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 Growth Bootcamp

교회에서 관심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Spiritual Growth Bootcamp라는걸 하고 있다. (지금은 두명과 함께 하고 있다.)

영적 성장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길과 형식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사람의 성품과 배경
– 영적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가지 환경
– 영적 성장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
– 영적 성장을 하고자 원하는 의지

등등이 모두 종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나를 생각해 보아도,
돌이켜보면 내가 영적성장을 이루어왔고, 지금도 가고 있는 길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과거에 어떤 방법들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던 것 같고,
의외로 나와 잘 맞지 않을 것 같은 방법이 내게 큰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만일 과거에 내가 다른 영적 성장의 길을 선택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내게 유익이 있을 수 있었으리라 본다.

내가 사람들의 영적성장에 조금 더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일종의 부채의식 때문이다.

나는 여러가지로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셨고,
여러가지 형태의 지적, 정서적, 관계적 resource를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이 내게 주어졌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내것으로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따로 얻어진 열매들도 있었고.

이제 막 결혼을 한 젊은 부부와 지난주 토요일에 처음 시작을 했는데,
이것을 통해서 내게도 배움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숨은 능력자

요즘도 한국 TV에서 일반인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전국노래자랑으로 시작해서 판타스틱 듀오… 뭐 그런 것들.
그런 프로그램에 나왔던 사람들은 대개 그냥 동네에서 노래 좀 한다는 수준인데, 들어보면 확실히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실감하게 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가끔 한번씩 엄청난 능력자들이 나와서 기가막힌 실력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일들이 있었다.
현직 가수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런 출연자의 노래를 들으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들을 보기도 한다. 숨은 능력자들이다.

내가 요즘 하는 일은 그냥 닥치는대로 뭐라도 하는… 뭐 그런 수준이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제품 디자인, 프로세스(공정) 개발 같은 일들도 하지만,
요즘은 점점 공급체인(supply chain) 관리, 프로젝트 관리 같은 일들도 많이 하고 있다.

높은 공학적 지식을 필요로하는 일들은 말하자면 진입장벽이 높아서,
숨은 능력자를 만나기 쉽지 않다.
좋은 교육을 받았거나, 현장에서 오래 경험을 쌓아오면서 내공을 쌓은 사람들이 아니면 능력자를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프로젝트관리, 공급체인관리 같은 일들은 비교적 도메인지식(domain knowledge)가 많지 않고, 빠른 판단력과 결단력같은 일반적인 지적능력들을 가지고 있다면 교육이나 지식이 풍부하지 않아도 이 일을 빨리 catch up해서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

기독교 신앙은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그래서 숨은 능력자들이 나올 가능성이 많은 영역일까,
그렇지 않으면 진입장벽이 높아서 숨은 능력자들이 나오기 어려운 영역일까.

Welcome Home!

민우가 집에 왔다!
방학이라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왔다.

아내와 나만 집에 있을때는 그야말로 밥과 밑반찬, 국이나 찌게 하나 정도하고 아주 빠르고 간단하게 식사를 때우곤 하는데,
민우가 오니 민우가 그동안 먹고 싶어했던 것들을 해주겠다는 의지가 넘쳐흐른다!
그래서 민우가 오면 우리 집 식비가 두배로 느는 것 같다.
민우가 그렇게 많이 먹어서 그런게 아니다. 민우가 오면 조금 더 건강하고 좋은 반찬에 밥을 먹기도 하고, 민우가 그동안 못 먹었던 것을 챙겨먹여보려고 하나보니 그렇게 되는 거다.

한국에 출장을 어쩌다 한번 가면,
어머니께서 이것 저것 챙겨서 해주시곤 했다.
(한국에 출장을 못간지도 1년 반이 되었다.)

힘드신데 뭐 그런걸 해주시려고 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출장을 가면 가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름 비싼 음식을 먹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렇게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이 월등히 더 맛있어서 그걸 즐겼다기 보다는,
50넘은 아들이 어쩌다 출장와서 한 이틀 집에서 자는데 그래도 뭐라도 한번 해주시고 싶다는 어머니의 마음을 누리고 싶어 그렇게 그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다.

