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업이나 자리나 위치는, 그 일을 잘하더라도 뭐 그냥 그저 그렇게 여겨지는 경우가 꽤 많다. 어떤 의미에서 대부분의 직업이 그런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사하는 대부분의 직업들은 대개 그렇다.
어떤 직업이나 자리나 위치는, 그 일을 잘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래서 잘 못하면 크게 비난을 받거나 어려움에 처하거나 큰 책임을 지게된다.
가령, 정치인, 많은 리더들,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의사 등등은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직업이나 자리나 위치는, 그 일을 잘하면 크게 주목을 받고 박수를 받기도 한다.
특별히 용감하게 일을 한 소방관이나 경찰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는 응급실 staff들 등등.
그런데,
어떤 직업이나 자리나 위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 사람이 그 일을 잘 한다고 칭찬할 모든 준비를 다 하고 기대하기도 한다.
가령, 세상의 모든 자녀들은 자신의 부모들이 좋은 부모이길 간절히 바라고, 웬만하면 자신의 부모들이 좋은 부모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은 자신의 교회의 목사님은 좋은 목사님이길 간절히 바라고, 웬만하면 그 목사님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꽤 많은 경우, 학생들은 자신의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이런 부류에는 삶의 길을 인도해주는 멘토, 자기가 아끼고 따르는 선배, 유난히 자신을 챙겨주는 친척 어른 같은 사람들이 될수도 있다.
많은 경우 자신의 배우자에게도 그런 기대를 갖게되기도 한다.
나는…
모든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네번째 부류의 위치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 사람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제대로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일,
어떤 부모가, 어떤 선생님이, 어떤 목사님이, 어떤 선배가, 어떤 멘토가,
나는 그런 부모나 스승이나 목사, 선배, 멘토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린다면…
그냥 그런 사람은 소망이 없는 거다.
그리고 그로인한 고통은 그 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게 된다.
나는,
어쩌어찌하다보니 아버지가 되었고, 정말 좋은 아버지일까 하는 고민을 해보지만 사실 그렇게 자신은 없다.
어찌어찌하다보니 남편이 되었고, 정말 좋은 남편일까 하는 고민을 해 보지만 그 역시 자신이 없다.
때로 ‘가르치는’ 사람이되어 성경을,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며 살기도 하지만 그것도 전혀 자신이 없다.
어제 하루 Juneteenth라는 휴일이었다.
어제 나름대로 이번 KOSTA 준비들을 몰아쳐서 하려고 했는데,
이런 무거운 마음에 막상 별로 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율법교사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디모데전서 1:7)
내가 그런 부류의 사람이지는 않은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