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신학 진영에 딴지 걸어보기 (4)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바울은 서신서에서 주로 ‘십자가’를 이야기한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reconcile 해야 하는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예수님의 생애를 가지고 기독교를 ‘발명했다’고까지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꽤 괜찮은 설명을 N. T Wright이 한 적이 있다.
바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그렇게 많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적어도 그 당시 독자들의 context 안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context가 너무나도 자명하게 pre-supposition으로 share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이게 얼마나 적확한 argument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신앙적으로 꽤 괜찮은 설명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그 당시 1세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은 마치 일제시대의 해방/독립이나 80년대 한국에서 민주화 등과 같이 그저 아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바울이 설명하고자 했던 것은 그렇게 다수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하나님의 통치 / 하나님의 나라 라는 개념이 어떻게 예수님과 연관이 되는지를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부터 이런 생각을 해 볼수 있다.

하나님나라 없이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배경설명 없이 소설의 결론부를 이야기해주는 것과 같고,
십자가없이 하나님나라를 이야기하는 것은, 소설의 결론부 없이 배경설명만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딱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울이 십자가신학과 기독론을 그렇게 이야기했어야 했던 이유가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충붆지 않았던 것이었다면… 우리도 하나님 나라 narrative가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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