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er cultural religion?

예전에 다녔던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인도 사람인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은 내게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이었는데, 뭔가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좀 일하는게 답답하다고 느껴졌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꼭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의 이름을 묻고, 누구든 그 이름으로 불러주곤 했다.
시간을 써가며 사람을 조심스럽게 대했고, 그렇게 하다보니 일하는게 덜 빠릿빠릿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 agenda를 상대방에게 설득시키거나 심지어는 강요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리콘밸리의 문화 속에서, 그 사람은 매우 자주 멈추어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그 사람은 나름 힌두교를 practice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람의 힌두교적 사고방식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counter cultural한 모음을 가지게 했을까?

요즘은 태국 사람들과 일을 많이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일하는게 좀 답답하다고 느껴질때가 많이 있다.
이 사람들도 사람들과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는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보일때가 있다.
뭔가 미팅을 빠릿빠릿하게 해야 하는데, 쉽게 다른 이야기로 빠지기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일상을 나누는데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쓴다.

내가 알기로 태국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신자다.
혹시 이 사람들의 그런 성향이 혹시 그런 종교적 배경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지난주 태국에 가서, 그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뭔가 살짝 느린 템포로 서로 웃으며 공손하게 대하는 것이 어쩌면 그들 나름대로의 counter cultural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counter cultural하게 살고 있는 걸까?

감당하지 못할 시험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13)

예전에 내가 꽤 확신을 가지고 믿었던 구절이다.
나는 이걸 개역성경으로 암송하기도 했었고.

그런데,
정말 그런지 잘 모르겠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당하기 불가능해보이는 시험을 주시기도 하시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여러가지가 겹치면 저 사람이 결국 무너저버릴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사람이 무너져버리는 것을 보게되는 일이 있었다.

능력 이상으로 시런을 겪는 것을 하나님께서 정말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이 고린도전서 앞뒤 맥락을 보면, 여기서 시험이라는건 시련이라기 보다는 유혹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다. 하나님께서 감당하기 불가능한 유혹을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 유혹에 빠져들어버려서 자신을 망가뜨리고 나면 그건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겠고.

어려운 일이 닥칠려면 정말 막 닥칠 수 있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힘든 상황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 속에서도…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그 사람을 지탱하게 하는 것 같다.
이것보다는 더 어려운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Can I trust myself?

필립 얀시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뉴스는 내게도 꽤 큰 충격이었다.
물론 나는 그분의 성품이 어떤지, 그분의 삶이 어떤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글을 통해서 만난 그분은 정말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올해 76세이고, 지난 8년간 불륜 관계를 맺었다고 하니, 68세부터 시작된 관계라는 것.

분명히 고백에 나타난 이분의 잘못은 명백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분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일방적으로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나 할까.

나는 내 스스로를 생각할때,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기에는 너무 겁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는 편이다.
그 범죄가 드러나게 될때 겪게될 여러가지 문제들이 두려워서 성적인 범죄를 짓지 못하는 것.
그런데 그건 내가 하나님에게 충성되기 때문에, 혹은 내 도덕적 기준이 더 높기 때문에, 아니면 내가 내 integrity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적인 범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두려움에서 피하고 있다는 말.

지난주 긴시간 비행기를 타면서 혼자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이었던 그가 불륜 관계를 8년이나 지속해오면서 어떤 생각의 흐름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 했을까.

요즘 나는 Encounter with God 을 따라서 성경묵상을 하고 있다. 요즘 한참 산상수훈을 지나고 있는데…
마태복음에 나타나 있는 다른 방향의 삶의 모습들을 읽으며, 한때 나는 매우 흥분했었다. 내게 이런 새로운 삶의 길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몹시 기뻤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살기위해 노력했고, 아주 단기간에 나는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다른 삶의 모습들에 더 이상 흥분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그저 그런 것… 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것…이라며 단념해버리고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제는 내 묵상 note에… 도대체 나는 어디서부터 길을 잃은 것일까…. 라고 적었다.

