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중심의 질문, ‘너’ 중심의 질문

사랑이 많은 부모라면,
자신이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에게 충분히 잘 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을 갖게 된다.
때로는 그 안타까움이 건강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나치게 자신을 자책한다던가, 아니면 왜곡된 자기 보호 기재로 인해 비뚤어진 감정표출을 하게 된다던가.
그러나 그 ‘안타까움’이 아예 없다면 그것 역시 대단히 이상한 모습이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지고,
그 사람을 위해서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사랑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런 사랑의 모습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묻기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의 중심에는 ‘나’가 있는 반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의 중심에는 ‘너’가 있기 때문이다.

‘나’ 중심의 질문이 아니라 ‘너’중심의 질문을 하는 것이 사랑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부모로서 살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사역자로서,
선생이 되어 가르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 public servant로서,

‘나’ 중심의 질문이 아니라 ‘너’ 중심의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너’ 중심의 질문을 많이 한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집중하기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해야하느냐에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해야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없는 내 모습에 많이 안타까워하며 아파할 것이다.
능력이 제한된 인간으로서 그런 안타까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어떤 리더가 정말 진실된 리더인가를 평가할때,
그 사람에게 그런 안타까움이 있는가 하는 것이 참 좋은 판단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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