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fluent

나는 학교 다닐때 영어를 아주 뛰어나게 잘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뭐 문법은 빠삭하게 잘 알고 있었다. ㅎㅎ
성문종합영어를 열심히 공부했으니…

그러나,
미국에서 와서 공부했던 첫학기, 나는 옆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말 한마디 건네볼 정도의 영어실력도 되지 않았다.
그저 강의 이해하고, 숙제 해서 낼 수 있는 정도.

영어를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문법도 잘 알았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는 못했던 것.

예전에 학교 다닐때,
강의하는 내용을 잘 알고 계신 선생님/교수님들이 계셨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분명히 그 내용을 유창하게 다루어내지는 못하셨다.

교회에서도…
어떤 목사님은 내용을 알고 설교하시는 분들이 있고,
그 내용을 유창하게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다.

안다고 그것을 유창하게 다루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아주 큰 간극이 있다.

삶이 중요하다고 하는 건…

그리스도인의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건 참 건강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삶이 중요하다는 강조가 자칫,
기독교를 삶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삶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할때에는,
삶이 신앙의 영역 밖에 있을 때, 삶과 신앙이 분리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지,
기독교를 자신의 작은 삶의 영역 속에 가두어 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독교를 자신의 작은 삶의 영역 속에 가두려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 삶에 대한 시각을 상대화시키면서 너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강조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중요하다,
성경말씀 더 아는 것 보다 삶이 중요하다… 는 식의 이야기가 자칫…
자기중심적인 이들의 자기중심성을 강화시켜주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쉽다.

mixed messages

8월 말에 Moderna와 Pfizer의 Bivalent COVID-19 백신이 FDA로부터 긴급사용승인 (EUA: Emergency Use Authorization)을 받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아직도 이게 긴급사용승인을 해야할만한 상황인건가?
사실상 pandemic이 끝났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고, 실제로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여전히 FDA를 긴급사용승인을 해준 것.

내가 보기엔,
지금 이 상황을 정확하게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명확하지 않아보인다.

Biden대통령은 pandemic이 끝났다고 이야기했는데,
(물론 그것이 비전문가의 정치적 수사였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Biden 정부 하에서 FDA는 EUA를 내준것.

Spiritual Growth Roadmap

어떤 사람이 어떻게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는가 하는 path와 방법을 spiritual growth roadmap이라고 정의해보자.

영적리더가,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spiritual growth roadmap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적어도 그것을 찾는데 적극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 리더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spiritual growth roadmap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영적 지도자는…. disaster다.

(지난 주말에 했던 성경공부중에 나온 말)

기독교는 과학과 충돌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과학과 충돌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어떤 특정한 교리는 과학과 함께할 수 없다.

가령,
원죄 교리 (그중에서도 아담과 하와의 타락 때문에 죄가 들어왔다는 설명)은 현대과학과 병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하는 성향이 있다는 설명은 현대과학과 충돌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러니 선택은 이렇다.
그 교리를 믿고 과학을 거부하거나…
기독교를 믿고 과학을 받아들이는 것.

나를 믿지 못함 = 하나님을 믿지 못함

신앙을 갖고 사는데 있어 나를 믿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나도 그렇게 자주 생각하는 것 같다.

이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 같아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나를 믿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부족함으로부터 전혀 자신이 나아질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가령, 나는 내 의지력을 믿을 수 없어. 나는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없어…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내가 꾸준히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 사람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 변화되어서 꾸준함을 조금 더 갖추게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버린채 나 자신의 어떤 상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를 믿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나를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일 수 있다.

그런건 난 못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하나님을 향한 반역일수도 있다는 것.

문제의 해결이 아닌 지혜

하나님께서는 내가 당면한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으신듯 하다.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에 당면한 내게 관심이 있으시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문제에 맞닥드렸을때,
하나님께서는 문제의 해결에 관심을 두시기 보다는,
그 문제를 다루어내는 나에 관심을 두신다.

결국 문제를 맞닥드렸을때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최고의 열매는,
그것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혜가 아닐까 한다.
그 문제를 하나님과 함께 다루어내는 경험을 통해, 내가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이다.

전혀 가슴 뛰지 않는 기독교

어떤 기독교는 그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
그것이 보수적인 개인 구원에 대한 것이냐, 진보적인 사회 구원에 대한 것이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전혀 가슴뛰지 않는 기독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이 믿는 기독교는 그것을 보며 가슴이 뛴다.
보수적인 입장에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모습, 진보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겸손하게 섬기는 모습등에서 정말 뭔가 다른 그 무엇을 느끼게 된다.

가슴뛰지 않는 기독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개,
가슴뛰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구원과 신앙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회의 부조리를 정치적으로 비판하며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엘리티시즘이 되어버린 정치구호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자신은 막상 그 삶에 헌신하지 않으면서 구호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믿는 기독교는 다른 이들의 가슴을 뛰게하지 않는다.

신학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신학이 그 사람의 신앙을 진실된 것으로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늙지 않고 익어간다

지난주에 어머니가 노사연이 부른 이 노래가 참 좋다면서 추천을 하셨다.
가사가 참 좋았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이제는 60대 중반이 되신 노사연 누님이, 이 노래 부르기에 적절한 나이가 된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모든 사람은 늙지 않고 익어가는 걸까?

음…. 아무래도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익어가지 않고 그저 늙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늙는것보다 익어가는 것이 훨씬 더 깊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중간에 어떤 스펙트럼 가운데 있겠지.

나도 50대 중반이 되어가고 있으니,
나는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것 만큼 익어가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정말 죽는날까지 계속해서 끊임없이 더 깊어지고 더 익어가게되길.

이번학기 성경공부

9월에 여러가지로 바빠서 가을학기 성경공부 시작을 delay 시켰고,
이번 주말부터 다시 성경공부를 한다.

신청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서, 총 3반으로 나누어서 하게 되었다.
이제는 금요일 저녁 한 class,
토요일 저녁에는 back-to-back으로 두 class를 해보려고 한다.
(총 25명이 신청을 했다.)

그래도 이렇게 성경공부를 해보겠다고 신청한 사람들이 참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뭐라도 좀 더 열심히 해서 이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시간이 되도록 해보려고 한다.

이번 가을 학기에는 야고보서를 본문으로 공부를 한다.
그런 이유는…

지난학기 갈라디아서를 완전 빡쎄게 (적어도 내게는 빡쎄게) 했는데…
헬라어 찾아가며, 여러 신학적 관점들 공부해가며, 두껍고 어려운 책 읽어가며… 그렇게 하다보니, 좀 묵직하게 배운 느낌이 있긴 한데…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느낌.

게다가 지난 몇학기 성경공부를 하면서 보니,
이렇게 지식으로 성경을 더 공부한 것이 personalize되는데에는 다른 차원의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에 야고보서 공부를 하면서는,
지나치게 분석적인 성경공부를 하기 보다는,
그 말씀을 잘 생각해서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더 깊게 생각해보는 형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온라인으로 하는 것이긴 해도,
벌써 3년째 이렇게 성경공부를 하다보니 그래도 좀 친해진 감도 있고 해서, 조금 더 개인적인 영역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싶다.

Google classroom 세 반을 open 했고, 지난 주말 이제 그곳에 내용을 올리기 시작했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성경공부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