필립 얀시 뉴스를 접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도대체 나는 다를까? 나는 충분히 무너질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음에도 그저 겁이 많아서 무너지고 있는 비겁한 상태는 아닐까? 혹시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자신을 신뢰 할 수 있을까?

우울한 출장

지난주, 태국에 출장을 다녀왔다.
처음 절반은 방콕에, 후반부에는 파타야에 있는 호텔에서 묵었다.

나는 평소 태국음식도 좋아했고, 태국은 가보지 않은 나라여서 기대를 그래도 조금 했다.

그런데, 다음의 몇가지가 내겐 좀 우울하게 느껴졌다.

첫째,
나는 그래도 꽤 좋은 호텔에 묵었다. 그리고 대개 돌아다니면서 식사를 할 시간이 없으니 호텔 혹은 호텔 근처에서 아침과 저녁을 해결하고 점심은 공장에 가서 먹었다.
그런데, 내가 먹었던 식사가 결코 싸지 않았다. 호텔 저녁부페는 고급이었으니 비쌀만 하다 싶기도 했지만 현지 가격으로 1800 THB까지도 되었다. (거의 58 USD)
매일 그렇게 먹었던 것은 아니고, 대부분 호텔과 붙어있는 쇼핑몰 같은데 가서 먹었는데, 거기서 조금만 골라 들어가서 먹으면 한끼에 400~500 THB (13~16 USD)가 되었다. 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인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싼 거다.
그런데 듣기로는 현지 사람들이 먹는 night market같은 데서 먹거나 진짜 태국 사람들이 가는 음식점에가면 100 THB (3~4 USD) 수준에서 먹을수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같은 식사인데 관광객들이 먹는 음식과 현지 사람들이 먹는 음식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현지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이랄까… 그런건 어떨지…

둘째,
사방에 왕실 사람들 사진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는 뭔가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위한 장식(?)들을 해 놓았다. 이게 특히 작년에 왕대비 (지금 왕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그 사람을 추모하는 사진들이 많이 있어서 더 심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왕의 존재가 없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라고 살고있는 나로서는, 그 가난한 나라에서 왕으로 군림하면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그 나라의 국민들이 추앙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좀 불편했다. 왕실 모독죄 같은 게 아주 엄격해서 뭘 어떻게 해보기도 어렵다고 들었고.
사실 태국은 내가 알기로 예전에는 한국보다 더 앞서있는 경제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전쟁에 파병을 하기도 했고.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태국은 군부의 부패와 왕실의 무능 등이 겹쳐 계속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그런 왕실을 온 국민이 떠 받들고 있는 상황은…. 그냥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셋째,
파타야는 완전 환락의 도시였다.
호텔 앞에 조금만 나가면, 나이 많은 백인 아저씨가 젊은 야하게 입은 아시아 아가씨와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호텔과 공장 사이만 왔다 갔다 하느라 파타야 도시 자체 여기저기를 다닐 기회를 갖지는 못했지만,
호텔에 가까운 곳에도 아마도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가난한 환경 속에, 부패한 부자나라의 늙은 돈이 들어오면서, 그저 추한 모습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도덕적이냐 그렇지 않으냐를 떠나… 그저 그냥 많이 마음이 불편했다.

넷째,
태국에서는 여러곳에서 불상 혹은 불교 관련된 장식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탔던 모든 택시에는 다 불상이 dashboard에 있었고,
도시 구석구석에 복을 비는 작은 사원같은 것들이 있었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불교의 심오한 명상이나 참선 같은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진지하게 구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일종의 respect가 있다.
그러나, 불상을 부적으로 생각하고 가지고 다니거나, 그저 부적 앞에서 자신의 복만을 비는 식의 종교행위는, 특히 사회적 경제적 부조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종교행위는, 그저 안타까운 모습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 그래… 그게 지금 한국이나 미국에서 기독교인들의 모습인건데…

앞으로 태국에 조금 더 자주 가게 될 것 같고,
계속 태국 사람들과 일하게 될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이 자신의 문화를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걸 듣는다면 아마 많이 불편할 것 같다.
그러니 지난주 내가 이렇게 불편하게 생각하게된 것 조차 어쩌면 어설프게 잘 못 아는 외국인의 교만한 판단일수도 있겠다.

