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ence

내가 어릴때, 전혀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지금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고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고,
여러가지 세팅에서 말씀을 나누며 살고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기술’이 조금 더 늘어서,
어떻게 사람들의 감정선을 더 자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더 알게 되었고,
때로는 그렇게 해서 감정을 manipulate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manipulation은 결국은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 이상의 확신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표현되기 싶고, 그러다보면 결국 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의 integrity가 심각하게 손상되고 만다.

가령,
나는 지난 거의 10~15년동안,
‘Lordship’애 대한 강조를 많이 해 왔다.

그런데 문득…
나는 과연 그 Lordship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진지한 성찰을 해보게 되었다.

Lordship이라는게 결국은 꽤 ‘강한’ 이야기가 나오기 쉬운 주제이고,
그러다보면 내 믿음의 한계를 벗어난 이야기를 마치 내가 믿고 있는 이야기인양 하게되는 우를 범할수도 있다.

어릴때 호기롭게 주를 위해 내 삶은 바치겠다고 이야기했던 어설픈 믿음의 외침은,
지금 보면 빈 구멍이 엄~청 많은 것이었고,
여태껏 그 어설픈 호기로움에 내가 사로잡혀 있다면 나는 여전히 미숙한 것이다.

미숙을 벗어나 성숙해가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내겐 더 필요한 듯.

한 사람

어제 정말 완전 우연히,
10년전? 아니 그보다 더 전인가? 함께 성경공부를 했던 사람을 만났다.
내가 조금 빨리 걸어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어떤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 것은 느꼈는지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고, 우리는 둘 다 어~ 하면서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

나는 정말 반가웠다.
그래서 그냥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한 30여분? 어떻게 살았는지 그냥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가 둘 다 잘 알고 있는 ㅎ 목사님께 마침 내게 카톡이 왔고, 그래서 ㅎ 목사님께 전화를 드리고는 졸지에 전화통화도 같이 했다.

여태껏 내가 여러가지 형태로 성경공부를 하면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몇명이나 될까…
뭐 그래도 수백명은 되지 않을까.
그중 그 그룹은 그래도 내가 짧지만 꽤 열심히 노력 했던 그룹이었고, 어제 만난 N형제도 당연히 가끔 생각도 나고, 그 온가족을 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하면서…
아, 여전히 예수님 잘 믿으려고 고민하면서 살고 있구나…
참 반갑고 좋았다.

N 형제는 잘 살고 있구나.

성경통독

새해 들어서 또 하나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성경 통독이다.
토요일에 대충 신약성경 책 하나 정도,
주일에 대충 구약성경 책 하나 정도 그렇게 읽고 있다.

주중에 성경을 읽는 시간을 잘 내지 못해서, 주말을 이용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아 이게 꽤 여러가지로 도움이 된다.

가령 레위기 같은 책을 앉은 자리에서 그렇게 쭈루룩 읽어본건 정말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꽤 빠른 속도로 성경을 쭉쭉 읽어가니,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한꺼번에 들어와서 참 좋다.

적어도 여태껏 내 경험에 따르면,
성경통독을 좀 열심히 하는 시즌에는 대개…
내 기도에 그 성경의 구절들이 자꾸 묻어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곤 했다.
그래서 통독이 기도에 도움이 될때가 많이 있음을 경험 했었는데…
(그럴땐 대개 하루에 5 장남짓 정도 읽곤 했었다.)

이번엔 하루에 읽는 양을 좀 많이 늘이고 나니,
그렇게 내 기도에 성경의 언어들이 막 들어가게되지는 않는데,
대신 성경에서 이야하고자하는 흐름이 조금 더 마음에 담겨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영적인 영역보다는 지적인 영역에 더 도움을 주는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렇게 좀 더 부지런히 성경을 쭉쭉 읽어보려고 한다.
그냥… 내가 좀 살아야 겠기에…

2024년 말씀 묵상

2024년 아침 말씀묵상을 조금 바꾸었다.
작년까지는 한국의 매일성경본문을 따라서 했는데, 금년에는 미국 성서유니온의 Encouter with God의 본문 순서를 따라하고 있다.
어차피 나는 그 책들을 사서 보지도 않고, 그 해설들을 읽지도 않으니 그냥 매일 정해진 본문만 체그해서 볼 수만 있으면 되는 건데..

막상 해보니 살짝 다른 점들이 있었다.
우선 Encounter with God의 본문이 매일성경보다 조금더 짧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복음서 같은 본문은 더 짧게 끊어서 배정되어 있었고, 레위기 같은건 길게 길게 나누어져 있었다.
이게 꽤 도움이 되었다.

내가 아침 말씀묵상을 할때 가장 어려운점은 본문을 자꾸만 분석적으로 읽으려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말씀묵상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길어지게 되고 내 삶을 곱씹어보는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Encounter with God의 신약본문은 더 짧아서 분석적으로 본문을 볼 여지가 훨씬 줄어들게 되었고, 결국 더 직관적이면서 개인적으로 본문을 묵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반면 레위기 같은건 짧은 본문을 봐서 별로 다가오는게 없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런 경우 한장 혹은 두장씩 길게 길게 읽으며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방식이 되어 내겐 더 좋았다.

주일에는 시편 한편씩 보도록 되어있는 것도 좋은 것 같고.

