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관점은 너무나도 이런 시간 개념을 단편적으로 이해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하나님 나라 백성됨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식으로 기술되는 것들이 참 많다.
특히 예수님은 아주 짤없고도 강력하게 행함에 대해 많이 말씀하신다.

아니 그럼… 성화를 이루어야 구원을 얻는단 말인가?
성화 하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가나?

뭐 이런 유치한(?) 걱정과 고민을 해보게 되는데..

구원이라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A(t1)부터 A(t2), A(t3)… 로 이어지는 전체 과정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관심사는…
그래서.. 어디까지 해야 구원을 얻는건데? 믿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것대로 살아야 하는 거야?
뭐 이런 식의 크로노스적 시간 개념에 따른 설명이지만…

성경의 관심사는
‘구원’ 전체를 그냥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그 안에 회심, 성화 등등의 내용들을 다 설명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읽다보면,
어떤때는 믿기만하면 구원을 얻는 것 같아 보이다가도… 어떤때는 완전함에 이르지 못하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같이 보인다.

이것을 가지고,
이신칭의냐 행위구원이냐의 논쟁을 하는 것은,
결국 시간 개념은 너무 평면적으로 보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다른 예를 들지만,
내가 저녁식사를 하는 ‘event’를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 내가 저녁 식사를 할때 어떤 시점에서 콩나물국을 떠 먹었고, 어떤 시점에서 깍두기를 먹었는지 하는 것이 저녁식사를 기술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그 저녁식사에는 깍두기와 콩나물국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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