앞으로 태국 사람들과 계속 더 일 하면서, 그 사람들로부터 더 배우고, 그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경험이 더 있게되면 좋겠다.

새해 바라는 것들 – 나만의 비밀을 늘려가기

1. ㄱㄷㅇ 간사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신다.
“네가 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말아라”
나는 예전에는 그 말씀에 많이 동의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말씀에 더 동의하게 되어갔다.

2. 매일 이렇게 블로그에서 ‘공개일기’를 쓰고 있고,
매주 2~3개씩 온라인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고,
가끔 여러 세팅에서 강의나 설교등을 하고 있기 때문에,
늘 내 생각과 마음을 여러가지 형태로 표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생각을 많이 표현할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내 경험과 생각과 마음을 지나치게 쉽게 일반화 하는 것이다.
내가 이랬으니 누구나 이럴 것이다….

3.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을 공적으로 나누게 되는 잘못을 범하는 일들이 어떻게 생기게 될까?
우선, 내 개인적인 것들을 절대화하거나 일반화해서 너무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 뭔가 공개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할 얘기가 마땅치 않고, 적절한 예가 그저 내 경험과 내 주변 사람의 경험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4. 이 문제의 해결책 가운데 하나는,
내 사색의 폭과 양을 많이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색의 영역 가운데 일부는 그냥 나만의 영역으로 한정시켜 놓는 것이다.
혹은 하나님과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의 영역으로 남겨 놓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어쩌면 약간은 더 성숙해 지면서) 하나님과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의 영역들이 더 넓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혼자 하는 개인 기도가 아니면 하지 않는 말들이 있고, 생각들이 있다.

바람은 그런 영역을 더 넓히고 싶다.
그저 하나님께만 말씀드리는 어떤 이야기들, (기쁜 이야기, 속상한 이야기, 후회되는 이야기, 자랑스러운 이야기, 감사한 이야기, 외로운 이야기, 아픈 이야기 등등) – 그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면 좋겠다.

새해 바라는 것들 – 쓰는 기도

이건 새해 결심이라고 해볼만 하지만,
매일 그렇게 할 자신이 없어서 결심은 아직 못하고 있다.

그건,
매일 내 기도를 쓰는 것이다.
내가 꼭 일어나야 하는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말씀 묵상과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나름 바쁜 아침에 시간에 쫓기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다보니, 어떤땐 기도를 후다닥 하게 되는 일들이 많다.

게다가 내가 동부 사람들과 일을 하기 때문에,
때로는 아침 일찍 meeting이 잡히게 되고,
그러면 아침 시간이 더 짧아져서 마음이 더 조금해 진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기도를 글로 쓰면서 하는 일을 조금 해보고 싶다.
그건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나 혼자 간직하는 노트로.

그렇게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과, 세상을 위한 기도,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 기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들을 해보고 싶다.

새해 바라는 것들 – 가끔 피정

Layoff 기간동안 나름 꽤 기도를 할 수 있었다.
내 영혼은 엉망인 상태였고, 처음엔 기도하는 것 조차 많이 힘들었는데,
어쨌든 내겐 시간이 있었고 하루중 많은 시간을 그래도 기도하는데 할애했더니,
조금씩 기도가 회복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충분히 기도가 회복되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한시간씩 깊게 기도하면서 내 마음을 쏟아놓고 아뢰며 하나님과 대면하는 일들이 있었는데,
아직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하고 있다.

