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신학 진영에 딴지 걸어보기 (7)

어떤 것을 깨닫는데에는 때로 어떤 break-through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가령, 1+1=2 라는 것을 이해하는데에는 그런 break-through가 그리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 ‘진리’가 여러 layer로 되어 있거나 기술되어 있는 것 이상의 다른 초월성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은 때로 일차적인 수준에서의 이해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필요한것 같이 느껴진다.
(때로는 그것을 ‘철이든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

마찬가지로,
죄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해 등등은 흔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더 크고 깊은 깨달음이 필요한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머리에 있는 것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십자가 신학에는 그런 측면이 매우 명확해 보인다.
정말 깊이 있게 죄를 인식하고 깨닫는 것은 일차적인 논리적 이해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순간 정말 그 죄가 나와 세상 전체의 문제라를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하나님나라 신학은 조금 이해되는 방법이 다른것 같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방식의 성경해석, 예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식의 신학방식이 새로 information으로 들어오면…
그것을 넘어서는 extra layer의 깨달음의 필요가 훨씬 적거나 없어 보인다.

그래서,
십자가 신학은… 논리 자체는 단순한 반면 그것을 넘어서는 초월적 깨달음의 영역이 대단히 크고,
하나님나라 신학은… 논리 자체가 다소 더 복잡한 반면, 일단 이해가 되고 나면 그 이상의 초월적 깨달음의 영역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십자가 신학 진영이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초월성을 도외시하거나 그 접근에 대해 약할 수 있겠다.
십자가 신학(만)을 이야기하는 어떤 사람의 신앙 속에서,
때로 초월성이 현저하게 결여된 것 같아 보이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이상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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