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

1.
한국말로 Thanksgiving day를 ‘추수 감사절’ 이라고 번역을 하지만,
사실 그 단어를 직역하면 그냥 ‘감사절’이라고 해야 맞을 듯 하다.

감사절이라…

2.
사실 감사절을 맞는데 가장 난감한 사람은 별로 감사한 일이 없거나,
현재 많이 어려운 상황 속에 있거나,
깊은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3.
내가 국민학교 1~2학년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뜬금없이 ‘가훈’이 무엇인지를 조사했었다.
나는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때 범사가 뭔지도 몰랐고, 뭐 그냥 좋은 뜻이려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후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건 어머니께서 급하게(?) 지으신것이 분명했다. ^^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깊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계시긴 했지만 아버지는 기독교인이 아니셨고, 집안이 대대로 기독교와는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에 가훈이 ‘범사에 감사하라’일것 같지는 않다. ㅎㅎ

4.
그런데 어쨌든 그게 졸지에 우리집의 가훈이 되었다.
고등학교때 대학교때.. 나는 그 가훈이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더 진취적이고 뭔가 행동강령을 이야기해주는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독교적 클리쉐를 사용한 것 같아 뭐 별로 뽀대가 안난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내가 실제로 기독교 신앙을 내것으로 받아들인 후에도 그랬다.

5.
점점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신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나는 감사라는게 과연 무엇일까.
감사는 무엇에 근거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지금도 감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내가 생각한 진정한 감사는 상황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박국에 나오는 것 같이,
무화과 나무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고 무리에 양떼가 없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여호와를 인해’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사의 핵심이자 근원이자 포인트라는 것을 더 많이 깨닫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그 여호와께서 내 일을 잘 풀어주시기 때문에 감사한게 아니다.
그냥 여호와로 인해서 감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이 감사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되신다는 것이 감사한 것이고,
그 하나님의 나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 감사한 것이다.

6.
인터넷에서 최순실이 강남의 대형교회에 출석하면서 감사헌금을 하고 거기에 감사한 이유를 적은 내용이 주보에 실린 것을 보았다.
정말 쪽팔려서 죽을뻔 했다.

7.
그.런.데.
사실 대부분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접하는 감사가 사실 최순실의 감사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대부분 경험하고 아는 여호와가 최순실의 여호와와 다르지 않다.
소위 ‘기도제목’이라는 것을 나누면, 다들 최순실의 기도를 나누고,
서로 최순실의 기도를 해주고,
그 최순실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감사한다.
정말 쪽팔려 죽을 일이다.

8.
감사절에…
세상이 뒤숭숭한 이 금년의 감사절에…
과연 여호와로 인해 감사한 것이 무엇인가를 좀 잠잠히 한두시간만이라도 마음에 담아보고자 한다.
혹시 허락된다면 조용하게 혼자서 낙엽을 밟으며 그 감사를 곱씹어보고자 한다.

(다음 월요일까지 블로그를 쉽니다. 모두들 Happy Thanksgiving!)

2 thoughts on “감사절”

  1. 해피 땡스기빙입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1. 최순실의 기도제목을 보고는 저도 졸개님이 느끼신 것과 정확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 감사가 우리의 감사가, 그녀의 감사와 (어쩌면 그녀가 관운장 신에게 올렸을 감사와) 너무나도 닮아있어 부끄러웠습니다.

    2. ‘내가 받았것들로만 감사하기에는 우리에게는 아픈 이웃들이 너무나도 많구나’ 라는 생각… 이런 삶의 정황에서 참된 감사는 어떤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아시는 시겠지만 요즘 제 마음에 깊이 와 닿아 여기에 올립니다. 해피탱스기빙…

    감사한 죄 (박노해)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젊어서 홀몸이 되어 온갖 노동을 하며
    다섯 자녀를 키워낸 장하신 어머니
    눈도 귀도 어두워져 홀로 사는 어머니가
    새벽기도 중에 나직이 흐느끼신다

    나는 한평생을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아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니라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거리에서 리어카 노점상을 하다 잡혀온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판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에 감사만 하면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 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
    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
    사형을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아왔구나
    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묵주를 손에 쥐고 흐느끼신다
    감사한 죄
    감사한 죄
    아아 감사한 죄

    1. 아땅 교수님도 감사절 잘 보내셨는지요?
      박노해의 시 잘 읽었습니다.
      참… 마음을 깊이있게 흔듭니다…

      볼것 없는 블로그에서,
      이렇게 벗이 되어주셔서 생각과 마음을 늘 나누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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