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여기서 ‘속이다’라고 번역한 단어는 히브리어 Patha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속이다 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유혹하다, 설득하다, (이성을) 꼬셔내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출애굽기 22:16에서 이 단어는 “seduce/유혹하다”로 번역하면 가장 적절한 문장에 사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아직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서 건드리면, 그는 반드시 신부의 몸값을 내고,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꾀어서’라고 번역한 단어가 바로 이 단어이다.
사사기 14:15도 역시 비슷하다.
유혹하다로 번역할 수 있고, NASB에서는 entice라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다.
“…신랑을 꾀어서, 그가 우리에게 낸 그 수수께끼의 해답을 알아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오….”
사사기 14:15에는 삼손의 아내에게 남편을 꾀어내어서 라고 할때 이 단어를 쓰고 있다.
만일 예레미야 20:7의 단어를 ‘꾀어내다’라고 번역한다면, 그 구절은 이렇게 번역이 된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꾀어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꾀임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그러니 이건,
주님이 예레미야를 유혹해서 밖으로 꾀어서 불러낸 이후, 예레미야를 힘으로 제압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건 성폭행을 연상시킨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성폭행범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만일 이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예레미야는 정말 엄청 하나님에 대해서 화가 났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한 최대로 험악한 표현을 써서 하나님께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진짜 나쁜 분입니다…..
때로,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왜 그러시는 겁니까. 당신은 왜 그렇게 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기도하게되는 순간이 있다.
그건,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