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환대 (2)

나는 그분들이 왜 그렇게 환대를 이야기하는지 이해한다. (적어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금 한국과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의 전투성, 배타성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래서 전투적이고 배타적이기 보다는 친절하고 포용적인 기독교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었을 것 같다.

나도 동의한다.

전투적이고 배타적인 보수 기독교는 정말 매력없다. ㅠㅠ
그리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도 아닌 것 같다.

자신들의 ‘신념’ (나는 신앙이라기보다는 신념이라고 생각한다)에 맞지 않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지 말고 다 좀 친절하게 하자는 이야기는 꼭 해주고 싶다. 그 사람들은 잘 듣지 않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적 환대에 대한 이야기는 필요하다.

그런데,
내 질문은 이것이다. 그것에 대한 반대로 ‘환대’를 이야기해야 했을까?
정말 환대라는 가치가 지금 상황에 대한 해결책일까?

내가 환대라는 가치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는 있으나,
나는 폭력성, 배타성, 전투성의 반대로 환대를 잡은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폭력, 전투, 배타성의 반대는 환대가 아니라 사랑이다.

환대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환대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Leave a Reply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