민우가 그런 정도의 생각을 할만큼 성숙했을지는 잘 모르지만,
나도 민우가 집에 있는 동안 좋고 맛있는걸 해주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사랑을 많이 담아 뭔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이름

그저께였던가,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해서 youtube search를 해 보았다.

내 페이보릿 유튜브 채널 가운데 하나인 민춘살롱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 이상한 주장을 하는 것을 비판한 것을 지난달에 본적이 있었다. 그 비디오에서는, 인터넷에서 하나님의 이름 자체에 손을 보라, 못을 보라 이런 뜻이 들어 있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비판했는데… 그 비디오를 볼 당시에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대충 알고 있긴 했지만 정성이 뻗혀서 그거까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이상한 주장을 하는 비디오 자체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보게 되었다.

음….
뭐 히브리어가 대충 무슨 코드로 되어있고, 그걸 풀면 야훼라는 이름 자체에 예수님의 희생이 이미 들어가 있다는… 그런 얘기였다. 넓게보면 예전부터 바이블코드 그래서 성경을 무슨 코드로 풀면 숨겨진 뜻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런 류의 이야기였다.

대충 상식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그런 주장이 딱 들어도 이상하다고 생각할만도 한데…
그런 거의 이단스러운 주장을 하는 비디오의 조회수가 민춘살롱의 비디오 조회수의 100배 수준이었다. ㅠㅠ

세계 최고 수준의 구약학을 공부하신 현직 구약학자가 히브리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써가면서 설명하는 비디오가, 거의 이단스러운 주장을 하는 비디오에 비해 100분의 1밖에 안되는 수준이라니…

이렇게 저렇게…
가진 시간과 재능과 열정을 쪼개서 뭔가 ‘right thing’을 해보려고 애쓰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참 감사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윗-골리앗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러분들도 민춘살롱을 비롯해 건강한 youtube 채널들 많이많이 구독하시길! ^^

내가 또 그랬나?

지난 몇달동안 PCB를 만드는 회사들 몇개와 이야기를 하는 일이 좀 있었다.
그중에 좀 급하게 PCB를 만들어야하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서,
몇개 회사들에게 RFQ (Request For Quotation)를 보낸 일이 있었다.
그중 한 회사가 제일 조건이 좋아서 그 회사와 수백개 정도의 engineering build를 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문제는 그 쪽의 project manager가 영 일을 잘 못하는 거다.
quote를 받는 것과 다른 이야기도 하고, 빠릿빠릿하게 대답도 잘 못해주고.

결국 팀과 상의해서 PCB 회사를 바꾸기로 하고, 그 회사에도 그렇게 통보해 주었다.

지난주에, 그 회사의 VP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잠깐 좀 이야기를 하자고.
자기들이 일을 제대로 못해서 그렇게 된것에 대해 사과했고, 앞으로 다른 기회가 있으면 자기 회사를 다시 검토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 project manager는 우리 project를 다루지 않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음…
그럼 그 사람을 짤랐다는 건가?

business discussion을 하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아서 더 물어보지는 못했다.

계속 지난 며칠 그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 나 때문에, 우리 때문에 그 사람이 어렵게 된건가?

우리 입장에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schedule이 빡빡하게 있는데 그 쪽에서 일을 제대로 못해주니 그렇게 바꿀 수 밖에.

그렇지만…
내가 더 큰 회사/고객회사의 입장이기 때문에, 갑의 입장이기 때문에…
나의 존재는 그 존재 자체가 어떤이에게 폭력이 되어버린 것인가.

성경공부

이번 봄학기에는 성경공부 그룹 두개를 했었다.
하나는 코스타 간사들중 원하는 사람들과 하나를 했고,
다른 하나는 교회 그룹이었는데, 이래저래 아는 분들, 소개받고 온 분들, 이 블로그 통해서 연락온 분들해서 교회 그룹이라고 하기엔 좀 머시기한..그런 그룹 하나가 있었다.