덕분에 새해에 조금 더 ‘묵상’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다시 시작… for now

한달+ 동안 블로그 쉬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 개인적인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있었고. 나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에도.

내가 처음 블로그를 하려고 했을때,
김교신 선생의 ‘공개일기’가 내 모델이었다.

내가 감히 김교신 선생 같은 분과 비교할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리고 내 글이 그분의 공개일기의 수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지만,
그렇게 공개일기를 쓰면서 그분의 생각을 정리하고, 한편 그 생각을 나누었던 것을 좀 따라해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공개일기를 썼던 그 상황과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매우 다르기도 하고,
김교신 선생과 내가 많이 다르기도 하기 때문에,
김교신 선생의 공개일기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것이 좀 적절하지 않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줍잖은 글을 쓰는 것이 어쨌든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계속 해 왔고,
앞으로도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해보고 싶다.

지난 연말 잘 쉬고,
한달동안 정말 내 망가진 것을 다시 보수해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반성도 많이 했고.

μετάνοια
깊게 회개했다. 반성했다. 그리고 꽤 많이 돌이켰다.

Still Under Renovation

새해들어서 열흘이나 지났다.

내가 정말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내 믿음은 정말 나를 지탱해 내고 있는 걸까,
그 믿음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살려내고 있나….

이런 질문들에 쌓여 계속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예년에는 이만때 블로그에 새해 계획, 새해 결심 그런걸 길게 올리곤 했었는데,
금년에는 그저 성경을 좀 더 많이 보고, 그 성경 말씀에 맞추어 기도하는것 이외에는 거의 다른 색다른 그 무엇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지금 renovation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당분간은 조금 더…
다른 noise에 나를 노출시키는 것을 줄이고,
다른 noise를 내가 만들지 말고,
계속 조금 더 이렇게 ‘under renovation’ mode로 더 지내볼 생각이다.

그리고나면 아마 이 블로그에도 다시 좀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2월쯤이면?

교만함

다른 누군가가 잘 못 하고 있다는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내게는 바로 교만함이 찾아온다.
그 판단이 객관적으로 적절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에 관계 없이.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하고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은 아니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하고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교만에 빠지지 않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 사람보다 더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 때문이다.

Merry Christmas

얼마전,
내가 사는 곳 근처에 독일식 Christmas market이 열린다고 해서 가 보았다.

독일의 Christmas market은 정말 멋지다.
처음 독일에서 Christmas market을 봤을 때 정말 충격적일만큼 멋있었다.
나는 한동안 독일에 정말 뻔질나게 출장을 다녀야 했고, 그중 몇번은 12월에 출장을 갔기 때문에 독일의 Christmas market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의 Christmas market에 가보니 그 이름을 ‘holiday market’이라고 써 놓았다.
미국의 주류 문화에서 Christmas라는 단어는 더 이상 politically correct한 단어가 아니다.

이건 조금 우습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어디에 가더라도 Christmas market을 holiday market이라고 부르는 곳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행사를 독일식 Christmas market을 한다고 했으면, 그냥 독일에서 부르는 것 처럼 Christmas market이라고 부르면 안되나?

독일도 실제로 Christian의 비율이 그렇게 높은 나라는 아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독일의 개신교인이 18%, 카톨릭이 16%, 이슬람 4%, 무종교인이 61%인 ‘세속국가’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Christmas라는 문화적 전통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Christmas를 Christmas라고 부르는데…

나는 Christmas의 주인이 예수님이니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무조건 예수님을 막 외치고 다녀야한다고 주장하는건 아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살면서 서로 예의를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도 회사에서 인사하거나 이메일을 쓸때는
Merry Christmas라고 하지 않고, Happy holidays라고 한다. 정말 어떤 사람들은 Christmas를 celebrate하지 않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독일식 Christmas market을 Holiday market이라고 부르는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 문화도 여러 문화중 하나로 인정해주는게 그렇게 불편한걸까?

낮선 사람

역시 지난 주일 예배시간에 있었던 일.

나는 조금 뒤쪽, 문 바로 옆쪽에 앉아있었는데, 아직 예배가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때 홈리스 노인 한 사람이 문으로 들어와서 내가 앉아있는 곳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 계속 서 있었다.

그분은 홈리스가 끌고 다니는 작은 카트 하나를 끌고 들어와서는 뒤쪽에 그냥 조용히 서서 예배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았다.

한 10분정도 그렇게 서 있었나…

그리고는 그분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내 생각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분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도 못했던 것 같고,
그분은 그냥 아무도 그분의 존재를 알아채지도 못하게 짧게 예배에 참석하고 갔다.

나는 그 홈리스 할아버지가 그렇게 나간 이후 계속 예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가 가서 말이라고 붙였어야 했던 걸까.
나 말고는 그분을 아무도 못본 것 같았는데.
가서 여기 내 옆에 앉아라 그렇게 권하기라도 할껄 그랬나.

마침 그분이 그렇게 서 있던 동안에는,
앞에서 아주 잘 차려입은 한 가족이 나와서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고 advent를 상징하는 촛불을 켜는 순서가 진행되고 있었다.

잘 차려입은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 앞에서 촛불을 켜고 있을때,
그 홈리스 할아버지는 외롭게 그렇게 뒤에 서 있다가 나갔다.

아직도 나는 마음이 많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