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11)

경계표지는 신앙에 있어서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만한 것은 아니지만,
신앙에 있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을 믿는다.
바울이 정죄한 ‘할례당’은 나도 여전히 정죄한다. ^^

그렇지만,
나는 한때 술이라는 경계표지를 가지고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면서 신앙을 지켰던 사람들의 그 신앙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를 진지하게 찾아보고 있다.
아니, 이제 술이 더 이상 relavant한 경계표지가 아니라면 그럼 지금 이 시대의 경계표지는 무엇이냐는 것을 진지하게 묻고 있다.

세상에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잘 작동하고 fit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보다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다른 왕을 섬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그 경계표지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경계표지가 universal하거나 영원할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공동체마다 다른 경계표지가 있을 수도 있다.
어떤 교회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어떤 직장 성경공부 모임에서는 하청업체에게 깍듯하게 존대하는 것으로, 어떤 캠퍼스 모임에서는 특정 과목의 특정 project를 다 함께 boycott 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한 10년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경계표지를 삼았다가, 더 이상 그것이 relavant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그때부터는 R rated movie를 보지 않는 것이라던가… 그런 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지만,
경계표지 자체를 너무 쉽게 포기하거나 내가 불편하다고 휙 집어던져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 공동체에 속하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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