요즘은 아침에 한 20분 기도하는데,
생각이 마치 흥분한 강아지가 뛰어노는 것 같이 난리를 친다.
그 잠깐 기도하는 것이 참 힘들때가 많다.
게다가 그날 할 일들이 머리 속에 쏟아져 들어오면 기도하다가도 쉽게 생각이 떠돌아 다닌다.

새해엔,
가끔 반나절씩 피정을 해보고 싶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영혼이 망가져 내리지 않도록 돌보고자 함이다.
정말…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새해 바라는 것들 – 곱씹을 책 읽기

작년 초에, 한해동안 책을 20권정도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지만 작년에 책도 읽고, 여러가지 공부도 하긴 했다.
조금 읽기 빡빡한 책들을 포함해서 그래도 평균 한달에 한권 정도는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내가 읽었던 책들은 내게 지식을 공급해주는 책들이었다.
그래서 읽으면서 흥미있게 읽었고, 내게 유익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들 중 내게 오래 영향을 준 책들 가운데는,
지식을 공급해 주는 책이라기 보다는 지혜를 공급해준 책들이 있었다.
내 머리에 양식을 공급해준 것이 아니라 내 영혼에 양식을 공급해준 것들이었다.

그런 책들은 오랫동안 내가 그 내용을 되뇌이게 했고,
그 책들이 내 생각을 바꾸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 자세를 바꾸었다.

그런 책들을 만나고 싶다.

새해 바라는 것들 – 옛 친구와 연락하기

오래된 친구들, 선배나 후배들, 선생님들, 예전에 다니던 교회 목사님들, 동역자들…
나는 가끔 그분들 생각을 하곤 한다.
아주 뜬금없이 어떤 사람이 잘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는 facebook이나 instagram같은 것도 잘 하지 않으니 내게는 그분들의 근황이 잘 뜨지 않기도 한다.

그중 어떤 분들은 지금 다시 내가 그분들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이 너무 어렵게 되어버리기도 했다.
연락을 안한지 30년이 넘은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가끔씩 궁금해 진다. 보고싶다고 이야기할수도 있을 것 같다.

아, 물론 그중 어떤 사람은,
그렇게 나를 괴롭히더니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하는… 일종의 악연 때문에 잊혀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과는 다시 연락하고 싶지는 않다.

과연 옛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서 다시 안부를 물을 수 있을까.
아마 잘 안될 것 같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그 사람들에게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다.

새해 바라는 것들 – 혼자 하는 짧은 여행

COVID 전에 출장을 많이 다니던 때가 있었다.
매달 열흘씩 다른 나라에 가야하는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그 기간 내내 시차적응을 하면서 살게 된다. 그때는 일년에 100,000 마일은 넘게 비행기를 탔다. 매우 피곤했다.
다른 나라에 가면 낮에는 그 나라 일을 하고 밤에는 home office 일을 해야하니 출장 기간동안 잠자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참 쉽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이럴 때가 있었다.

한 도시에서 일을 하고,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해야하는 일이 있었는데,
어떤 때는 기차를 타고 가기도 했고, 어떤 땐 운전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땐 주말을 전혀 모르는 외국의 도시에서 보내게 된적도 있었다. (대개 나는 주말을 생소한 도시에서 혼자 보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웬지 모를 우울함등이 몰려오곤 한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렇게 출장 일정중 짜투리 시간이 생겨,
어떤 동네에 반나절 머물게 되거나,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갈때 전혀 낮선 도시를 거쳐 간다거나 할때,
그냥 혼자서 그렇게 여행을 하게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아주 뜬금 없이 기차 안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여유가 생기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의 돌아다니며 관광을 하고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생길때도 있었다.

사실 지난번 layoff 기간동안, 한번은 혼자서 미국 roadtrip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새해에는 내가 예전에 가보지 못했던 나라에 다니며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그 속에서 한 반나절 시간을 내어서 혼자 못 먹어보았던 음식도 먹고, 그 나라 사람들 사는 것도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