코스타 간사 그룹은 이제 간사들이 바빠지는 시즌이 되어서, 두주전에 마무리를 했고,
교회 그룹은 지난 토요일에 봄학기 성경공부를 마무리 했다.

나로서도 더 본문을 꼼꼼이 보면서 공부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예전에는 모르던 분들과 연결이 되어서 매주 만나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고.

본문을 나름대로 좀 고민하면서 읽어보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들은 주석도 뒤져가며, 원어로 뒤져가며 공부를 했는데, 함께 했던 분들의 반응도 전반적으로 좋았다는 편이었다.
‘평가서’를 나누고 평가를 했는데, 만족도가 꽤 높았다.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여전히 내게 남는 고민은 이것이다.

나 같은 비전문가가 이 정도 준비해서 하는 성경공부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면…
왜 이런 성경공부가 훨씬 더 많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참여했던 분들이 교회에서 주변에서 이런 성경공부가 없다면서 다음 성경공부기회가 되면 다시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전문적으로 신학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내가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나름대로 바쁜 직장생활하면서 짬짬이 시간내어서 공부해서 성경공부 그룹 인도한 것인데…
아니, 왜 나 같은 비전문가가 이 정도로 하는 성경공부 조차도 찾기 어렵냐는 거다.

참 답답한 일이다.
암울하기도 하고.

일의 의미 (어제에 이어서)

내가 의료기기를 만들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일하면 사람들이 도움을 얻는다…는 스토리가 내게 엄청난 동기를 제공해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좀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렇게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에 너무 많은 곁가지가 붙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훌륭한 의료기기나 의료 시스템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참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일에는 아주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포함된다.
전자회로를 디자인하는 일, 필요한 재료를 시험해서 선정하는일, 여러 회사들과 연락해서 제일 값싸고 좋은 품질로 이것을 만들어줄 방법을 찾는 일, 이에 맞는 sofware를 만드는 일, database를 관리하는일, FDA의 규정에 맞게 여러가지 documentation을 잘 꾸미는 일, CAD로 도면을 만드는 일,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고 회의를 하는 일 등등.

게다가 그렇게 해서 만드는 의료기기가 경쟁제품과 비교해서는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도 검토하고, 다른 회사의 제품을 분석하는 일도 한다.
시장 조사, 의사들로부터 design feedback을 받는 일도 중요하고.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서 얻어지는 최종적인 열매가 새로운 의료기기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을 해서 어떤 회사에서는 스마트폰을 만들고, 어떤 회사에서는 자동차를 만들고, 어떤 회사에서는 무기를 만들수도 있다.

물론 분야에따라 필요한 기술이나 다른 detail들이 다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보면 모든 engineering task라는게 결국은 그렇다.

그런데,
이런 아주 많은 여러 과정중에는 엄청나게 많은 ‘깨어짐’들이 존재한다.
이건 불법이나 부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이곳 silicon valley에서 일하면서는 일하는 중에 불법이나 부정을 경험한적은 한번도 없다.
그렇지만 조금 더 힘이 있는 회사가 더 약한 회사에게 공정하지 않은 압력을 가한다던가, 사람 사이에 시기 질투로 인해 서로 비방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던가, 자기 팀에서 한 결과를 뻥튀기해서 결과적으로 전체 프로젝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던가, 자신에게 유리한 데이터를 선별적으로 제시한다던가…

적어도 현장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결론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의료기기를 잘 만드는 것이 물론 참 가치있고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매일매일 다루는 이런 모든 일들속에서 해야하는 싸움이 당장 훨씬 더 크게 느껴질때가 많이 있다.

이렇게 깨어진 system속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가능할 것인가,
이렇게 깨어진 것들을 통해서 선한 열매가 얻어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런 의문과 회의가 들수밖에 없다.

