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긍정하는 기독교 (6)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을 참기 힘들어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가볍게는, 무엇을 먹고 싶다 (craving)을 참는 것을 힘들어 하기도 하지만,
조금 더 심각하게는, 내가 무엇이 되고 싶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 어떤 lifestyle을 가지고 싶다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참 어려워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 부모님 세대는, 자신이 무엇을 이루겠다는 꿈이나 자신이 무엇을 누리겠다는 생각보다는 훨씬 더 우리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사셨던 것 같고,
자아실현보다는 생존을 위해 사셨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생존을 위해 살기보다는 자아실현을 위해 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흔히 직장생활 이라는 것을 그릴때, 힘들고 아니꼽고 사표쓰고 싶지만 가족을 위해 참으면서 열심히 일한다는 식의 그림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것을 포기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생존하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힘들어하기 보다는 자기의 자시 자신에 대한 욕망을 충분히 채우지 못해 힘들어 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왜 그럴까.
아마도 생존의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이 되니까 ‘자아실현, 자기 만족’에의 욕구가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겠지.

나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해가며 가족이나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특성과,
내 꿈, 내 욕망을 채우는 것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요즘 젊은 세대의 특성,
이 두가지를 모두 다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내가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주 묻기도 하고, 더 많이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어떻게 네 자신의 욕망에 대한 확신을 그렇게 강하게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정말 내 스스로의 판단을 신뢰하는 것이 어렵다.
특히 그 이해 당사자가 나 자신일때는 더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결정을 할때면, 처절하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하기가 너무 쉽고,
그런 이기적인 결정은 왜곡되고 비뚤어진 내 죄성에서 비롯되기 너무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내 이해에 관련된 어떤 결정을 하려 할때는,
정말 내 의도가 얼마나 선한 것인가를 아주 여러번 점검하려 노력하고,
그렇게 한 후에도 내 판단이 충분히 선하다는 것을 정말 믿기 어려워서 힘들어 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쉽게 어떤 결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2 thoughts on “욕망을 긍정하는 기독교 (6)”

    1. 서..서…설마…… 제가 사도바울을 연상하게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
      어쨌든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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