이런 모든 생각의 끝에 결국 다다르게되는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통치하신다는 것을 믿고,
내가 그 통치의 일부이자 통치의 대리인이자 통치가 펼쳐지는 통로라는 것을 믿고,
지금의 상황에서 깨어있되, 성실함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지극히 단순한 결론이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깨어짐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이시라는 믿음… 그것이 key가 되는 것이다.

일의 의미

대학교때부터 많이 고민했던 문제 가운데 하나는,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복음을 알기 전에는 그냥 공부하는것 자체가 재미있었고, 또 공부를 잘 해서 얻는 성공을 추구하는 아주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그 공부 자체의 의미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난 이후, 내 삶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원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나를 많이 불편하게 했다. 그중 가장 불편한것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살고 있는 내가 하는 공부/일에 대한 것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공부하고 일하는 것의 의미를 찾는 일은 참 힘들었다.
나름대로 경쟁이 심한 학교를 다니면서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일을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꽤 오랜기간의 씨름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하는 일의 의미 자체를 내가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일을 그분의 뜻 안에서 아름답게 활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는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꽤 직접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다.
새로운 의료용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기들을 만드는 일이니까, 내가 이걸 잘 하면 아주 실제적으로 도움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내가 예전에 그렇게 바라던 대로,
내가 하는 일의 아주 직접적 의미가 잘 드러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아주 단순한 그림으로도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주어지는데…
더 이상 그런 단순한 그림으로 내게 충분하지 않다.

이 일 열심히 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사명의식으로 넘쳐서 일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Right to disconnect

지난주 월요일에 하루 휴가를 내고 좀 잠적해있으려 했다.
그러나 주일 저녁부터 울려대는 notification과 월요일 오전에도 계속 밀려드는 요청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것들에 답을 해주어야 했었다.

어떤 것들은 아주 간단히 답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어떤 것들은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열어서 뭔가를 해야만하는 것들이거나, 나도 좀 복잡한 생각을 해야하는 것들이어서 쉽게 답을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하루쯤 쉬어보겠다고 해도 실제로 쌈빡~하게 쉬기가 어렵긴 하다.

하는 project가 얼마나 급하게 돌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는, 한밤중이나 주말에 서로 이렇게 온라인으로 대화를 주고 받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때도 많이 있다.

요즘은 미국, 중국, 이스라엘, 독일, 그리고 가끔 일본, 그리고 아주 가끔 한국… 이렇게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대에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일하는 시간 외에 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주에는, 이스라엘-일본-캘리포니아 이렇게 세곳에 있는 사람들이 한번에 conference call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내 시간으로는 아주 이른 아침이나 (7am 정도), 아주 늦은 저녁 (11pm 정도)에 conference call을 setup 해야만 했었다.

나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이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 까지만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현실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늘 전화를 붙들고 살도록 요구받지는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하기되긴 한다.

내게도 disconnect할 수 있는 권리를…

(한가지 사족은, 절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다. 적어도 요즘은 그렇다. 집에서 일하면서 낮에는 다소 flexible하게 시간을 쓸때도 꽤 있다!)

자기중심성

자기중심성이라고 하면 자신에 대한 애정이 강해서,
대부분 교만하고, 자신에 대한 과장하기 좋아하고, 그래서 약간 재수없는(?) 모습을 그리기 쉽다.

그렇지만,
자신을 심하게 높이 생각하며 자신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과 함께, 심한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심하게 낮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신을 늘 비하하고, 자신에대한 건강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만 움츠려들고, 늘 자신없어 하는 것.

이런 사람도 역시 결국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자신이 있는 것이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을 보고, 너는 왜 그 따위냐고 꾸짖는다고 그 사람의 낮은 자존감이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의 낮은 자존감은 그렇게 하면 더 낮아지고 그 사람은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자신을 바라보는것보다 더 가치있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바라보며 움츠려있지 말고 고개를 뻣뻣이 들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바,
그리스도의 복음만큼 이것에 더 powerful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